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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나는 내 자신이 실무적인 일보다는 지적인 일에 헌신해 온 생애를 살아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다른 어느 누구도 그 같이 생각할 것이다. 내가 무한한 것에 대한 생각과 처음 씨름한 것은 8살쯤이었다. 학교에서나 전(前)견신례 학습에서나 나는 그리스도교 교의학에 심취했다. 나는 철학에 관한 인기 있는 책들에 몰두했다. 내가 인본주의 전통에서 교육받았다는 사실과 그리스어 및 그리스 문학에 열중했던 것은 이론적인 것에 대한 이 같은 기질을 강화해 주었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나타낸 바와 같이 순수한 명상만이 순수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논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했다. 전통적인 종교의 진실과 내가 내적 투쟁을 겪었던 것..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데에 있어서 내가 경험한 어려움은 일찍부터 나를 공상의 세계로 인도했다. 열 네 살부터 열 일곱 살 사이에 나는 바깥 세계보다 더 진실해 보이는 상상의 세계에 곧잘 빠져들곤 했다. 때가 되자 그 낭만적 상상은 철학적 상상으로 변모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철학적 상상은 그 때부터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에게 범주들을 결합할 능력을 주고 구체적 용어 속에 든 추상적 개념을 파악할 능력을 주고 광범위에 걸친 개념적 가능성들을 시험해 볼 능력을 준 점에서 그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상상적 능력이 상상의 산물을 현실로 착각하거나 체험과 이성적 비판을 소홀히 하거나 대화 가운데에서라기보다 독백 가운데에서 생각하거나 상부상조하는..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사회계급들 사이에서 소읍 생활의 특수한 성격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뚜렷이 볼 수 있었던 사회계급들 사이의 경계선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동무들을 사귀었는데 나는 나의 부모와 시장, 의사, 약사, 몇몇 상인들 등의 아이들에 의해 대표되는 상류계급에 대해 그들이 가지는 적의를 함께 하였다. 비록 나는 이 몇몇 선택된 부류의 아이들과 라틴어 개인교습을 받고 그리고 나중에는 그들과 함께 가까운 도시의 김나지움에 다녔지만 나의 실제 동무들은 초등학교의 소년들이었다. 그것은 나와 비슷한 사회적 수준을 가진 아이들과 상당한 알력을 빚게 하였고 우리는 우리의 학창시절을 통하여 외톨이들로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특권계급에 속한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매우 일..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네 살에서 열 네 살 나던 해까지 나는 엘베강에서 가까운 한 조그마한 읍에서 살았는데 나의 아버지는 그 곳 교구의 주임목사이자 감독이었다. 독일의 여러 지역의 소읍들에 있어서 전형적인 주민은 영농주민(farmer-burgher) - 읍에 거주하면서 제법 큰 농토를 경영하는 대체로 부유한 읍민 - 이었다. 이런 류의 소읍들은 순전한 시골 풍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딸린 마당과 곳간,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들까지는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가축과 양들은 아침저녁으로 거리를 떼지어 지나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중세시대와 마찬가지로 낡은 시민적 권리와 전통을 가진 순수한 소읍이었다. 마을 성문은 집과 상점이 빽빽이 늘어선 좁..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역자 후기)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역자 후기 20세기가 낳은 세계 최고의 지성,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1886년 독일 브란덴베르그의 슈탈체델에서 태어났으며 베를린 대학, 튀빙겐 대학, 할레 대학 등에서 공부한 후, 베를린 대학, 마르부르그 대학, 푸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 등에서 교수로 활약하다가 나찌 정권에 의해 국외로 추방당했다. 1933년 라인홀트 니이버 형제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이민온 그는 유니온 신학교와 콜롬비아 대학을 거쳐 1955년에는 하바드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교수했으며 그로 인하여 하바드 대학 내에 한때 종교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시카고 대학을 마지막으로 1965년 79세의 나이로 별세한 그는 그리스도교적 전통에 서있었지만 한 종교의 폐쇄적 체계에 빠지지 않았으며 그의 철학..

하나님 자녀에게 내리는 것은 ‘심판’인가 ‘징계’인가.

하나님 자녀에게 내리는 것은 ‘심판’인가 ‘징계’인가. 이경섭 목사 하나님의 자녀가 잘못 해서 받는 여러 시련들이(‘연단을 위한 시련’은 여기선 논외로 친다) ‘심판’인가, 혹은 ‘징계’인가? 필자가 생각하는 답은 ‘하나님의 자녀에겐 심판(condemnation)은 없고 징계(discipline)만 있다’이다.만일 누가 어떤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심판은 오직 믿지 않는 불신자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이다“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히브리서 기자도 ‘하나님의 아들’이 받는 시련을 ‘징계’라고 못 박았다.“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

구원을 이루는 단계.

구원을 이루는 단계.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딛2:11-12] 이제 구원의 이루는 길은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1. 구원의 필요성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 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사53:6] *범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구원입니다.(행3:37-38)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32) 2. 구원의 기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15:3]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왜 해석학이 중요한가?

왜 해석학이 중요한가? 1.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종교, 문학, 역사 등 거의 모든 인문학 영역에서 ‘해석’(interpretation)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관점, 전제, 이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진리’가 바뀐다. 해석은 예술 작품, 역사기록, 성경 텍스트(text) 등과 그것을 읽거나 이해하는 사람을 연결시키는 교량(bridge)이다. 진리는 단순한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중간매개 역할을 하는 해석 과정을 거쳐 드러난다. 진리, 사실, 옳음과 거짓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교량 역할을 하는 해석자가 기능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인문학은 모조리 ‘해석학’(hermeneutics)이란 관문을 거친다. 해석학은 ‘해석이론’을 의미한다. 영어 ‘..

