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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Garden - 벤 할아버지 3

Joyfule 2017. 12. 26. 03:26
    
    
      The Secret Garden   
      Frances Hodgson Burnett 
      벤 할아버지 3  
     
     "저 남자는 누구야?"
    디컨과 나는 비척비척 일어났다.
    "남자라니!"
    우리는 모두 낮고 빠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콜린이 높은 벽을 가리켰다.
    "봐!"
    콜린은 흥분해서 속삭였다.
    "그냥 봐!" 
    나와 디컨은 몸을 빙그르르 돌려 쳐다보았다.
    사다리 꼭대기 위에 선 벤 할아버지의 성난 얼굴이 
    담장 너머로 우리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실제로 나를 향해 한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내가 홀몸이 아니고 아씨가 내 딸이면."
    벤은 외쳤다.
    "호되게 매질을 해줬을 것인디!"
    벤은 기운좋게 뛰어내려 나를 혼쭐이라도 내려는 양 
    위협적으로 한 단 더 높이 올라왔다.
    하지만 내가 벤에게 다가가자 벤은 확실히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사다리 맨 윗단에 서서 나를 향해 주먹을 흔들기만 했다.
    "내 한 번도 아씨를 좋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니께!"
    벤이 열변을 토했다.
    "아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참을 수가 없었어.
    삐쩍 말라 탈지유 같은 얼굴을 한 어린애가 꼬치꼬치 캐묻지를 않나 
    반가워하지도 않는데 수시고 다니질 않나,
    애초에 아씨랑 어떻게 친해졌는 지를 모르겠다니께.
    그 망할 울새가 없었더라면..."
    다음 순간 벤은 정말로 내가 있는 담장 안쪽을 타고 내려올 듯 보였다.
    그렇게 노발대발했다.
    "못 된것!"
    벤은 나를 향해소리쳤다.
    "울새에게도 그렇게 못되게 굴어보라제...
    하지만 걔도 무엇보다 콧대가 세거든!
    울새에게 어디 아씨 평소하는 대로 하지 그려!
    흠!  아이고!  저 말썽꾸러기!"
    그러더니 벤은 결국 호기심에 굴복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다음 말을 불쑥 내뱉고 말았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들어갔다냐?"
    "방법을 알려 준 건 울새에요."
    내가 고집스럽게 따졌다.
    "울새도 알고 그런 건 아니지만 결국 가르쳐 준 셈이 되었죠.
    할아버지가 주먹을 휘두르는 동안에는 여기서는 말할 수 없어요."
    바로 그 순간 벤은 내 머리 너머로 뭔가가 풀밭 위에서 
    그쪽으로 다가오는 걸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휘두르던 주먹을 가만히 멈추고 입을 그야말로 떡 벌렸다.
    벤이 거센 물살처럼 말을 쏟아 놓는 소리가 처음 들렸을 때 
    콜린은 무척 놀라서 마법에 홀린 양 윗맘만 일으켜서 귀를 기울였었다.
    그렇지만 말이 이어지자 제정신을 차리고 황제처럼 오만하게 디컨에게 신호했다.
    "나를 저기까지 밀어!"
    ​콜린은 명령했다.
    "아주 가까이 밀어서 저 사람 바로 앞에 세워."
    그리고 바로 이 모습을 벤이 보고 입을 벌린 것이었었다.
    호사스러운 쿠션과 가운으로 덮인 휠체어가 
    마치 왕가의 마차 같은 모습으로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 위에는 둘레가 검은 커다란 눈으로 왕족처럼 명령을 내리면서,
    마르고 하얀 손을 오만하게 뻗은 어린 라자가 기대어 앉아 있었다.
    휠체어는 벤의 코 바로 아래에 멈춰 섰다.
    입을 떡 벌린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요?"
    라자가 따져 물었다.
    벤은 어찌나 빤히 쳐다보던지!
    노인의 충혈된 눈은 유령이라도 본 양 눈앞의 상대에 못 박혔다.
    벤은 쳐다보고 또 쳐다보기만 했고 목에서는 치미는 덩어리를 
    꿀꺽 삼켰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구요?"
    콜린은 한층 더 오만하게 굴었다.
    "대답해요?"
    벤은 옹이 박힌 손을 들어 눈을 쓸고 이마를 쓴뒤 이상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련님이 누구냐구요?"
    벤이 말했다.
    "그래, 알다마다요.
    얼굴에서 도련님 어머님의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대체 어찌 여기가지 오셨을까,
    하지만 도련님은 불쌍한 불구자라고 하던디."
    콜린은 등이 아팠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난 불구자가 아냐!"
    콜린은 격분해서 소리쳤다.
    "아니라고!"
    "얘, 불구자 아니에요!"
