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리더는 충성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리더가 되든지 충성스런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피터 와그너는 세 가지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주님께 충성하고 둘째는 주님의 교회에 충성하고 셋째는 세상에서의 주님의 목적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는 충성하는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만일 주님께 충성하는 일에는 소홀하고 세상에서의 주님의 목적에만 충성한다면 이것은 분명 커다란 잘못입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주님께 충성함이 없이 교회의 일에만 열심을 낸다면 이것 역시 잘못입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가정이 먼저냐? 아니면 교회가 먼저냐?” 여기에 서구의 목회자들은 “가정”을 손꼽습니다. 반면 한국의 목회자들은 “아니, 교회가 먼저지, 어떻게 가정이 먼저일 수 있느냐?”하면서 비방합니다. 그렇다면 서구의 목회자들이 하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서구의 목회자들 역시 무엇보다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맡겨진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들이 가정이라는 말입니다. 이 자세가 맞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리더들은 교회에 세우신 목회자들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모세에게는 아론도 함께 있었고, 미리암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는 여호수아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몸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주님으로 섬겼다는 사실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엘리사의 몸종은 게하시였습니다. 아마 게하시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엘리사 이후에 하나님이 쓰실 일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 (왕하 5:20)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성도들은 오해합니다. 이 말은 목회자에게 '예스 맨‘이 되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일에 방해가 됩니다.
목회자에게 충성하는 일에 대해 오해가 있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여 목회자 개인에게 친절하고 잘 대해 주는 일을 ‘충성’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개인적으로 잘 대하는 일도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교회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토대 위에서 목회자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주님께는 충성하지만 교회에는 충성하지 않은 채 목회자 개인에게 잘 하려 합니다. 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오해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에게 부담을 주는 행동입니다.
우리의 공통분모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단순한 말 같지만 깊은 뜻이 있습니다. 저 분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분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 역시 하나님의 사랑하기에 우리 모두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너무나 차갑게 느껴지는 말 같지만 가장 소중한 가치관입니다. 가장 튼튼한 끈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통분모’를 빼고 서로 간에 개인적으로 친해져 보려고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닙니다. 물론 지체 간에는 정말 친해지고 끈끈한 관계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어디까지나 공통분모 위에서입니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상급자와 하급자와의 사이에 끈끈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 서로 보살펴주고 앞길을 봐주는 예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에 이런 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급자들은 상급자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선물도 하고 잘 보이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하급자가 조직을 위해 진정으로 일을 하는 것이 상급자를 진실로 돕는 일이며 잘 보이는 일입니다. 조직을 위해서는 애를 쓰지 않고 개인적으로 상급자에게 잘 보이기위해서만 노력한다면 이는 잘못입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충성심은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비롯된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의 충성심입니다.
교회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에 더해졌을 때,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할 일은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 전에, 교회의 지체가 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그렇지 않습니다. 봉사부터 배우지 않으면 목회자와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일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지체가 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혹 배우려고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교회 지체가 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몸이 되어야 진실로 배울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체가 되고나서 그 토대 위에 목회자에게 충성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몸종이었습니다. 이 말은 모세의 개인적인 종이라기보다 모세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에 종이 된 것입니다. 모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종이된 것입니다. 이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담임목사님을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전적으로 협력할 일이 없거든 그 교회를 떠나라. 그것이 당신에게 좋다.” 이 말은 한 편으로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목회자가 하는 일을 불평하면서 자기는 자기대로 봉사하고 성도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도하면 이것은 개인에게 불행입니다. 옳지도 않을뿐더러 교회에 유익이 되질 못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최소한 죄는 짓지 않을 것이니까요. 차라리 자기를 인도해 주는 곳에 가서 열심히 사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자기에게도 좋고 교회에게도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디에 가도 적응을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참 큰일입니다. 자기가 목회할 수도 없는 일이고 말입니다. 옳지 않은 자세입니다. 또 충성하라고 하니까 ‘Yes Men’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잘못입니다. 충성에 대한 오해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건의만 하는 사람이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감당한 다음 건의를 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앞으로 일군이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세는 금물입니다. “나를 세워줘 봐, 지금 저 일군보다는 잘 할 거야.” 이는 잘못입니다. 셀이나 중식 팀, 여전도회, 형제회 등에서 리더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순복함이 없이는 일군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보통 저 사람에게 일하시는 것과 자기의 그것과를 분리하는 버룻이 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 성도들이 제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리더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결국 일은 성령이 이루십니다. 그런 까닭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이 개인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보는 일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현재는 기름부음이 없을 수 있지만 앞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기름 부을 사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주님 안에서 분별력이 예리하게 요구됩니다. 일군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 교회에 조대욱 형제라고 있습니다. 찬양과 경배를 하는데 담임목사님 보기에 기름부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담임목사님이 조형제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는 찬양 리더는 아닌가봐, 기름이 없어, 다른 사역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싶어.” 그러나 포도나무 교회의 임태집 형제는 달랐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조형제가 다른 교회의 찬양 리더들보다는 낫습니다. 기름부음이 한꺼번에 오는 게 아니잖습니까.” 요즘 듣기에 조대욱 형제가 찬양과 경배를 인도하면 참 놀랍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한다고 합니다.
다윗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다윗은 그의 아버지가 볼 때 리더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 역시 이새의 장남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인가 하여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어떤 사람입니까? 말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만큼 하나님이 뒷받침한 사람입니다. 이새의 모든 아들들을 다 본 다음에야 다윗은 불려 사무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만큼 다윗은 사람들보기에 리더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의 재목감이었습니다. 메시야의 조상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메시야의 언약을 이어나갈 리더감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리더를 분별함에 있어 하나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이나 은사를 통한 세우심이 있는가 하는 부분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말씀드린 것처럼 은사나 기름부음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본질 위에 서 있는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자신의 전존재로 동참하는지, 충성심이 있는지 등을 어느 것보다 앞서 살펴야 합니다.
'━━ 지성을 위한 ━━ > Leadershi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리더란? (0) | 2016.08.31 |
---|---|
9강 - 자질의 분별 (0) | 2016.08.30 |
9강 - 자질의 분별 (0) | 2016.08.26 |
8강 - 리더의 영향력(2) (0) | 2016.08.25 |
8강 - 리더의 영향력(2) (0) | 2016.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