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206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 몇몇 친구들이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 중 한 친구는 수시로 스마트 폰을 통해 증권시세를 살폈다. 내 눈에는 돈에 묶여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사무실 근처 주차장 앞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파는 남자를 보았다.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밀리는 손님 때문에 오줌을 참아가면서 붕어빵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몫 좋은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비오는 날이나 휴일에도 그 자리에 나와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일식집을 경영하는 부부도 냉면집 주인도 고깃집 노인도 돈이 들어오는 계산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큰 빌딩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 돈은 많지만 사건 사고로 항상 전전긍긍이다. 임차인들과 소송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한 달에 들어오는 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지구별 나그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지구별 나그네 바닷가에서 다양한 여행객을 본다. 파도 소리가 스며드는 밤바다의 해변에 작은 텐트를 치고 희미한 등불 아래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검은 바다와 밤하늘이 붙은 짙은 어둠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닷가 외진 소나무 숲 끝자락에 캠핑카를 세워두고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다. ​작은 차를 세워두고 그 안에서 말없이 밤을 지새는 사람도 종종 본다. 인적이 드문 곳, 참된 고독을 맛볼 수 있는 곳을 찾아 자연과 조용히 이야기하는 ‘방랑하는 정신’들을 발견한다. ​공직에 있던 삼십대 후반 제네바로 출장을 가서 한달 가량 그곳에 혼자 묵은 적이 있었다. 저녁이면 붉은 노을이 스며드는 레만호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노동자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벗들과의 정담(情談)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벗들과의 정담(情談) 한 집안의 소송을 맡았다가 우연히 그들 조상의 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조선의 선비였던 조상은 과거의 일차 시험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묵으면서 이차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다. 그 선비는 엉뚱한 취미가 있었던 것 같다. 공부보다는 벗들과 정담을 나누는 걸 더 즐거워했던 것 같다.그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가 지은 노랫말에 당시 장안 기생들이 곡을 붙여 부르면서 히트가 된 것 같다.​그 선비가 한양의 성균관에서 보낸 세월이 십 년쯤 흘렀다. 다른 선비들은 과거에 합격을 해서 벼슬길로 나섰는데 그만 낭인이 되어 혼자 남았다. 성균관의 마당에 낙엽이 떨어지던 가을 어느 날이었다. 키가 후리후리한 선비 한명이 손에 술병을 들고 그 선비를 찾아왔다. 이미 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누워서 빈둥거리기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누워서 빈둥거리기 내가 묵는 실버타운 로비 엘리베이터 옆에는 중국식 자단나무 의자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다. 바닥은 딱딱하고 등을 꼿꼿이 세우고 단정하게 앉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졌다. 조선의 왕이 앉는 의자도 반듯하게 앉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단정한 위엄을 나타내도록 하는 유교 사회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의자들은 사람이 단정하게 앉게끔 설계되어 있다. 의자의 다리를 낮추거나 적당히 자르면 대번에 앉기가 훨씬 좋아진다. 의자는 낮으면 낮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어머니 생전에 의자의 다리를 톱으로 잘라 낮추어 드렸었다.​나는 요즈음 침대에 길게 누워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고 밤이면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노란 달을 보기도 한다. 누워서 천정의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그래 그럴 수 있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그래 그럴 수 있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 호소하는 사람마다 “세상이 왜 이래요?”하고 말하곤 했다. 정의가 강물같이 흘러야 하는데 왜 그렇지않느냐고 내게 따졌다. 내가 매일 법정에서 보는 세상은 더러운 흙탕물로 가득 찬 늪 같은 세상이었다. 나는 내게 따지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본래 그런거야 그럴 수 있어’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나는 혼자서만 고통을 받는 것처럼 생각하고 아이같이 투정 부리는 사람들이 싫다. 그 누군들 아프지 않아본 사람이 있을까.​가수 양희은 씨가 ‘그럴 수 있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는 기사를 봤다. 삶에서 일어난 불행에 대해 토달지 않으려는 그녀의 입버릇 같은 말이다. ​내가 고등학교 이학년 시절 어둠침침한 독서실에서 양철도시락의 찬밥을 점심으로 먹고..