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로, 리더는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는 어떤 자세보다도 중요한 자세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가질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세입니다. 신앙생활의 감초라고 불리는 자세입니다. 이 자세가 없이는 일군 되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자만과 안일함은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상실할 때 생성되는 자세입니다. 또한 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또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없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회와 관련하여 말씀드리면 어떻게 되었든지 붙어만 있으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아, 저 사람은 왜 안 바뀌는 걸까? 저 가치관, 하나도 바뀐 게 없잖아.”하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붙어만 있으면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속상해했던 것이 하나님 앞에 죄인 사실을 보았습니다. 좀 더 따뜻하게 해 주었어야 했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많이 죄스러웠습니다.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안 받아줄 수도 없고 했던 태도를 후회합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변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변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그 속에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좌충우돌 하더라도 엉뚱한 얘기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하나님의 길 가운데 서고자 하는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으면 때가 되니까 바꿔주시더군요. 그래서 이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 (롬 14:4)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는 나의 종이다. 그를 세움이 내게 있는데 네가 어찌하여 나의 종을 판단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 전능한 능력으로 일군을 세워 가십니다. 따라서 외모를 보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종들은 하나님이 이들이고 하나님의 종들이기에 함부로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많이 웃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섯 번째, 리더는 섬기고자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리더는 종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섬기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은사가 가르치는 은사이기에 가르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노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섬기는 일에는 등한시 합니다. 이건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또 다른 교회에서 옮겨온 이들 가운데에는 “나는 전에 있던 교회에서 수석 장로였다. 여기 왔으니 직분에 걸맞는 일을 맡겨 달라. 그러면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에 집회를 갔던 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세는 리더 중의 리더였습니다. 성도가 200백만명이 되는 교회의 리더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를 인식할 때 종으로 인식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위치를 종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윗 역시 놀라운 일군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자기를 가장 먼저 종으로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자신이 왕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의 위치를 하나님 앞에서 설정하기를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종으로 오셨습니다.
성경은 권세가 클수록 섬김이 컸습니다. 그러니까 사도가 가장 섬기는 자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군은 섬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리더는 종입니다. 그러기에 리더를 분별할 때 섬기는 자를 분별하여 세워야 합니다. 섬기는 자가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실 때에는 점진적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어떤 직분을 가졌다 할지라도 섬기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존 윔버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섬길 수 없는 천한 일이 없어야 한다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에 와서 봉사할 때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해야 할 일을 제한하면 이런 사람은 리더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사회에서는 회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일도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리더십은 어떤 자리, 권세, 능력, 존경, 특권, 명예가 아닙니다. 자기희생을 통해 섬기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천한 일도 없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천한 일로 여긴다면 이건 자존심 때문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못한 자세입니다. “나에게는 청소가 맞지 않아, 청소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난 다른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설거지가 나에게는 아직 이른 것 같아. 나는 하나님만 더 구해야 해. 나는 마르다보다 마리아가 더 좋아.”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대기업의 회장이라 할지라도 교회에 와서는 청소나 궂은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일군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섬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섬김을 통해 사람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섬김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과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신분을 이해하는 일에서 나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고 자존감을 깨달으면 섬김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자존감을 발견하지 못하면 청소를 할 때에도 부끄럽게 하게 마련입니다. 리더의 역할은 직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희생에서 나옵니다. 간디나 루터 킹 목사님 등은 말로만이 아니라 자기희생을 통해 자기주장을 실천했다는 데 존경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인도와 미국의 영웅들입니다.
여섯 번째, 리더는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 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맡기던지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뢰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가 말의 신빙성입니다. 말로 허풍떠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세일즈 맨 기질 즉 말로 사람을 붕 뜨게 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은 리더가 되면 안 됩니다. 성품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작은 일을 맡기더라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어떤 일을 맡기든지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존 윔버 목사님은 사람을 분별할 때, 작은 일부터 시켜본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일처럼 일처리를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꾸 잊어버리고 성의가 없이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보며 리더를 분별한다고 합니다. 신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신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존 윔버 목사님은 이런 경우 그 사람을 비껴 놓던지 아니면 한 번 더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더불어 중요한 자세가 정직성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자세입니다. “아니, 집사가 뭐야, 나정도 되면 장로쯤은 돼야지”라는 자세가 있다면 일군은 아닙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충성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나 국가, 교회 모든 일에 필수입니다.
다음으로 말의 신빙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존 윔버 목사님에게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전 목사님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화장실 청소를 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더랍니다. 여러분, 설교하는 일이나 화장실 청소하는 일이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같은 일입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질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심령을 고치시길 기뻐하십니다. 말씀 앞에서 말씀이 그러하니까 고민하며 상함을 드러내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특유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말씀과 현실을 분리하여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 리더는 가족을 돌보는 자이어야 합니다.
이 자질 가운데에서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면입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경제적인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를 보는 일이 필수입니다. 기도 열심히 하는 일도 좋지만 경제생활의 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남들을 위해 잘 베푸는데 경제생활을 엉망이면 아직 아닙니다. 돈이 없어 이집 저집 돈을 꾸어 쓰지만 갚을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면 아닌 사람입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기도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해도 아닌 사람입니다. 지도자감이 아닙니다.
또 경제적인 면에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굶는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닙니다. 옳지 않은 자세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안 살림은 어려워서 엉망인데 비싼 자가용을 빚을 내어 샀습니다. 이제 곧 부흥강사로 나가야 하니까 좋은 차를 타고다녀야 사람들이 잘 나가는 부흥강사로 알 것이니까 그랬다는 것입니다. 경차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 가치관. 이건 리더의 가치관이 아닙니다 사회에서도 손가락질 받을 가치관입니다. 허풍, 허영이 가득한 사람들은 리더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허풍이나 허영심은 나중에 다른 사람 등처먹을 사람들입니다. 빚을 함부로 많이 지는 사람도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정 물질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채워주실 때까지 기다려야되는 법입니다. 빚끌어다가 쓰는 자세로는 아닙니다. 또 빌렸으면 갚아야 하는데 갚지도 않아요. 나쁜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책자에는 시골교회 목회자의 얘기가 실려 있는데 작은 교회라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워 교회가 세워지기 까지 20여년 동안을 주유소에서 일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참 아름다운 얘기입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하면 마치 목사가 세상으로 나간 것처럼 여기는데 미국같은 곳에서는 아닙니다. 그저 우리 선입견일뿐입니다. 그래서 책임감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극단적인 믿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실 겁니다”라고 믿는데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식들이 굶고 있는데도 그 말만 되풀이 합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세가 옳지 않습니다. 가장이면 책임감있게 허드레 일을 하더라도 부양하려고 해야지 그리고 또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부으시지 안그런가요? 나쁜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실 이렇게 살면서도 교회에서는 열심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만 열심히 하는 것보고 리더로 세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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