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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한국GM, 같은 위기 다른 처방이 운명 갈랐다

Joyfule 2018. 2. 20. 17:41

르노삼성·한국GM, 같은 위기 다른 처방이 운명 갈랐다

    입력 : 2018.02.20 06:00 | 수정 : 2018.02.20 10:51

    “르노삼성의 생산성은 그룹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합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주요 전략차종의 개발과 생산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역삼동 푸르덴셜타워에서 열린 르노삼성의 신년 기자간담회. 이 자리에서 도미닉 시뇨라 르노삼성 사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도 철저하게 경쟁력을 높여 그룹 내 강자가 되고 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고용 보장과 고용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려한 부활’. 르노삼성 부산공장 직원들이 SM6를 사이에 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SM6는 지난 2016년 3월 출시 후 22개월만인 지난달 내수 생산 10만대를 돌파했다./르노삼성 제공
    같은 날 한국GM은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한국GM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실적이 크게 악화돼 가동률이 20%에 불과한 군산공장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이 새로운 성장 청사진을 제시한 날 한국GM은 주요 생산시설의 폐쇄와 함께 한국 시장에서 전면 철수를 할 수도 있다는 뜻까지 밝혔다.

    르노삼성과 한국GM은 최근 실적에서도 뚜렷하게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한 때 극심한 위기를 겪었던 르노삼성은 2013년 흑자전환에 성공한 후 최근 3년간 약 9000억원의 누적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반면 한국GM은 같은 기간 영업손실이 약 1조 3000억원에 달했다.

    과거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두 회사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낸 원인은 무엇일까.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구조조정에 기꺼이 협조했던 르노삼성 노조와 위기에도 아랑곳없이 제 몫을 찾는데 급급했던 한국GM 노조가 회사의 운명을 갈랐다고 평가한다.

    ◇ 뼈 깎는 구조조정 나선 르노삼성, 성과급으로 불만 달랜 한국GM

    “뼈를 깎는 극약 처방 없이는 회사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지금 임직원의 희생을 기필코 미래의 발전과 성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2011년 9월 르노삼성의 신임 CEO(최고경영자)로 임명된 프랑수아 프로보 사장은 취임 직후 대대적인 ‘리바이벌 플랜(회생계획)’을 발표했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당시 르노삼성은 벼랑 끝에 몰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2010년 27만5000대를 생산했던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2012년 생산량이 ‘반토막’ 수준인 13만대로 급감했다. 유럽 재정위기와 내수침체로 판매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동유럽 등으로 수출하던 준중형 세단 SM3의 생산이 중단됐기 때문이었다. 2010년 약 3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르노삼성은 이듬해인 2011년 약 2150억원의 적자를 냈다.

    ‘소방수’로 투입된 프로보 사장은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신속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리바이벌 플랜이 가동된 2년간 르노삼성은 희망퇴직 실시 등을 통해 임직원 수를 5500명에서 4300명으로 약 22% 감축했다. 줄어든 생산량만큼 구조조정에 집중하면서도 1인당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도 함께 이뤄졌다.

    극약 처방에 따른 보상은 확실했다. 자발적인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에 주목한 모그룹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북미에 수출하는 소형 SUV 로그의 생산을 르노삼성 부산공장에 배정한 것이다. 매년 10만대 이상 수출하는 로그의 생산을 전담하면서 르노삼성의 실적은 빠르게 회복됐다. 2014년 1475억원을 기록한 르노삼성의 영업이익은 2015년 3262억원, 2016년에는 4175억원으로 매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GM 역시 르노삼성과 비슷한 위기를 맞이했다. 지난 2013년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가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의 철수를 결정하면서 한국GM의 수출물량도 급감했고, 결국 이듬해인 2014년 한국GM은 1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은 르노삼성과 너무나 달랐다. 한국GM은 2014년과 2015년 임직원들에게 평균 105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생산물량 감소에 대한 노조의 반발과 파업 등을 우려해 오히려 후한 보상으로 이들을 달래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한국GM의 대응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보다 생명 연장을 위한 ‘산소호흡기’를 단 것에 불과했다. 2014년 1만7000여명이었던 임직원 수는 지금도 비슷한 수준인 1만6000여명으로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매년 수출과 판매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거액의 인건비를 지급하면서 실적은 계속 악화됐다. 한국GM은 2015년과 2016년 각각 5944억원, 5312억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 ‘3년간 무분규’ 르노삼성 노조, 통상임금 달라며 회사 압박한 한국GM 노조

    비슷한 위기에서 두 회사의 대응방법이 극명하게 엇갈린 배경에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노조의 영향이 컸다. 르노삼성 노조의 경우 회사의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 노력에 기꺼이 협조한 반면 한국GM 노조는 강한 반발로 맞섰다.

    지난해 10월 임금협상 조인식을 마치고 기념촬영하는 르노삼성 노사/르노삼성 제공
    회사가 리바이벌 플랜을 가동한 2012년부터 2년간 르노삼성 노조는 임금 동결에 합의하고 복리후생에 대한 요구도 접어뒀다. 인력 감축을 위해 실시된 희망퇴직도 별다른 잡음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생산성은 빠르게 향상됐다. 르노-닛산그룹 각 지역별 공장 50여곳의 생산성 순위를 보면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2013년 중간 수준인 25위에서 2014년 19위로 상승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최상위권인 4위까지 올라왔다.

