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가난한 문인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5. 3. 03:05






     가난한 문인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까까머리에 검정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 그 선생님은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다. 반듯한 이마에 검은 뿔테안경을 쓴 수재형의 그는 일등품의 교사였다. 명문고등학교와 서울사대를 졸업한 그는 문학에서도 최고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고등학교 때 문학상을 받은 그가 신문사에 보낸 ‘봄비’라는 시가 서정주 시인에게 발탁되어 등단을 한 분이었다. 그는 시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현대문학상’도 수상했다. 고교시절 나는 문학을 하는 그 선생님이 부러웠다. 그 시절 나는 변두리 허름한 목조가옥에 살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소년이었던 나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영원히 늙지 않고 학처럼 평안을 누리며 살 것 같았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혼자 작은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국어선생님은 늙어 있었다. 지척거리는 발걸음에 하얀 털이 눈썹을 덮고 있었다. 선생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말했다.

“내 나이가 칠십인데 부탁할 일이 있어 왔네.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죽는 걸 보니까 나도 언제 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마지막으로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어서 자네한테 부탁을 하러 왔네. 자네 개인에게 무거운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야. 자네가 주축이 되어 고교 위아래 선후배들과 연결해서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시인에게 시집은 인생이고 사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팔리지 않는 시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것이다. 문득 그의 아들이 떠올랐다.

“아드님은 어떻게 삽니까?”

“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변두리에 있는 작은 교회의 부목사로 있어. 외아들인데 월급이 작아서 자기 가족하고 먹고 살기도 벅차. 그래도 아들이 라틴어로 논문을 써서 신학교 일등을 했어. 아들에게 뭐가 들씌웠나 봐.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해외 선교를 하러 가겠대.”

시인 아버지와 목사인 아들 모두 돈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하나님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주지 않는다.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까지 하면서 가난의 십자가를 지게 한다.

내가 알던 또 다른 시인이 있었다. 소년 수리공으로 있으면서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천재였다. 그는 죽기 전날까지 입원실 침대 매트리스 밑에 공책과 연필을 두고 시를 썼다. 그가 죽은 후 나는 그의 유작들을 시집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돈을 구해 그 시인의 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의 시집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시가 담겨져 있었다는 노트북도 없어졌다. 그의 딸이 처분해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딸에게는 아버지의 시보다 얼마간의 돈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인의 딸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 소식이 끊겼다.

내가 수필집을 내고 한 재벌회장에게 읽어 보시라고 한 적이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평생 보통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모르고 살아온 분 같았다.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인 대표이기도 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변호사의 수필집을 읽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해가 잘 안 가. 그리고 팔리지는 않을 것 같은 의견이고 말이야. 나는 장사꾼이니까 장사꾼 시각에서 보는 거지.”

그 회장은 솔직하고 정직하게 말했다. 이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성이 없으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세상에는 물질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마귀는 예수에게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 세상에서 종교도 철학도 문학도 빵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일까. 삶은 심오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가치와 의미가 눈에 띄지 않는 초라한 곳에서 꽃을 피운다. 나는 오래된 도서관의 서가 구석 먼지 앉은 시집과 수필집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시인은 천 만명이 흘깃거리는 것 보다 한 두 명이라도 진심으로 공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고교 시절 은사의 시집을 내는 데 약간 보탰었다. 가난한 소설가의 원고를 출판사에 부탁해 주기도 했다. 더러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