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리더들을 분별하여 양육해야 하는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리더들을 잘 분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리더를 잘 분별하여 일군들을 세웠더라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리더들을 세운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겨난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교회 역시 기준이 아직 없는 상태입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일군이 없으니까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일저일 맡기기 바쁩니다. 규모가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기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다만 ‘십일조 생활을 하는가, 주일 예배에 잘 나오는가, 기도 생활을 하는가, 나온 지 얼마 되었는가’ 따져서 일군으로 발탁합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이 일군의 선발 기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적 기준은 아닙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훌륭한 일군들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런 기준도 없이 그저 ‘성도 수를 늘리기 위해, 또는 일군으로 세우지 않으면 교회를 떠날까봐, 건축을 위해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직분을 주면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일군으로 세우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교회에서는 장로나 권사 취임을 위해 선거운동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는 세상의 정치 선거 풍토가 교회 내에 들어온 예들입니다. 아주 타락한 예들입니다.
리더는 건물의 골조와 같은 것이라 튼튼해야 교회가 든든할 수 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든든하게 세워질려면 어떤 사람이 일군으로 세워지는가에 많은 부분이 달려있습니다. 골조가 튼튼할수록 건물은 든든한 법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골조에 해당하는 일군들이 튼튼해야 합니다. 이처럼 리더십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그 가운데 운행하시며 통치하시는 교회로 세워지려면 더욱 더 말할 것도 없이 리더들이 골조처럼 튼튼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누가 리더인가?’하는 안목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저 외부적인 종교적 행위를 잘 하면 리더 감으로 여길 정도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신학교를 다니는 사람이거나 졸업한 사람이면 검증함도 없이 환영하며 세우기 바쁩니다. 또 어느 신학교를 나왔는가하는 부분은 사람을 분별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상관없이 작용합니다. 성적 역시 리더십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만약 이런 요소들이 리더십을 결정하는 요인들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부적격자들입니다. 그들 중 누구도 성적이 우수하거나 신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중에는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언어에 탁월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들을 리더로 세울 것이며, 어떤 사람들을 잠재적인 리더로 분별하여 양육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교회는 지속적으로 리더를 양육해야 하는 과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더가 골조와 같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리더가 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리더가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양육하는 일에 힘서야 합니다. 리더이면서 리더를 키우는 리더 중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가능한 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리더감들을 분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일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쇼핑리스트를 통해 리스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리더로 세우는 일, 그리고 자신을 리스트에 비추어 보면서 자신은 리더로 자라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삼기 바랍니다.
첫째, 리더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일해 가시는 행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비전은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물론 목회자 개인에게만 주신 비전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를 향한 비전을 보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리더십이란 사람들을 현재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리로 사람들을 인도해 가는 영향력있는 지도자가 리더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리더가 교회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을 그리로 인도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거듭거듭 보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는 밭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수님은 “깨닫는 자가 열매를 결실을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예수님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았으며 그 일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은혜를 받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한 번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워 떠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생명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생명의 말씀을 보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성경이 말한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조금 어려워지자 다음 순간에 떠나갑니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표면적으로만 알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반면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을 보았기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리더들은 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즉 교회 가운데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는 자여야 합니다.
존 윔버 목사님은 개교회 집회를 한 후, 항상 담임목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젯밤에 무엇을 보셨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담임목사가 ‘보는 자’인가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로렌스 콩 목사님이란 분은 존 윔버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집회를 한 후 이렇게 물어오는 존 윔버 목사님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글쎄요, 별 다른 일은 없었는데요. 몇 사람을 하나님이 만지신 것 같고, 그리고는 별 일이 없었는데요.” 여기에 존 윔버 목사님은 “어젯밤에 교회 역사상 가장 큰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실제로 로렌스 콩 목사님은 별 보였던 일이 없었다고 그의 책에서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에 일이 생겼습니다. 주일 낮예배 설교를 마친 후 사람들을 초청하였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면서 통회하고 자복하고 꼬꾸라지고 놀라운 성령의 역사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똑같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보고,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합니다. 안목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리더의 덕목은 교회 가운데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안은 신앙의 본질 위에 서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서는 일이 보는 것의 관건입니다.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구하는 삶으로 인생이 조정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보는 것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목적과 목표가 되어지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자라고, 이렇게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친밀함 속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기 보다는 자기의 야망을 합리화시킬 수 있습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의 말입니다.
리더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자기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로 결정을 내릴 때,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데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듣는 것입니다. 즉 자문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결정을 자문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자기 생각을 말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조직을 위해 좋은 생각을 말할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생각일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 생각은 별 의미가 없는 법입니다. 이 말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이사야 55장입니다.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 55:8-9)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많이 배운 것, 많이 아는 것에서 나온 개인의 지혜는 하나님의 그것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으로 사람을 인도하면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자기 개인적인 생각을 따라 행하면 망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필연적으로 망할 것입니다. 인간들의 눈에는 그럴듯한 성공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저주일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인간의 생각으로는 안 됩니다.
영적 분별력은 하나님을 전존재로 사랑하는 신앙의 본질 위에 설 때에 주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서는 일이 필수이며 가장 핵심입니다. 잠재력인 리더들을 구할 때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 가운데에서 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비록 현재는 사역자가 아니지만 신앙의 본질 위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워지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일은 어느 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친밀함 속에 늘 엎드려있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한 번 주님과 만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주님을 인생의 목적과 목표로 삼는 신앙의 본질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또 교회의 사역이 확장되면서 중요한 것은 사역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가?’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도 사역은 확장될 수 있지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인 수가 수천 명이 모인다고 하지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하나님만이 하실 있는 일인 ‘사람들이 진정으로 거듭나는 일,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일, 세상적인 가치관이 버리고 전존재로 주님을 사랑하는 일, 자신의 삶을 드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 성도들이 죄와 세상을 이기는 일’등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일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속적으로 계시려면 우리가 항상 지속적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친밀함 속에 있어야 항상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또 섬기더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섬길 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리더들에게 이 부분은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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