    특정 산별노조에 속하지 않은 르노삼성 노조는 2015년 이후 3년 연속으로 무분규 임금협상 타결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도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빠른 10월에 일찌감치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 프로보 전 사장은 지난 2016년 한국을 떠나면서 회사의 체질 개선 노력에 기꺼이 동참해 준 노조에 직접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반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속한 한국GM 노조는 줄곧 ‘투쟁’으로 회사에 맞섰다. 2011년 이후 한국GM 노조는 2014년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매년 임금협상 과정에서 파업에 나섰다. 쉐보레의 유럽 철수 결정 이후 회사의 실적은 빠르게 악화됐지만, 노조는 아랑곳없이 매년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GM 노조는 오히려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임금까지 달라며 2011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GM은 통상임금 소송으로 인건비가 한꺼번에 나갈 것으로 예상해 약 7900억원을 비용으로 처리했고 이는 2012년 3400억원의 영업손실로 이어졌다.

    노조의 난데없는 요구에 크게 당황한 GM의 댄 애커슨 당시 회장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에 대한 정부의 조치를 요청했다. 한국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배수진’을 쳤던 GM은 박 대통령이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약속한 후 예정된 투자를 그대로 진행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통상임금 충당금을 다시 환입하면서 이듬해 한국GM은 재무제표상 영업이익 1조원대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GM 노조는 5차례의 부분파업을 진행했고 연내 임금협상을 타결하는데도 실패했다. 연말에 사상 최악의 실적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도 노조는 오히려 총파업을 하겠다며 회사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군산공장 폐쇄 결정 이후 회사의 결정을 규탄하는 집회에 나선 한국GM 노조/연합뉴스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인 올리버 와이만이 발표한 ‘2016년 하버리포트’에 따르면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차량 1대를 생산하는데 20.86시간이 소요된 반면 한국GM 군산공장은 두 배가 넘는 59.31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GM 군산공장은 가동률이 20%까지 하락한 상황에서도 생산직 근로자들이 평균 연봉의 80% 지급을 보장받았다. 결국 GM은 세계 최하위권의 생산성을 갖고도 고비용 구조에 허덕였던 군산공장에 대해 폐쇄 조치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 서로 달랐던 그룹 전략…글로벌 확장하는 르노닛산, 해외무대 철수하는 GM

    모그룹의 사업전략 차이도 르노삼성과 한국GM의 입지가 엇갈린 주된 이유로 꼽힌다. 르노-닛산그룹의 경우 지속적인 글로벌 시장에서의 외형 확대에 나서고 있는 반면 GM은 최근 10여년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자동차 메이커인 르노는 지난 1999년 닛산을 인수하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2016년에는 미쓰비시까지 계열사로 추가하며 덩치를 불렸다.

    판매량 확대를 위해서는 최근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SUV 차종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현재 르노-닛산그룹의 프리미엄 SUV 개발을 전담하고 있는 곳이 바로 르노삼성의 중앙연구소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아시아 최초로 대구에 차량시험센터까지 건립하며 연구개발 분야에서 규모를 더욱 키우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지금과 같은 확장 전략을 계속 유지할 경우 그룹의 주력 판매차종 개발을 전담하는 르노삼성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GM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한 차례 파산 위기를 겪은 이후 내실 강화에 주력해 왔다. 방만한 글로벌 사업장을 정리해 시장 규모가 큰 미국과 중국에 집중하고, 비용 절감을 통해 확보하는 자금은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미래 신기술에 투입하겠다는 전략이었다.

    2014년 메리 바라 회장이 취임한 이후 구조조정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GM은 지난해 독일 자회사 오펠과 영국 복스홀을 매각한데 이어 인도와 남아공 등에서도 잇따라 철수했다. 매년 악화되는 실적과 함께 강성노조 문제까지 거론되는 한국 시장도 자연스럽게 다음 철수대상으로 거론돼 왔다.

    한국GM의 경우 GM의 중·소형차 전담 개발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유럽시장 철수로 수요가 급감한데다 마진도 높지 않은 중·소형차 개발에 GM이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 CEO의 역량도 큰 차이‘판매의 달인’ 선택한 르노삼성, 자동차 非전문가 앉힌 한국GM

    중요한 순간 CEO가 보여준 역량의 차이도 르노삼성과 한국GM의 운명이 엇갈리는데 영향을 미쳤다.

    박동훈 르노삼성 전 사장(왼쪽)과 제임스 김 한국GM 전 사장(오른쪽)
    르노삼성은 지난 2016년 4월 프랑수아 프로보 사장의 후임으로 박동훈 사장을 임명했다. 박 사장은 2005년부터 8년여간 폴크스바겐코리아의 사장으로 일하며 수입차 업계에서 ‘판매의 달인’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2008년부터 4년간 한국수입차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실제로 박 사장 취임 후 르노삼성의 실적은 더 큰 폭으로 개선됐다. 2016년 르노삼성은 국내 시장에서 전년대비 38.8% 증가한 11만1101대를 판매했다. 영업이익은 4175억원으로 28% 증가했다. 취임 이후 출시한 준대형 세단인 SM6와 중형 SUV인 QM6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게 주효했다.

    비록 지난해 10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취임 1년 반만에 자리를 떠났지만, 르노삼성이 확실하게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데는 박 사장의 역할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GM은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2016년 세르지오 호샤 사장의 후임으로 제임스 김 사장을 임명했다. 김 사장은 한국GM 합류 전까지 야후코리아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 등을 거쳤다. 자동차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그에게 한국GM이 기대한 역할은 노사갈등의 원만한 해결과 방만경영에 대한 구조조정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김 사장은 취임 후 중요한 상황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해 초 출시한 신형 크루즈는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국내 시장에서 흥행에 실패했고, 노조는 2년 연속으로 부분파업을 벌이며 회사를 압박했다.

    김 사장은 결국 재임 기간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지난해 8월 카허 카젬 사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중도 퇴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19/20180219028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