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죠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죠 추석을 하루 앞두고 정선의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팬션에 가족이 모였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다. 정선의 시골장에서 사온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정원에서 숯불에 구워 먹었다. 오일장에서 사온 양념한 고들빼기와 김치도 깊은 맛이 스며 있었다. 초등학교 삼학년인 열살짜리 손자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나를 놀린다.​“할아버지 배는 완전 농구공이야.”​“맞아 그런데 손자도 배구공쯤 되네”​“히히”​녀석의 앞니 사이의 넓은 틈이 눈에 들어온다.​“손자 요즈음 뭐가 즐겁니?”​내가 물었다.​“있죠. 저 고백 받았어요. 교회에서 만난 여자아이가 있는데 나를 좋아한다고 그래요.”​“너는?”​“나도 좋아하죠.”​“그럼 잘해줘라. 괜히 으시 대고 잘난 척..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대통령들의 좋은 꿈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대통령들의 좋은 꿈 옛날에 썼던 메모지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다. 김영삼대통령 초기였던 것 같다. 청와대에서 근무를 하는 친구가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대통령이 저녁은 칼국수와 반찬 하나로 하라는 지시가 내렸지. 주방에서 난리가 났어. 반찬을 하나로 하면 김치인데 간장을 내놔야 하는 건지 아닌지를 놓고 말이야.”​그 말을 듣고 내무부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말했다.​“전에는 안 그랬는데 장관 회식에서 갑자기 국수를 시키는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밑의 직원들은 삼겹살을 먹고 싶어도 그걸 말하지 못하는 거야.”​대통령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가 미치는 영향이었다. 대통령들마다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 꿈과 의욕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어떤 대통..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동은 행복인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동은 행복인가? 내가 있는 바닷가의 실버타운에는 미국에서 역이민을 온 노년의 부부들이 있다.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던 그들은 고국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육십년대 이백 달러를 가지고 나가 백만불이 넘게 벌어 고국으로 왔으니 괜찮지않느냐고 하는 분도 있다. 옛날에 시골에 살던 사람이 서울가서 돈 벌어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이민을 가서 고생했다는 그들은 노년에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를 찾은 것 같다. 미국의 집을 그대로 두고 임대한다는 분도 있고 평생 저축한 돈을 은행에 두고 관리한다는 분도 있다. 그들은 노년을 동해의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살다가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막연한 낭만적인 꿈과 현실의 그들이 하고 싶은 게 좀 다른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억울함에 대하여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억울함에 대하여 고교 동창생이 구속 된 적이 있었다. 그 부인이 찾아와 변호를 부탁하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같은 학교를 나왔는데 우리는 왜 이런 거야?”​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변호사인 나와 비교가 된 것 같았다.​또 다른 고교 동창이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 그는 잘생긴 데다가 운동도 잘하고 주먹도 강했다. 그는 재벌집 아들인 동창에게 잘 했다. 그 인연으로 그는 재벌가의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몇 년 후 그가 목이 잘렸다. 회사 내에서 횡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횡령한 돈으로 룸쌀롱을 드나들면서 재벌가의 아들같이 행동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몇 년 후 그가 외판사원이 되어 초라한 모습으로 나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를 사무실 근처의 음식점으로 데리고 가서 냉면을 먹는..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한 끗 차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한 끗 차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몇백명 모여 공부하는 산속의 기숙학원을 유튜브 화면을 통해 봤다.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곳 같았다. 군대식으로 점호도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젊은시절 고시원에 있을 때의 장면들이 머리속에서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외무고시를 준비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하루의 공부계획량을 짜고 과학적으로 시간을 배정해서 생활했다. 그는 자기의 목표량이 달성되면 완성의 의미로 엑스 표시를 했다. 