목회자의 세상사에 대한 참회목록.

목회자의 세상사에 대한 참회목록. [영혼을 인도하는 이들에게 주는 글] p.66-86에서 인용 악의에 찬 사람들, 파벌주의들, 중상모략 일삼는 자들에 반대할 때 열심과 성의를 가지고 말하는 대신 분한 마음에 신실하지 못하게 말한 죄그들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잘 알아야 그것에 근거해서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죄또 그 영혼이 처한 상태에 대해 기록해 두는 것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은 죄설교 본문을 택할 때 사람에게 가장 유익이 될 뿐 아니라 그들을 세워줄 수 있는 본문을 신중하게 택하지 못한 죄그리고 그 본문을 각 영혼의 상태에 맞게 적용시킬 줄 아는 지혜가 부족한 죄그들이 그 본문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본문의 요점을 정..

목회자의 세상사에 대한 참회목록.

목회자의 세상사에 대한 참회목록. [영혼을 인도하는 이들에게 주는 글] p.66-86에서 인용 자신이 돌보는 양떼 또는 달느 사람들이 신앙상의 충고나 훈계를 할 때 그것을 무시한 죄평신도가 도움이 될만한 견해나 경고를 제시할 때 그것을 받아 들이기보다 오히려 수치로 여긴 죄우리에게 스스럼 없이 충고와 훈계와 질책을 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싫어하고 분한 마음을 품는 한편, 우리에게 어떤 충고나 훈계를 달게 받으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실하게 충고하지 못한 죄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대신, 오히려 그들과 거리를 두고 멀리한 죄또 그들을 직접 찾아가서 말하거나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그들에 대해 말한 죄다른 사람들의 결점이나 실책을 보고 염려하고 걱정해 주..

목회자의 세상사에 대한 참회목록.

목회자의 세상사에 대한 참회목록. [영혼을 인도하는 이들에게 주는 글] p.66-86에서 인용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파수하지 못한 죄, 즉 마음에 악한 생각이 들어와도 그것을 그대로 묵인하고 자기 반성을 소홀히 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서먹서먹 해짐은 물론이요 하나님과도 멀어진 죄자기가 알고 있는 자신의 악한 소위들, 특히 자신의 지배적인 성격과 싸워 그것을 몰아내지 못한 죄자신의 성향이나 교제에 있어서 시간과 관련된 유혹 및 다른 특별한 유혹들에 잘 넘어간 죄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핍박을 당하거나 위험을 초래하거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떨며 머뭇거리고 요동한 죄다른 사람들의 질투나 질책이 두려워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 한 죄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의 영화로운 이름을 위해 당하는 고..

죄의 종류에 대한 5가지 구분

죄의 종류에 대한 5가지 구분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해설(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정리 1.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로 구분 원 죄 : 우리 시조의 타락으로 인한 인류 전체의 죄책(guilt) 관련말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롬5:14-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시51:7- 자범죄 : 악한 일을 생각하고 뜻하고 따르고 행하는 모든 것, 즉 하나님의 율법이 명령하는 일들을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이 해당됨. 작위(作爲)의 죄와 부작위(不作爲)의 죄로 구분하는 것이 여기에 속함 2. 지배하는 죄(reigning sin)와 지배하지 않는 죄로 구분 지배하는 죄 : 죄인이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저항하지 않는 그런 형태의 죄이다. 그러므로 죄인은..

복(福)의 개념.

복(福)의 개념. ■ 고난의 복 고난은 복이 된다는 것은 아마도 성경에서 말하는 귀중한 진리일 것이다. 원초적으로 인간은 고난을 싫어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고난을 통해서 복이 임함을 말하고 있다. 고난의 긍정적인 복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고난은 예수님의 생애에 비추어 볼 때 성도에게 복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고난은 예수님이 먼저 가시고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한 것이므로(벧전 2:21) 주님의 고난에 동참라는 특권인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10,11) 성경의 이상스런 역설(逆說)은 우리가 웃을 때보다도 어려움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복(福)의 개념.

복(福)의 개념. ■ 복과 고난의 의미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고난으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고는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성도들이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안락함을 좋아하고 자신의 삶에 있어서 고난이 오는 것을 두려워 한다. 이럴때는 더욱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저주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 바른 성경관에서의 복과 고난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주제를 알면 바른 신앙의 도움이 된다. 고난은 우리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복의 근원이었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도 고난은 찾아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라고 하신다. 이러한 시험은 아브라함의 삶에 있어서 위기로 다가오는 것이..

복(福)의 개념.

복(福)의 개념. ■ 바울 신학의 복 개념의 연구 1.갈3:6-14에서의 하나님의 복 6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에 있어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아라’로 번역해야 옳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아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로 정한바(계산했다, 여겼다) 되었다”. 믿음과 의는 전혀다른 질이다. 믿음을 가지고 가면 의로 여겨준다는 법칙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로 여길 수 없는데 하나님의 절대은혜로 그런 법칙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7절 ‘그런즉’은 6절의 논리 해석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여기서 바울은 지금 누가 아브라함의 아들인가가 당시 주제이기 때문에 바울은 빗대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8절은 6절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