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나는 잠시 앉아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마침내 집안에서 하인이 수화기를 들고 택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집 앞에서 택시를 기다릴 생각으로 현관을 등지고 차도를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20야드도 못 왔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개츠비가 나무숲 사이로부터 차도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때까지 몹시 기분이 상해 있었기 때문에 달빛 아래서
그의 핑크색 양복이 눈부시다는 것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저 여기에 서 있소, 친구분."
어쨌든 그것은 비열한 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는 금방이라도
탐의 집을 털 작정을 하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큼 만일 그의 뒤 어두운 나무숲에서 험상궂은 얼굴들,
즉 '울프심 일당'의 얼굴들이 나타났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한길에서 어떤 사고가 난 걸 봤소?"
잠시 후 그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는 머뭇거렸다.
"그 여자는 죽었나요?"
"그렇소."
"나도 그러리라 생각했소.
데이지에게도 그럴 거라고 말했구요.
충격은 한꺼번에 받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요.
데이지는 다행히 아주 잘 견뎌 냈소."
그에게 문제되는 건 오직 데이지의 반응뿐인 것처럼 말했다.
"난 옆길로 돌아서 웨스트에그로 갔소."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 집 차고에 차를 넣어 두었소.
우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어요."
이 때에 이르러서는 나는 그가 너무도 싫어졌기 때문에
그가 잘못했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누구죠?"
그가 물었다.
"머틀이란 여자요. 남편이 자동차 수리소를 하고 있어요.
도대체 어쩌다 그런 끔찍한 사고를 낸 거죠?"
"글세, 난 핸들을 돌리려고 했어요-."
그는 말을 중단했고 나는 갑작스럽게 사고의 진상을 추측했다.
"데이지가 운전하고 있었나요?"
"그렇소."
잠시 후 그가 말했다.
"하지만 물론 내가 했다고 말하겠소.
저, 우리가 뉴욕을 떠났을 때 데이지는 신경이 몹시 날카로웠기 때문에
자신이 운전이라도 하면 가라앉으리라 생각했던 거요
-그런데 우리가 마주 오는 차를 막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 여자가 우리 차 앞으로 달려나온 거요.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우리를 아는 사람으로 여겼는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소.
데이지는 처음엔 그 여자를 피하려고 다른 차 쪽으로 방향을 돌렸으나,
다음 순간 그녀는 침착성을 잃고 먼저 방향으로 차를 돌렸소.
내 손이 핸들에 닿았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충격을 느꼈소
-그 여자는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갈갈이 찢겨 있었소."
"그만 해요."
그가 움찔했다.
"하여튼 데이지가 그 여자를 들이받아 버렸소.
난 그녀를 멈추게 하려고 애썼지요.
그러나 그녀를 멈추게 할 수가 없었소.
그래서 난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 당겼지요.
그러자 그녀는 내 무릎 위로 쓰러졌고 그래서 내가 차를 몰았던 거요.
그녀는 내일이면 회복이 될 겁니다."
그는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난 여기서 혹시 탐이 오늘 오후의 그 일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나 지켜보려고 하오.
그녀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소. 그
리고 만약 탐이 난폭한 짓을 하려 들면 그녀는 불을 껐다 다시 켜기로 했지요."
"탐은 데이지에게 손을 대지 않을 거요."
내가 말했다.
"그는 데이지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지도 않았소.
난 그자를 믿지 않아요, 친구분."
"얼마나 오래 지켜 볼 작정이오?"
"필요하다면 밤을 새서라도요.
아무튼 그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지켜볼 작정이오."
내 머릿속엔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탐이 데이지가 운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거기에 하나의 연관이 있음을 알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일이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집을 바라보았다.
아래층에는 두세 개의 창문에만 불이 켜져 있고,
이층의 데이지 방에서는 핑크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가 말했다.
"혹시 무슨 소동이라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는지 살펴보고 오겠소."
나는 돌아서서 잔디밭을 따라 걷기 시작해 조심스런 걸음으로
자갈길을 가로질렀고, 발뒤끔치를 들고 베란다의 계단을 올라갔다.
객실의 커튼은 열려 있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우리가 3개월 전인 6월의 어느 날 밤에 식사를 했던
그 문간방을 가로질러 식료품실 창문으로 생각되는,
장방형의 불빛이 비치는 작은 방으로 갔다.
차광막이 내려져 있었지만, 나는 창틀에 갈라진 틈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데이지와 탐은 부엌의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있었는데,
테이블에는 식은 닭튀김 한 접시와 맥주 두 병이 놓여 있었다.
탐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데이지에게 뭐라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진지해진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쥐고 있었다.
데이지는 때때로 그를 올려다보며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들은 즐거운 얼굴이 아니었고, 둘 다 닭튀김이나 맥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불행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전혀 꾸밈없는 친밀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보았더라면 그들 부부가 함께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내가 현관을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되돌아 걸어 나오고 있을 때
그 집을 향해 한 대의 택시가 어두운 차도에서 천천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개츠비는 내가 기다리라고 한 차도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좀 조용해졌나요?"
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요. 아주 잠잠해요."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좀 쉬는 게 좋겠소."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난 데이지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여기에 있고 싶군요. 먼저 가십시오, 친구분."
그는 두 손을 웃옷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마치 내가 거기 있는 것이
불침의 신성함을 망쳐 놓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탐의 집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긴장된 자세로 돌아섰다.
그래서 나는 달빛 아래 서 있는 그를 남겨 두고 그 곳을 떠났다-
그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 감성을 위한 ━━ > 세계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37.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0) | 2011.05.09 |
---|---|
36.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0) | 2011.05.08 |
34.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0) | 2011.05.06 |
33.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0) | 2011.05.05 |
32.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0) | 2011.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