29.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가자구, 데이지."
탐은 이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그녀를 개츠비의 차 쪽으로 밀었다.
"이 곡마단의 승용차로 태워다 주겠어."
탐은 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데이지는 그의 팔에서 빠져 나와 버렸다.
"당신은 닉 오빠와 조던을 태우고 가세요.
우리는 쿠페로 뒤따라가겠어요."
그녀는 개츠비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웃옷을 챙겨 주었다.
탐과 조던과 나는 개츠비의 차 앞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탐이 시험삼아 생소한 기어를 밀어 넣어 보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데이지와 개츠비만을 뒤에 남겨 둔 채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자네 봤나?"
탐이 내게 물었다.
"뭘 말이야?"
그는 조던과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나를 바보 멍텅구리로 생각하겠지? 그렇지 않나?"
그가 넌지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내겐 투시력 같은 게 있어서
때로는 그것이 내게 행동지침을 말해 준다네.
자네는 믿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과학이란-."
그는 말을 중단했다.
눈앞에 나타난 우연한 사실이 그를 사로잡아
이성적 함정에서 그를 다시 끌어냈던 것이다.
"그 작자에 관해 어느 정도 조사해 봤지."
그가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진작에 알았더라면 완전히 파헤쳤을 텐데."
"그럼 점쟁이한테 갔었다는 얘긴가요?"
조던이 익살스럽게 물었다.
"뭐라고요!"
우리가 웃어대자 탐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점쟁이라뇨?"
"개츠비 씨에 대해서 알아보러 말이에요."
"개츠비 씨에 대해서라뇨! 아니오,
그런 일 따위는 하지 않았어요.
다만 그 작자의 과거에 대해 좀 조사해 보았을 뿐이오."
"그래서 그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냈군요."
조던이 아는 척하며 말했다.
"옥스퍼드 출신이라고요!"
탐은 깜짝 놀라며 우리를 쳐다봤다.
"옥스퍼드 출신이라니 웃기는 소리하지 말아요."
"어쨌든 간에 그는 옥스퍼드 출신이에요."
"뉴멕시코의 옥스퍼드겠지요."
탐이 경멸조로 코방귀를 뀌었다.
"아니면 사이비 대학이거나..."
"이봐요, 탐. 만약 당신이 그를 그렇게 무시한다면
왜 그런 사람을 점심 식사에 초대했지요?"
조던이 짓궂게 따져 물었다.
"내가 아니라 데이지가 그자를 초대한 거요.
데이지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그자를 사귀었어요-
그런데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는 이제 약해지는 술기운에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 때 T.J. 에클버그 박사의 퇴색한 두 눈이 길 아래쪽으로부터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나는 문득 휘발유에 관한 개츠비가 주의를 주던 일이 떠올랐다.
"시내까지 가기엔 넉넉할 만큼 있다고."
탐이 말했다.
"그렇지만 바로 저기에 주유소가 있잖아요."
조던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렇게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는 게 싫단 말이에요."
탐이 화를 내며 양쪽 브레이크를 밟자,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미끄러지듯 윌슨의 가게 간판 아래 급정거했다.
잠시 후 가게 주인이 나타나더니
노려보는 눈으로 우리 차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기름 좀 넣어 주시오."
탐이 거칠게 소리쳤다.
"우리가 왜 차를 세웠는지 아시오?
경치를 감상하려고 선 게 아니에요. 어서 넣어 주세요."
"난 몸이 좀 좋지 않아요."
윌슨은 꼼짝도 하지 않고 말했다.
"하루 종일 앓고 있었어요."
"왜 병이 난 거요?"
"그 동안 너무 지쳤어요."
"그럼 내가 직접 넣어도 되겠소?"
탐이 다그쳐 물었다.
"전화했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잖소?"
윌슨은 간신히 기대고 있던 차양 아래 있는 문기둥을 떠나
숨을 가쁘게 쉬며 휘발유 탱크 마개를 비틀어 열었다.
햇볕 속에 비친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점심 시간을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돈이 몹시 궁해 보였고,
혹시 당신의 그 낡은 차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전화했던 겁니다."
"이 차는 어떻소?"
탐이 물었다.
"지난주에 산 것이오."
"노란색이 아주 어울리는데요."
윌슨은 핸들을 좌우로 돌려보며 말했다.
"이 차를 살 생각이 있소?"
"구미가 당기긴 합니다만." 윌슨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안 사겠어요. 그러나 당신의 다른 차로 돈을 좀 벌 수 있을 겁니다."
"갑자기 돈을 어디에 쓰려는 겁니까?"
"난 여기서 너무 오랫동안 살았어요.
이제 여길 떠나고 싶어요. 아내와 서부로 가고 싶어요."
"부인도 그러길 원한단 말이오?"
탐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내는 10년 전부터 그런 얘기 해 왔는걸요."
윌슨은 잠시 주유소 펌프에 몸을 기대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떠나야겠어요.
그녀를 데리고 말입니다."
쿠페가 먼지를 일으키며 거칠게 사라졌다.
언뜻 안에서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얼마요?"
탐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지난 이틀 동안에 난 좀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윌슨이 말했다.
"그 때문에 여기를 떠나 버리려는 거예요.
차 문제로 당신을 귀찮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요."
"얼마냐니까요."
"1달러 20센트입니다."
나는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으나,
윌슨이 아직은 탐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윌슨은 머틀이 자기를 떠나 다른 세계에서
다른 종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병이 난 것이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나서 이어 탐을 보았다.
탐도 자신의 아내에게서 그와 비슷한 발견을 한 지 한 시간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순간 나는 병자와 건강한 사람이 차이만큼 심각한 것도 없지만
지성이나 인종에 있어서는 사람들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윌슨은 병이 크게 나서 무슨 일을 저지른 듯한,
그것도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방금 어떤 가엾은 여자에게 임신이라도 시킨 사람 같았다.
"그 차를 양도하겠소."
탐이 말했다.
"내일 오후에 넘기겠소."
그 지역은 언제나 불만스러운 곳이었다.
심지어 오후의 해가 한창일 때도 그랬다.
그 때도 나는 등뒤로부터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머리를 뒤로 돌렸다.
잿더미 너머로 T.J. 에클버그 박사의 거대한 두 눈이 여전히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또 다른 눈이 20피트도 안 되는 가까운 곳에서
특별히 긴장된 빛을 띠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윌슨의 가게 위층의 한 창문에는 커튼이 옆으로 약간 걷혀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머틀 윌슨이 우리 차를 눈여겨서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