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그는 고향에 가는 길에 건달짓을 했나 봐요.
그는 제게 예일 대학 시절엔 당신의 과에서 대표를 했었다고 말했어요."
탐과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 마주 보았다.
"빌록시가 말이오?"
"우선 첫째로 우리 과엔 대표라는 것이 없었지."
개츠비가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구르자 탐은 갑자기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학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개츠비 씨, 당신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라고 하던데요."
"정확히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충은 그래요."
"아, 참 내가 듣기로는 옥스퍼드에 갔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네, 갔었지요."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탐이 믿기 어렵다는 듯이 경멸조로 말했다.
"빌록시가 뉴헤이븐에 가 있을 무렵에 당신도 분명히 거기에 가셨겠군요."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 때 웨이터가 노크를 하고 으깬 박하와 얼음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또 문을 가볍게 닫고 나가도 침묵을 쉽게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엄청나고도 자세한 이야기는 마침내 밝혀지게 되었다.
"그 곳에 갔다고 말했잖소."
개츠비가 말했다.
"그 얘기는 들었소만, 언제였는지 그걸 알고 싶소."
"1919년이었는데, 난 단지 5개월 정도 머물렀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옥스퍼드 출신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탐은 혹시 우리가 자신의 불신은 반영해 주지 않을까 해서 힐끔 둘러보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개츠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휴전 후 일부 장교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개츠비가 말을 계속했다.
"우린 영국 아니면 프랑스의 어느 대학이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지요."
나는 일어서서 그의 등을 툭툭 쳐주고 싶었다.
전에도 경험한 바 있는 완전한 믿음의 마음이 다시 일어났던 것이다.
데이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는 테이블로 갔다.
"위스키를 따세요, 탐."
그녀가 시켰다.
"민트줄렙을 한잔 만들어 드리겠어요.
한잔하고 나면 한결 좋아질 거예요. ...이 박하를 봐요."
"잠깐 기다려요."
탐이 날카롭게 말했다.
"개츠비 씨에게 한 가지 더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소."
"말씀하십시오."
개츠비가 공손하게 말했다.
"도대체 당신은 우리 가정이 어떻게 되길 바라는 겁니까?"
마침내 그들은 대놓고 맞붙게 되었고, 개츠비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아무 죄가 없어요."
데이지가 두 사람을 심각하게 번갈아 보며 말했다.
"당신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제발 당신이 그만두세요."
"그만두라고!"
탐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되받아 말했다.
"요즘 처신은 남편이 뒤로 물러앉아 정체 불명의 별 볼일 없는 남자가
자기 아내를 사랑하게 내버려두는 것일 테지.
그래,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내버려두지요. ...
요즘 사람들은 우선 가정 생활과 가족 제도를 코웃음치기 시작했다지.
그들은 조만간 모든 것을 다 팽개쳐 버리고 흑백 인종간의 결혼도 인정하겠지."
갑작스런 논란으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탐은
자신을 문명의 마지막 방벽에 홀로 서 있는 것으로 보았다.
"우린 모두 백인인데요."
조던이 중얼거렸다.
"내가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난 성대한 파티 같은 건 열지 않소. 사람들을 사귀려면
자기 집을 돼지우리로 만들어야 하나 봐-요즘 세상은 말이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화가 났지만,
탐이 입을 열 때마다 어쩐지 자꾸 웃음이 났다.
난봉꾼이 감쪽같이 도덕가가 된 그 변신은 빈틈이 없었다.
"나도 할 말이 좀 있소, 친구분."하고 개츠비가 말을 시작했다.
데이지가 곧 그가 하려는 말을 짐작했다.
"제발 참으세요."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스러워했다.
"제발 모두들 돌아가요.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요?"
"그거 좋은 생각이야."하고 내가 일어섰다.
"가지, 탐. 한잔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개츠비 씨! 당신이 내게 하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듣고 싶어."
"당신의 부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개츠비가 자신 있게 말했다.
"당신을 사랑한 적이 절대로 없어요. 부인은 날 사랑하고 있소."
"당신 미쳤군."
탐이 기계적으로 외쳤다.
개츠비는 벌떡 일어섰다. 흥분으로 기운이 솟아나는 모양이었다.
"부인은 당신을 사랑한 적이 결코 없었소. 알겠소?"
그가 소리쳤다.
"내가 가난했고 또 나를 기다리다 지쳐서 할 수 없이 당신과 결혼했던 거요.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나 이외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소!"
그 때 조던과 나는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탐과 개츠비가
서로 다투는 듯한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함께 있어 주기를 청했다.
마치 자기들은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우리가 자기들의 감정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무슨 특권이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앉아요, 데이지."
탐은 부모와 같은 어조로 말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요? 모두 듣고 싶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개츠비가 말했다.
"5년 동안이나 반복되어 온 일을 당신은 모르고 있어요."
탐은 데이지를 홱 돌아다보았다.
"5년 동안이나 이자와 만나 왔단 말이지?"
"만나 왔다는 게 아니오."
개츠비가 말했다.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소.
그렇지만 우리 두 사람은 줄곧 서로를 원하고 있었던 거요,
친구분. 그런데 당신은 그걸 모르고 있었소. 난 가끔 웃어대곤 했지요."
그러나 지금 그의 두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당신이 모르고 있다는 걸 생각하고서 말이오."
"아, 그랬었군."
탐이 굵직한 손가락을 목사처럼 철썩 마주치더니 의자의 등받이에 털썩 몸을 기댔다.
"당신은 미쳤소."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난 5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때는 데이지를 알기 전이니까 상관없소.
당신이 뒷문으로 식료품 배달이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녀에게 1마일 내로 접근할 수 있었겠소.
하지만 그 나머지 얘기는 모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오.
데이지는 나와 결혼할 때 나를 사랑했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단 말이오."
"그렇지 않아요."
개츠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녀는 날 사랑하고 있소. 가끔 바보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게 탈이긴 하지만 말이오."
탐은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역시 데이지를 사랑하고 있소.
이따금 술을 진탕 마시고 떠들어대거나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제정신이 들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오."
"그런 불쾌한 말은 하지 말아요."
데이지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낮아지면서 소름 끼치는 경멸조로 방안을 가득 채웠다.
"우리가 왜 시카고를 떠났는지 아세요?
당신의 그 별것 아닌 술잔치 얘기를 그 곳 사람들이
곧이듣지 않는 걸보고 난 깜짝 놀랐어요."
개츠비가 그녀에게로 걸어가서 그 곁에 섰다.
"데이지, 그건 이미 다 끝난 일이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건 이제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 저 사람에게 사실대로만 말해요.
당신은 저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걸 말이오.
그러면 모든 것을 영원히 깨끗하게 씻어 버릴 거요."
데이지는 무의식적으로 개츠비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