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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Garden - 그리운 아버지 품으로 2

Joyfule 2018. 1. 17. 23:21
    
    
      The Secret Garden   
      Frances Hodgson Burnett 
      ​그리운 아버지 품으로 2    
     
    가만히 앉아서 흘러가는 맑은 물줄기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아치볼드 크레이븐은 마음과 몸, 둘 다 골짜기처럼 조용히 가라앉는 것을 차차 느꼈다.
    졸음이 슬슬 오는 듯했지만 잠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는 앉아서 햇빛이 비치는 물을 바라보았고 
    물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것들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곱게 핀 푸른색 물망초 무리가 시냇물에 바짝 붙어 있어서 이파리가 물에 젖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몇 년 전 그런 꽃들을 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실제로 그 꽃이 얼마나 고왔으며 작은 꽃 수백 송이가 피어 있으면
    푸른 색이 얼마나 멋졌던지를 정다운 기분에 젖어 생각했다.
    그렇게 소박한 생각이 슬슬 마음을 채운다는 것은 몰랐다.
    채우고 채워 다른 생각들이 밀려났다는 것을.
    마치 달콤하고 맑은 샘물이 오래 고여 있던 웅덩이에서 
    퐁퐁 솟아나 점점 넘쳐서 어두운 물들을 다 흘려보낸 듯했다.
    하지만 물론 본인 스스로는 이런 생각을 하지못했다.
    앉아서 선명하고 섬세한 파란 꽃들을 쳐다보는 동안 골짜기가 
    점점 더 고요해진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었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그러다 마침내 잠에서 퍼뜩 깬 듯 몸을 움직였다.
    크레이븐 씨는 천천히 일어나 이끼 융단 위에 서서 
    길고 깊은 숨을 부드럽게 들이마시며 스스로도 의아해했다.
    몸 안에서 뭔가 풀려 빠져나간 듯했다.
    아주 조용히.
    "뭐지?"
    크레이븐은 속삭임에 가까운 소리로 중얼거리며 한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마치 살아 있는 기분이 들잖아!" 
    그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경이에 대해선 잘 아는 바가 없다.
    아직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하리라.
    크레이븐  본인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크레이븐은 이 기묘했던 시간을 몇 달 후 
    미슬스웨이트에 왔을 때도 기억했고 우연하게도 이날이 
    콜린이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가 외쳤던 날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영원히 살 거야. 영원히 언제까지나!"
    이 특별한 고요가 저녁 내내 남아 있어서 크레이븐 씨는 
    새롭게도 편안히 잠 들수 있었다.
    하지만 그 편안함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음 날 밤이 되자 그는 다시 어두운 생각에 문을 활짝 열었고 
    그 생각들은 무리 지어 다시 쿵쿵 밀고 들어왔다.
    크레이븐 씨는 골짜기를 떠나 다시 방랑을 계속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떤 순간들이 드문드문 찾아왔다.
    가끔은 30분이 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럴 때는 영문도 알 수 없이 검은 짐이 두둥실 떠올라 
    그의 등에서 내려간 느낌이 들었고, 
    그럴 때면 크레이븐은 그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서서히, 서서히, 알지 못할 이유로 그는 정원과 함께 활기를 얻었다. 
    황금 여름이 진한 황금색 가을로 바뀌어질 때 크레이븐은 코모 호수로 갔다.
    거기서 꿈처럼 사랑스러운 광경을 만났다.
    며칠 동안 수정처럼 맑은 푸른 호수 위에서 노닐거나 
    다시 언덕 위에 부드럽고 울창하게 자란 푸르른 나무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파곤해져서 잠이 솔솔 올 때 까지 거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잠이 더 잘 왔고 이제는 무서운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몸이 더 튼튼해지는 지도 모르겠군."
    크레이븐 씨는 생각했다.
    몸은 분명히 더 튼튼해지고 있었지만 생각이 바뀐 후 
    드물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덕분에 영혼도 천천히 튼튼해지고 있었다.
    미슬스웨이트 생각이 더 많이 났으며 집에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금 어렴풋이 아들이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고 
    집에 돌아갔을 때 아들이 잠든 동안 다시 조각 기둥 옆에 
    서서 끌로 깍은 듯한 상앗빛 얼굴과 눈을 두른 짙은 속눈썹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었다.
    그 생각을 하니 몸이 움츠려졌다.
    어떤 놀랍도록 멋진 날, 
    크레이븐이 무척 멀리까지 걸어 나가는 바람에 돌아올 때는 
    둥근 달이 높이 떠올랐고 온 세계가 자주색으로 그늘지고 은색으로 반짝였다.
    물과 호숫가, 숲의 고요함이 참으로 멋져 
    크레이븐은 지금 머물고 있는 빌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호수 가장자리의 나무 그들에 둘러싸인 작은 테라스로 내려가 
    의자에 앉은 후 천상의 것과도 같은 밤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이상한 평온함이 슬그머니 덮쳐 오는 기분이 들었고,
    그 느낌은 더욱 깊어져 마침내 그는 잠에 빠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