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 곽용화
결론 1.
어떤 대중가수가 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낮은울타리에 실린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글을 보고 화가 나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필자가 전화를 받자마자 갑자기 화를 내며
왜 뉴에이지 음악이 반기독교적인 음악이냐고 따졌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자 필자 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끝난 뒤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음악을 듣다가 그런 것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또라이가 아니냐고 대꾸했다
그 때의 답답함이란‥‥
문득 필자는 그 가수가 교회 집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어떤 의식을 가졌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크리스천으로서 C.C.M.을 해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으니까
C.C.M 이 뭐냐고 되물으면서 자기는 그런 복잡한 것은 질색이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음악적인 달란트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거늘
전화를 통해 필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전혀 그런 의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크리스천 대중가수들이 이렇게 의식이 없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해하실 것인가?
그러나 다행히 하덕규 집사, 이무하 형제를 비롯한 여러 명의 대중가수들이
C.C.M.을 만들고 부르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이 원고들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강의를 다니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 중에는 뉴에이지 음악에 깊이 빠진 매니아들이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뉴에이지 음악 앨범들을 주기도 하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왜 뉴에이지 음악이 반기독교적인 음악이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뉴에이지 음악가들 중에는 뉴에이지 사상에 물들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저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장르가 좋아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전자의 경우만 다루었을 뿐 후자의 경우는 다루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전자의 경우는 위험한 음악이라고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필자의 생각은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장르가 좋아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음악은
뉴에이지 운동에 빠져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에이지 음악의 음악적 특성상 위험성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 뉴에이지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뉴에이지 음악은 명상으로 유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뉴에이지 음악은 이러한 특징을 잃지 않고 있으며
음악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장르는 다양해졌지만 기본 목적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얼음판을 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이런한 생각은 그동안 필자가 다양한 형태의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점이고
뉴에이지 음악에 깊이 빠져있던 매니아들의 고백과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했던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결론내린 것이다.
또한 뉴에이지 앨범을 분석하고 세계적인 뉴에이지 음악가들의
글과 인터뷰를 분석하여 종합한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뉴에이지 음악이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뉴에이지 음악을 크리스천들이 허용하는 것은
뉴에이지 운동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을 연구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강의하는 사람들이 뉴에이지 음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팔십년대 중후반에
록음악을 사단의 음악으로 비판하던 강의가 유행했었다
그런데 뉴에이지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록음악이나 메탈 음악 가운데 반기독교적인 곡들이 엉뚱하게
뉴에이지 음악으로 오인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뉴에이지 음악을 설명하면서 오지 오스본이나 블랙 사바스를 이야기하고
쥬다스 프리스트나 반 헤일런을 설명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은 뉴 에이지 음악가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대중음악의 한 장르이며 록이나 메탈과는 분류가 되는 음악이다.
그러므로 오지 오스본이나 블랙 사바스는
뉴에이지 음악가로 설명하지 말고 사단을 섬기는 가수로 설명해야 한다
물론 뉴에이지 운동 중에는 사단을 숭배하는 무리들이 있다.
안톤 라베이가 만든 사단교회처럼
사단숭배의식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는 뉴에이저들의 모임이 있다.
만일 이 모임에 가입한 가수가 록음악으로 사단을 찬양하고
뉴에이지적인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은 뉴에이지 음악이 아니라
뉴에이지 송으로 분류하여 음악적인 장르를 구분해서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지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은 시들어가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반 뉴에이지 운동을 역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무책임한 발언을 계속해서 하고 있어
뉴에이지 운동이 교회에까지 흘러 들어가고 있다.
뉴에이지 영화를 크리스천들이 볼만한 영적으로 좋은 영화인 것처럼 소개하던
ㅂ연구소나 영화평론가로 자신을 소개하는 S씨 등
전혀 대책없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뉴에이지 운동이 더욱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크리스천들의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향한 영적인 감각은 둔해지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을 비판하는 것이 만일 문제가 있다면
그것에 대한 비판은 철저하게 성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반뉴에이지 운동가들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또한 뉴에이지 운동이 아닌 것을 뉴에이지 운동으로 비판하거나
극단적인 생각으로 반문화주의로 흐르는 등의 강의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절에 사도들이 이단에 대항하고 반박하기 위해
글을 쓰고 경고했던 것처럼 지금 반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크리스천들은 알아야 한다.
그 동안 공개적으로 뉴에이지 운동을 비롯한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역할을 낮은 울타리가 해왔다.
이땅에 기독교문화가 정착되고 반기독교적인 문화가 사라지는 날을 위해
지금도 꾸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명를 감당하고 있다.
반문화주의 모임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낮은울타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고 계신다.
필자가 삼년여 동안 뉴에이지에 관련된 글을 낮은울타리에 실어온 이유는
뉴에이지 문화를 비롯한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연구하고 발표하며
기독교문화를 정립하는 일을 감당하기에 가장 신뢰할 만한 곳이
낮은울타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신뢰감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필자가 결론 말미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낮은울타리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의식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화사역자들이 나타나
기독교문화를 정립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해외선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문화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선교전략을 세우며
문화선교사들을 양육하고 파송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크리스천들 중에 문화사역에
사명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헌신하기 바란다
문화사역자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는
낮은울타리에 문의하면 된다.
문화사역자를 위한 문화아카데미가 계속해서 개설되어 있고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도록 허락하시고 영감을 주시며
영적인 분별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글이 보다 많은 문화사역자들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한국교회가 뉴에이지 운동을 분석하고 물리치는 데
도구로 사용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