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206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백합조개를 줏는 노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백합조개를 줏는 노인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가 잠시 멈춘 오전에 해변으로 나갔다. 밀려오는 파도가 물러나는 파도에 부딪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맨발로 조수가 빠져나간 평평하고 고운 모래 위를 걷는다. 아침 바다가 파랑과 남색이 섞인 오묘한 빛을 띠고 있다. 한옥마을 앞까지 갔을 무렵이었다. 한 남자가 해변에 웅크리고 앉아 뭔가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무장화에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옆에는 물고기나 조개를 담는 어구가 놓여있었다. 이상했다. 조개를 채취하려면 투명한 바다 밑바닥의 모래를 뒤져야 했다. 그렇다고 그가 물고기를 잡는 것도 아니었다. 호기심이 일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뭘 하고 계십니까?”​내 말에 그는 들고 있던 엄지 손톱만한 조개껍질을 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돈 잘 쓰는 법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돈 잘 쓰는 법 실버타운의 팔십대 부부가 밥을 먹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은행에서 우리 돈을 컨설팅해주는 사람이 그러는데 이제 부터 돈을 쓰라고 하더라구요.”​그 부부는 개미같이 일생을 일만하고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사용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받은 월급을 저축해 왔던 것 같다. 그 부부는 자식도 없다. ​나의 경우도 비슷한 것 같다. 가난한 시절은 쓸 돈이 없었다. 변호사가 되어 약간의 여유가 생겼을 때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이따금씩 방송을 보면 굶어 죽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돈을 기부하라고 한다. 교회에 가면 라오스에 우물을 파주고 북한을 도와줄 헌금을 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장학금을 내라는 권유도 노숙자를 도우라는 말도 들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논다는 걸 잊어버린 사람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논다는 걸 잊어버린 사람들 내가 사는 동해바닷가에는 서울에서 내려와 독특한 삶을 사는 젊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진을 찍는 남편과 글을 쓰는 아내가 전 세계를 흐르다가 동해에 정착했다. 그들은 작은 서점을 하면서 살고 있다. 가게 안에서 남편은 향기로운 커피를 만들고 아내는 실로 책을 꿰매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나가다가 그들 부부의 책방을 보면 삶에 걱정이 없는 한적한 다른 세계인 것 같다. 가게 안의 고양이가 하품을 하며 조용히 바닥에 누워있다. 거기서 ‘미니멀라이프’라는 책을 샀었다. 복잡한 서울을 떠나 동해에서 원룸 하나를 얻어서 사는 젊은 부부의 소박한 삶을 담은 내용이었다. 욕심을 내지 않는 삶을 그들의 시각에서 풀어낸 글들이 들어 있었다.​내가 더러 들리는 파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긴급할 때 내 전화를 받아줄 사람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긴급할 때 내 전화를 받아줄 사람은? 판사와 법대 학장을 지낸 고교후배와 차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아주 절실한 순간 전화를 걸면 급하게 달려와 줄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 것 같아?”​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한 명도 없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와 똑같은 감정이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오랜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긴긴 세월 누군가 면회 한번 오지 않는 지독히 고독한 존재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석방이 되도 혼자였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교도소 앞마당에서 어디로 갈지 정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이 공기마저 메마른 빈 방에서 목을 매고 죽는 걸 종종 봤다. 그들은 죽기 전에 한없이 울었다. 어떤 슬픔이었을까.​수십만명의 우상이었던 재벌 회장이 있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사백년전 선비가 보내온 메시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사백년전 선비가 보내온 메시지 낡은 책 속에서 우연히 사백년전 한 선비의 수필을 보았다. ‘유쾌한 한때’라는 제목으로 서른세 가지의 즐거움을 나열했다. 고매한 선비답게 봄날 저녁 로맨틱한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는 것이라든가 서재 앞에 파초를 심고 비가 멎은 후 아름다운 햇빛이 쨍쨍 내려쬐고 나무들이 목욕을 한듯 싱싱한 걸 보고 좋아했다. 