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제8장
나는 그 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해협에서 처량한 무적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고,
나는 기묘한 현실과 잔인하고 무서운 꿈 사이를 가슴 답답하게 방황하고 있었다.
해가 뜰 무렵 개츠비의 저택 차도로 택시가 달려가는 소리를 듣고,
즉시 침대에서 뛰쳐나와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나는 개츠비에게 일러 줄 일, 경고해 줄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은 아침에 말해 주는 것은 너무 늦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의 저택 잔디밭을 건너갔을 때,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그가 깊은 절망에 빠져서인지 아니면 잠에 빠져서인지는 모르나
홀의 테이블에 힘없이 기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밤새 아무 일 없었소."
그는 멍하니 말했다.
"나는 계속 지켜봤지요.
그랬더니 4시쯤에 데이지가 창가로 와 거기서 잠시 서 있다가 곧 불을 껐소."
우리가 담배를 찾느라고 그 넓은 방들을 뒤지고 돌아다녔던 그 날 밤만큼
그의 저택이 거대하게 여겨진 적은 결코 없었다.
우리는 큰 천막 같은 커튼을 옆으로 밀어젖히고
전기 스위치를 찾으려고 어두운 벽을 더듬었다.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여겨졌다-
한번은 내가 유령같이 보이는 피아노 건반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많은 먼지가 쌓여 있었고,
방들은 오랫동안 환기를 시키지 않은 듯 곰팡이 냄새를 풍겼다.
나는 낯선 테이블 위에서 담뱃갑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곰팡내 나고 바싹 마른 담배 두 개피가 들어 있었다.
우리는 객실의 프랑스식 창문을 열어제치고 앉아서 어둠 속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이 곳을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당신 차가 곧 발견될 테니까."
"지금 피해야 할까요?"
"일주일쯤 애틀랜틱 시티나 몬트리올에 가 있는 게 좋을 겁니다."
그는 그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데이지의 마음을 알기 전에는 절대 떠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는 마지막 희망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나는 차마 그를 거기서 떼 놓을 수 없었다.
그가 댄 코디와 함께 지낸 자기의 젊은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준 것은 바로 그 날 밤이었다
-'제이 개츠비'가 탐의 굳은 악의에 부딪쳐서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신비에 싸여 있던 것을 모두 풀고 있었다.
그 때의 그로서는 무엇이든지 거리낌없이 사실대로 이야기하려고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는 무엇보다도 데이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데이지는 그가 사귄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여자였다.
그는 드러나지 않는 갖가지 능력으로 그런 여자들과 관계를 맺으려 했으나
항상 눈에 띄지 않는 가시 철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데이지에게 매우 호감이 갔다.
그는 처음에는 테일러 병영의 다른 장교들과 함께
데이지의 집에 갔으나 나중에는 혼자서 갔다.
그녀의 집은 대단했다-
그 때까지 그는 그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집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그 집에서 숨막힐 것같은 긴장된 분위기를 느낀 것은
데이지가 거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가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은
그가 병영의 천막에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한 일이었다.
그 집엔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층엔 다른 어떤 침실보다 더 아름답고 시원한 침실이 있었고,
그 복도엔 명랑하고 밝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곰팡이가 나서 이미 시든 라벤더꽃 속에 간직해 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최신형 자동차와 전혀 시들지 않은
꽃들로 둘러싸인 춤의 은근한 암시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미 많은 남자들이
데이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 사실은 그녀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다.
그는 그런 남자들의 흔적을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자기가 데이지의 집에 오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제이 개츠비로서의 그의 장래가 얼마나 영광스런 것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의 그는 돈 한 푼 없고 별 볼일 없는 젊은이였으며,
몸을 가린 마법의 옷과 같은 군용 외투도
언제 벗겨질지 모르는 그야말로 처량한 신세였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했다.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체면도 차리지 않고 이를 악물고 손에 넣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느 고요한 10월 밤에 그는 데이지를 차지했다.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진정한 권리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녀를 차지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데이지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가 수백만 달러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돈으로
데이지에게 안도감을 갖게 했다는 뜻으로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즉 그는 데이지로 하여금 자기를 그녀와 동등한 계층 출신의 사람이라고 속였던 것이다-
그녀를 편안히 살 수 있게 할 부자로 믿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었다-
그에게는 부유한 가족도 없었고,
또한 그는 정부의 기분 여하에 따라
세계의 어느 구석으로 쫓겨 나갈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경멸하지 않았고, 사태도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나빠지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얻을 수 있는 것을 차지하고 나면 떠나 버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이 오직 하나의 성배를 쫓는 데 전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데이지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름다운'여자가 얼마나 특이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개츠비에게는 아무 것도 남겨 주지 않은 채
다시 부유하고 풍요로운 생활 속으로 떠나가 버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단지 그녀와 결혼했으면 하는 몽상뿐이었다
.
이틀 후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애를 태운 것은 개츠비였다.
그녀의 집 현관은 장식용의 호사스러운 별빛 등으로 눈이 부셨으며
그녀가 몸을 돌리자 등의자의 삐걱거리는 소리조차도 우아하게 들렸다.
그는 그녀의 호기심에 찬 사랑스런 입술에 키스했다.
그녀는 감기에 걸려 그 어느 때보다 쉰 소리를 냈는데,
그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개츠비는 압도된 채 돈이 가두고 보호한 젊음과 신비, 수많은 옷이 지닌 신선함,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열띤 생존 경쟁을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은처럼 반짝이는 데이지를 의식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한때 나는 데이지가 나를 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그녀 역시 날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그녀는 자기가 모르는 일들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겁니다.
... 아무튼 나의 야망도 멀리 사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장래에 할 일을 데이지에게 얘기해 주기만 하면 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실제로 큰일을 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그는 해외로 떠나기 전날 오후 데이지를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껴안고 앉아 있었다.
방 안에 난롯불이 피워져 있는 쌀쌀한 가을날이었다.
그녀의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이따금 그녀가 몸을 움직이면 팔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입술로 그녀의 검고 윤기 흐르는 머리에 키스를 했다.
그 날 오후는 마치 그 다음 날 기약한 긴 이별을 위해
큰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려는 듯이 한동안 그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다.
말없는 가운데 데이지의 입술이 그의 상의 어깨를 스치자,
그는 마치 그녀가 잠들어 있기나 한 것같이 살며시 그녀의 손가락 끝을 어루만졌다.
한 달에 걸쳐 사랑을 속삭인 가운데서 이 때만큼
그들이 가까이 있고 서로의 감정이 통한 적은 결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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