    내가 격렬히 분개하여 담장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
    "작은 핀만한 혹 하나 없어요.
    내가 살펴봤는데 없었다구요. 단 한개도!"
    벤은 한손으로 다시 이마를 훑으며 아무리 봐도 모자란다는 듯 쳐다보았다.
    손이 떨리고 입이 떨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벤은 무지한 노인, 수완이라고는 없는 노인이었으며
    단지 들은 얘기를 기억할 뿐이었다.
    "도련님은... 도련님은 곱사등이 아니여?"
    벤은 쉰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콜린이 외쳤다.
    "다리는, 다리는 휘지 않았나?"
    벤은 한층 더 쉰 목소리로 물으며 몸을 떨었다.
    이건 너무 심했다.
    보통 짜증 발작을 일으킬 때 솟구치던 힘이 
    이제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해서 콜린의 몸을 타고 흘렀다.
    이때까지 한번도 콜린은 다리가 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벤의 목소리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소문을 
    이처럼 똑똑히 드러내자 라자의 피와 살은 참지 못할 지경이었다.
    콜린은 분노와 모욕받은 자존심 때문에 모든 것을 싹 잊어버렸고,
    이순간 전에는 절대 알지 못했던, 부자연스럽다고 할 만한 힘이 넘쳐 흘렀다.
    "이리 와!"
    콜린은 디컨을 향해 소리쳤다.
    콜린은 실제로 아랫몸을 덮은 담요를 떨치고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이리 와! 
    이리 오란 말야! 당장."
    디컨은 순식간에 콜린의 옆에 섰다.
    나는 짧게 헉 소리를 내며 숨을 죽였다.
    내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콜린은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단 말이야. 해!" 
    나는 숨을 죽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한 빨리 중얼거렸다.
    잠깐 격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덮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디컨은 콜린의 팔을 잡았다.
    마른 다리를 밖으로 내디디고 가는 발이 풀밭을 밟았다.
    콜린은 똑바로, 화살처럼 곧게 등을 펴서 이상할 정도로 키가 커 보였다.
    머리는 뒤로 젖히고 특이한 눈동자는 빛을 발했다.
    "날 봐!"
    콜린은 벤 앞으로 훅 튀어 올랐다.
    "나를 보라고! 보란 말이야!"
    "도련님은 내 맹키로 등이 꼿꼿하셔라."
    디컨이 말했다.
    "요크셔의 어떤 애들보다도 등이 꼿꼿혀여!" 
    다음 순간 벤이 보인 행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벤은 목메어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두 손을 한데 맞부딪치자 갑자기 눈물방울이 세파에 찌든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그는 갑자기 말을 쏟아냈다.
    "사람들이 어찌나 거짓부렁을 하는지!
    도련님은 삐쩍 마르고 새하얗기는 해도 혹은 한 개도 없구먼.
    혹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구먼.
    주님, 도련님께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디컨이 콜린의 팔을 꽉 잡아 부축하고 있었지만 
    소년은 아직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콜린은 더욱더 꼿꼿하게 서서 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난 할아범의 주인이야."
    콜린이 말했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동안에는, 그리고 할아범도 내게 복종해야 해.
    여기는 내 정원이야.
    이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할 생각 마!
    사다리에서 내려가서 긴 산책로로 가.
    메리 양이 나가서 안으로 데려올 테니까.
    난 할아범과 얘기를 해보고 싶으니, 
    할아범이 끼는 게 달갑진 않지만 이젠 어쩔 수 없이 비밀에 넣어 주어야지.
    서둘러!"
    벤의 쭈글쭈글한 늙은 얼굴은 아직도 이상하게 쏟아지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두 팔로 서서 머리를 뒤로 젖힌 마르고 꼿꼿한 콜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듯 했다.
    "어, 얘야."
    벤은 속삭이다시피 말했다.
    "아! 아가야."
    그러더니 벤은 제정신이 들었는지 
    갑자기 정원사들이 그러듯이 모자에 손을 대며 인사했다.
    "예, 도련님! 예, 도련님!"
    그러면서 사다리를 내려가 고분고분하게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