그는 겨울밤 고요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땅위에 눈이 쌓이는 걸 즐겼다. ​그의 즐거움에는 선비다운 면도 있지만 의외로 관능적인 것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음부에 조그만 습진이 생겼다. 문을 단단히 닫아걸고 더운물에 담그니 유쾌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얘기하고 있었다. ​땀이 온몸을 폭포처럼 쏟아지는 여름날 소나기를 맞으면서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천사를 만났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천사를 만났다 이십팔년전 여름.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장면이 갑자기 마음의 스크린에 펼쳐졌다. 적막한 산속의 무성한 나무 사이로 안개가 물같이 흐르고 있었다. 짙은 녹음으로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산책하기 위해 맹산으로 올라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숲은 덩굴과 잡목으로 가득차 한 발을 내딛기 힘들었다. 계곡을 따라가면 마을이 있겠지 생각하고 내려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다른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도대체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몇 시간을 산속에서 헤맸다. 그날따라 나는 핸드폰도 물병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작은 바위에 앉아서 잠시 쉬면서 기도했다.​‘주님 길을 잃었습니다. 야산에서 죽기야 하겠습니까만 다리가 아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은 즐거워야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은 즐거워야 어제저녁 동해시의 외곽 기차길 옆 작은 중국음식점을 찾아갔다. 서울서 내려온 청년 셰프가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 같았다. 그 가게에서 추천하는 찹쌀탕수육과 짜장면을 주문했다. 하얀 찹쌀옷을 입고 잘 튀겨진 고기에 야채가 가득 섞여 있었다. 아삭거리면서 적당한 저항감이 있고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짜장면도 기존의 틀을 벗어난 것 같았다. 양파와 야채를 볶지 않고 체를 썰고 칼금이 잘게 난 오징어 조각들이 섞여 있었다. 청년셰프가 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내 표정을 살폈다. 맛을 칭찬해 주자 아직 여드름 자국이 보이는 청년 셰프가 얼굴이 환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저는 딤섬의 여왕이라는 유명한 셰프에게서 배우고 동해로 내려왔습니다. 지방 사람들의 입맛이 보수적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삶을 사랑하는 노인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삶을 사랑하는 노인들 빨간 작은 등대와 항구 그리고 바닷가의 푸른 숲이 어우러진 곳에 나만의 수행처를 구했다. 앞으로는 그곳에서 기도하고 글 쓰고 공부를 할 예정이다. 며칠 동안 그곳에 가서 청소를 했다. 어제는 실버타운에서 알게 된 두 노인이 나의 작업을 돕겠다고 따라나섰다. 그 마음들이 고마웠다. 가는 차 안에서 내가 핸들을 잡은 노인에게 물었다.​“혼자 사는 노년이 어때요? 즐겁습니까?”​그는 강릉의 한적한 숲 근처 아파트를 얻어 혼자 몇 년 살다가 얼마 전에 내가 있는 동해의 실버타운으로 옮겼다. 그때그때 밥을 해 먹었는데 남은 걸 처리하기가 귀찮았다는 게 옮긴 이유였다. 그것도 혼자 사는 어려움의 하나인 것 같았다. 밥이나 반찬이 남으면 버릴 수도 없고 그게 없어질 때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중간 정도의 삶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중간 정도의 삶 동해의 바닷가로 내려와 살면서 자주 들리는 음식점이 있다. 막국수와 육계장을 잘하는 집이다. 도시에 살던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오전 열시반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세 시경이면 문을 닫는다. 음식 맛이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몰려오는 데도 그 젊은 부부는 돈을 포기하고 자기들의 삶을 즐기는 것 같다. 그 부부만 그런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이름난 탕수육집도 그렇고 책방도 그랬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논다. 집세를 내지 못할 만큼 쪼들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돈을 따라가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집은 너무 좋지도 않고 너무 초라하지도 않다. 입은 옷은 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유행을 따른 새것도 아니다. 그들 중..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리석은 판사 고마운 판사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리석은 판사 고마운 판사 요즈음 ‘동네 변호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주변의 소소한 일들을 맡아 직접 처리한다. 사무실도 없다. 직원도 없다. 칠십 노인이 직접 모든 일을 한다. 그는 법원장이었다. 대형 로펌의 대표도 했었다. 그가 ‘동네 변호사’가 된 건 노년의 겸손과 봉사의 모습이었다. 서울에 올라간 길에 그를 만났더니 대뜸 이런 하소연을 했다. ​“어쩌다 법정에 나가 봤더니 젊은 판사의 태도가 가관인거야. 