합리적인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그의 옆방에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다른 친구가 그 모습을 보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시험이라는게 치열한 상대적경쟁이고 한끗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는데 자기계획에 만족하면 안 되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혼자 노는 능력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혼자 노는 능력 혼자 노는 능력이 탁월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치과의사인 한 친구는 의원 문을 닫았다. 그는 허름한 자신의 승용차에 낡은 텐트를 넣어 가지고 전국을 유랑하면서 살고 있다. 해질 무렵 그가 있다는 고성의 해변으로 가보았다. 일흔살이 넘은 그는 텐트 앞에서 어두워지는 바다를 보면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노년에 여유가 있어 낭만을 즐기는 것이라고 착각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이혼을 하면서 재산을 부인에게 다 준 후 그렇게 떠돌아 다니는 것이다. 금년 여름 폭우가 쏟아질 때였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양천변에 텐트를 쳤는데 곧 물이 넘쳐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독특한 삶이었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혼자 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청춘은 인생소설의 후반부를 모른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청춘은 인생소설의 후반부를 모른다 다큐 화면 속에서 청춘들의 아우성과 절규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고시원에서 우리에 갇힌 가축 같이 들어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컵밥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도 손에는 영어단어장이 들려 있다. 오천원으로 라면만 먹고 사흘을 버텨야 한다면서 돈에 목말라 있다. 한 여성 수험생은 이십대가 가장 꽃같은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독서실에 묻혀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돈이 없어 고시원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화면이 바뀌면서 데뷰한지 삼 년이 된다는 여가수가 나왔다. 돈이 없어 앨범을 내지 못하고 노래할 무대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카트에 무거운 키보드와 스피커를 싣고 버스킹 공연을 위해 추운 거리로 나선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있는 몇명의 남녀에게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가난의 옹졸함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가난의 옹졸함 아흔살의 노인의사는 평생 가슴에 맺혔던 얘기를 했다. 그가 수련의 시절은 보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난한 그가 교수댁에 인사를 가려는 데 차마 빈 손으로 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생각 끝에 그는 시외에 있는 과수원을 찾아가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아홉개 싸게 샀다. 그는 과수원의 구석에 있는 대나무가지로 광주리를 엮어 사과를 넣은 후 교수댁에 가지고 갔다. 며칠 후 그가 일 때문에 다시 그 교수댁에 갔다. 마루 끝에 그가 가지고 간 사과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교수의 부인이 누가 저런 선물을 가져왔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더라는 것이다. 그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났다. 내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상처가 평생 갔다고 고백했다. ​사람마..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들의 세 가지 공통된 후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들의 세 가지 공통된 후회 밤바다로 나갔다. 하늘과 맞붙어 구별이 안되는 검은 공간 저쪽에서 오징어배 한 척의 노란 불빛이 반짝였다. 단조로운 파도 소리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나는 모래사장에 앉아 밤의 고요와 침묵의 투명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구십대의 노인은 황혼과 밤 사이에 있는 짧은 순간을 즐기는 게 지혜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없이 살다가 바로 무(無)의 세계로 휩쓸려 가버린다고 했다. 팔구십대 노인들이 많은 실버타운에 이년 가까이 있어 보니까 노인들이 후회하는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다 살고 보니까 인생이 별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아둥 바둥 힘들게 살았을까 하고 후회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 특이한 얘기를 들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고 했다. 할머니도 노비였고 아버지는 머슴이고 어머니는 하녀였다고 했다. 이천이십삼년인 지금도 그는 노비인 할아버지와 머슴인 아버지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많은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왜 할아버지가 노비고 아버지가 머슴인걸 망각하지 않고 있을까.​내가 대학교 입학무렵 외가의 집성촌을 갔다가 우연히 예전의 노비문서를 본 적이 있다. 누렇게 쩌든 한지에 노비인 한가족의 이름이 먹으로 써 있었다. 그리고 노비들의 크고 작은 발바닥 모양이 검게 찍혀 있었다. 우리 세대까지 봉건신분제의 원형질이 잠재의식에 남아 있던 것 같다. 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