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 곽용화
청소년 대중문화진단
한국교회와 청소년 그리고 대중문화 1.
청소년과 대중문화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이 문제로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60년대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 80년대 레이프 가렛 내한공연,
그리고 90년 뉴 키즈 온더 블럭의 내한공연을 지켜 보면서
한국교회는 대중문화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청소년들을
근심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팬티를 벗어던지고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고 눈물을 흘리며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스타들의 이름을 불러대는가 하면
심지어는 기절까지 해서 앰블런스에 태워져 응급처 치를 받는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주위를 돌면서
온갖 추태를 다 부리던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숭배가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한국교회는 안타까워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안타까운 시선과는 달리 청소년들의
잘못된 대중문화적인 습관을 고쳐주고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대안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고민의 뒷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걱정은 하면서도 대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었던 것이다
비판은 하면서도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은 더욱더 자신들만의 스타에게로 빠져들어
교회보다는 대중문화를 주저없이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떤 여중생에게 예수님과 서태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주저없이 서태지를 선택하겠다고 대답한 것도
그동안 한국교회가 청소년과 대중문화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었나를
잘 나타내 보이고 있다.
다음은 낮은 울타리 시월호에 실렸던 어느 소녀의 글이다.
"제가 사춘기 소녀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누구를 맘에 우상으로 삼아 따르고 하는 그런거 있잖아요.
저의 그 우상은 000이예요"
이 소녀는 우상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다.
우상이라는 말이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을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우상으로
특정 연예인을 섬기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녀는 서두에서 자신이 예수님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한다고 밝히면서도 우상으로 연예인을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 소녀의 고백은 요즘 너무나 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특정연예인을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들은
흔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성경책 속에 , 찬송가 속에 그 연예인의 사진을 넣고 다니며
수시로 보고 그리워하는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필자가 강의할 때도 이러한 청소년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연예인에 대해 좋지 않은 점을 이야기하면
그 연예인의 열성 팬인 아이들은 필자를 노려보며 심지어는
강의가 끝날 때까지 울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흔하다.
예수님보다 특정 연예인을 더 사랑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한국교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특정 연예인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청소년과 대중문화에 대한 문제의 다는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회가 대중문화에 대해 마치 송충이 보듯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들과 대중문화를 분리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N0'다.
청소년들은 결코 대중문화와 분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중문화가 바로 청소년들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대중문화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들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고 배워가며 그들의 삶을 즐긴다.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음악,
취미 등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이며 그것이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과 대중문화를 분리할 수 있을까?
물론 청소년들로 하여금 사막이나 깊은 산 속에서
현대문명과 분리된 삶을 살도록 할 수는 일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그 곳에서 그들만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대중문화를 무조건 송충이 보듯 싫어하고
비판만 한다면 청소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도원에 들어가 살 것인가?
중세기의 고행자들처럼 나무 위나 벽 속에 갇혀서 살 것인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무조건 피한다고 멀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대중문화는 그 내부로부터 개혁이 일어나 잘못된 부분들이
스스로 허물어지고 도태되도록 만드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로마 시대에 부패한 상류층의 삶 속에서 청결하고 고귀한,
깨끗한 도덕적인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고
상류층의 로마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처럼
교회가 대중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대중문화에 대해 무조건 비판만 하고 염려만 했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나타내면서
모든 대중문화가 타락한 것처럼 이야기 해왔다.
그러다 보니 문화선교전략은 세우지 못하고 잘못된 대중문화가
교회로 흘러 들어와도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