사람들에게 온통 호통을 치고 변호사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천방지축인 거야. 내 경력을 대충 눈치챘을텐데 나한테도 그러더라구.”​그도 임자를 만나 당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라는 목적을 성취하면 그런 식으로 뽐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걸 견뎌 내야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무대의 배역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무대의 배역 육십세의 현역 직장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퇴직 후의 앞날을 생각하는 글을 보낸 분이 있다. 그 글을 보면서 직장이란 우리가 잠시 배역을 맡은 인생의 무대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정년퇴직으로 한 배역이 끝나고 또 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삼십년 가까이 다니던 보험회사에서 정년 퇴직을 한 대학 동기가 있다. 퇴직을 하고 그는 공부를 해서 법무사가 됐다. 그는 칠십대 중반인 지금까지 백팩을 메고 전국의 등기소를 돌아다닌다. 돈까지 벌면서 걷고 또 걷는 운동을 하니까 좋다고 했다. 다니던 회사라는 무대에서는 퇴장을 했지만 인간인 그의 은퇴는 없는 것 같다. ​기자 출신의 고교 동창 한 사람은 퇴직 후 국어교사 자격증을 따고 우즈베키스탄에 한국어 교사로 가서 칠십이 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6급 공무원의 댓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6급 공무원의 댓글 6급 공무원이라고 신분과 이름을 밝히면서 글을 보내주신 분이 있었다. 짧은 글 속에서 건전한 삶에 대한 자세와 당당한 직업관을 엿본 느낌이었다. 나도 몇몇 공직생활을 경험했다. 사십여년전 나는 육군 대위 계급장을 달고 최전방부대로 갔을 때였다. 대위라고 하면 7급 공무원쯤 된다는 생각이었다. 육사출신 대령인 참모장은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중령들을 다루는 태도가 이상했다. 반말에 하대에 마치 어른이 아이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한번은 그 참모장이 모이라고 한 회식에 참석했었다. 소주잔이 한 두번 돌아간 후 참모장이 혼잣말 같이 “대령으로 진급했더니 참 좋단말이야”라고 했다. 어린애 같이 좋아하는 순진성 같기도 했다.​“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맑은 사람, 흐린 사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맑은 사람, 흐린 사람 밤중의 실버타운은 적막하다. 창은 농도 짙은 어둠에 물들어 검은 거울이 된다. 거기에 내 모습이 비치고 있다. 책상 앞에 놓인 시계의 초침 소리가 시간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 내가 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갑자기 요란한 스마트폰의 벨소리가 고요를 흔들어놓는다. 액정화면에 고등학교 시절 은사의 이름이 떴다.​“나야 바로 밑에 와 있어.”​선생님의 나이가 여든 여섯살쯤일 것이다. 제자의 소식이 궁금하면 직접 전화를 하기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는 성격이다. 서울의 내 집 밑에 와 있다는 것 같았다.​“선생님 저 지금 동해에 내려와 삽니다. 집에 없어요.”​내가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아니야, 지금 실버타운 아래 주차장에 와 있다구.”​나는 깜짝 놀랐..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함경도 보따리 장사꾼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함경도 보따리 장사꾼 오십년 된 무덤을 열었다. 할아버지의 뼈 조각들이 흙속에 묻혀 있었다. 다리뼈와 발뼈를 찾았다. 평생 길을 걷던 할아버지를 받쳐 주던 중심축이었다. 갈비뼈를 찾고 머리뼈를 찾아 가지고 온 상자에 담았다. 나는 그 상자를 차의 뒷좌석에 싣고 할아버지에게 그동안 변화된 서울의 모습을 구경시켜 주었다. 할아버지의 혼령이 차창 밖의 번쩍이는 고층빌딩들을 보면서 놀라는 것 같은 환각이 들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분골한 후 작은 나무상자에 담아 나의 아파트로 모셔 왔다. 손자의 집에 얼마간 묵으면서 지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언덕 나무 아래서 할아버지와 이별할 예정이다. 오십년 동안 할아버지의 묘를 돌봤다. 내가 죽으면 할아버지의 묘는 잡초..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년의 수행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년의 수행처 류영모 선생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사업을 접고 북한산 자락에 집을 마련해 그곳에서 경전을 읽는 생활을 했다. 그는 매일의 명상을 일지 형식으로 적었다. 그게 책으로 나온 것이 ‘다석일지’다. 그는 매일 명상을 글로 쓰는 것이 기도라고 했다. 가을 계곡물 같이 맑은 그의 노년의 삶이 신선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 왔었다. 천안의 풍산 공원 그가 잠들어 있는 묘지에 노란 치자꽃을 한 송이 바치고 나도 글쓰기를 기도로 삼았다.​노년을 어디서 지낼까 하다가 동해바닷가 한적한 실버타운으로 내려온 지도 이년이 되어 간다. 어느새 환경에 익숙해진 느낌이다. 불교에 한 나무 아래 사흘이상 있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장소에도 집착이 생긴다는 뜻 같다. ​글을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