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책으로 다가온 신(神) 이십대 중반 어느 날 밤 나는 하얀 눈이 두껍게 덮인 휴전선의 산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수은주가 영하이십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 무렵 나의 내면도 차디찬 고드름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희망이 꺽인 채 군대에 끌려와 있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주위를 보면 배경이 있는 집 아들이 군대에 온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의사들은 적당한 병명을 붙여 있는 집 아이들을 보호했다. 조선시대부터 군대는 상놈의 자식들만 갔다.밤새 순찰을 마치고 새벽 여명이 밝아올 무렵 나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부하인 김 중사가 두꺼운 수첩 같은 책 두권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기독교 단체에서 공짜로 보내온 성경인데 종이가 얇고 부드러워서 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