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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평해전' 개봉 첫날]

Joyfule 2015. 6. 26. 23:55

 

[영화 '연평해전' 개봉 첫날]

쥬라기월드 누르고 예매율 1위
"2002년 월드컵때 이런 일이… 국가와 애국심 생각하게하는 영화"
한민구 국방 "부모 심정으로 봤다"
한국 전쟁영화 최초로 3D 상영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한 북한 경비정에서 날아온 85㎜ 포탄이 조타실에 명중할 때 상영관도 배처럼 흔들렸다. 고속정만 한 공간을 가득 메운 관객은 다 같이 2002년 6월 29일의 참수리 357호에 승선한 것 같았다. 화염이 치솟았고 귀가 먹먹해졌다. 관객은 몸을 웅크렸다. 스크린 속 피가 흥건해진 갑판으로 뜨거운 탄피가 쏟아졌다.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이 24일 개봉했다. 이날 저녁 서울 용산 CGV에서 만난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다. 그들은 월드컵 4강 신화(神話) 속에서 고립돼 목숨 걸고 싸운 357호 용사들과 마주해야 했다.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4위전이 열린 6월 29일, 새벽에 출항할 때부터 다들 숨을 죽였다. 기습 공격을 받아 교전이 벌어졌고 윤영하 정장, 황도현 하사, 조천형 하사, 서후원 하사가 총알이나 파편에 맞아 차례로 쓰러졌다.

조타장 한상국 하사는 침몰한 357호와 함께 실종됐고 중상을 입은 의무병 박동혁 상병은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됐다.

'연평해전'은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와 현실이 겹쳐진다. 월드컵 중계방송 아래로 뉴스 속보가 무심하게 흘러간다. 실제 있었던 합동영결식, 유족의 오열, 예포 발사, 하관 등을 당시 TV 화면 그대로 옮겨 보여줄 땐 객석도 흐느꼈다. 옆자리에 앉은 여성 관객은 눈가를 훔치기 바빴다. "일발 쏴" "일발 쏴" "일발 쏴"…. 20~30대 젊은 관객이 대부분인 객석은 13년 전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의 장례식에 몸을 들썩이며 동참했다.

영화‘연평해전’이 개봉한 24일 관객들이 용산 CGV 에서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다. ‘연평해전’은 이날 오후 예매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주완중 기자
영화 '연평해전'은 이날 오후 3시 예매점유율 1위에 올랐다. 공룡 판타지를 담은 '쥬라기 월드'와 1978년 부산의 납치사건을 다룬 '극비수사', 용산 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수의견'을 제쳤다. 우리가 짐짓 잊었던 전쟁의 한 토막이 다른 실화와 환상을 모두 넘어선 것이다.

본편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와도 관객은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응원하겠다"는 윤영하 정장의 생전 영상을 지켜봤고 생존 장병들의 증언을 들으며 붙박인 듯 앉아 있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이 영화를 본 대학원생 조선영(27)씨는 "윤영하 정장의 아버지가 벽에 걸린 윤영하의 하얀 정복을 쓰다듬다 부둥켜안을 때, 숨을 거둔 박동혁을 향해 어머니가 전기충격기를 들이댈 때 눈물이 쏟아졌다"며 "2002년 월드컵 때 이런 비극이 있었는지 영화를 보고야 알았다"고 했다. 조금 일찍 퇴근해 달려왔다는 직장인 정인호(32)씨는 "국가란 무엇이며 애국심이란 또 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며 "중학생 조카를 데리고 다시 볼 것"이라고 했다.

	영화 예매 점유율.
        

관객은 영화관 화장실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영화가 끝나고 들어간 남자화장실에서 가장 많이 들린 소리는 "슬프네" "너도 울었지?"였다. 이날 CGV에서 이 영화 예매자는 여성이 63%, 남성이 37%다. 나이별로는 핵심 관객이랄 수 있는 20대가 61%를 차지했고 30대(23%)·40대(10%)·10대(6%) 순으로 나타났다. 관객 '플스폰'은 인터넷에 "한일 월드컵 당시 모든 국민이 환호했을 때 실제 일어난 진짜 대한민국 역사라는 것만 알아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는 글을 남겼다. 영화의 원작 소설 '연평해전'을 쓴 최순조씨는 "색깔을 들씌우지 마라"며 "그들은 정치적 목적을 갖고 목숨을 던지지 않았다. 주어진 책임을 다한 것뿐"이라고 했다.

'연평해전'은 한국 전쟁영화 최초로 3D로도 볼 수 있다. TV 화면으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 섹션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월드컵 경기장의 함성과 357호 용사들의 악전고투를 교차 편집하면서 감정 진폭을 키웠다. 카리스마 넘치는 '독쟁이' 윤영하와 수병들이 좋아하지만 남모를 상처가 있는 한상국, 맑고 책임감 강한 박동혁을 중심으로 승조원의 끈끈한 관계, 남겨진 가족의 애환을 서정적으로 뭉쳤다. 파도 벼락, 꽃게 라면, 인간 안테나, 애인 면회 같은 장면이 희극적 쉼표를 찍어준다.

이날 저녁 간부들과 함께 용산 CGV에서 이 영화를 본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오늘 영화의 주인공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의 아들들이고, 장관 이전에 부모의 심정으로 영화를 봤다"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반드시 기억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객 대부분 20·30대… 영화 끝나자 "너도 울었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