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난간 / 성낙향
난간 너머로 푸른 수건 한 장 내민다.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그러쥐고 탈탈 턴다. 실올에 달라붙었던 먼지들이 공중으로 비산(飛散)한다.
맞은편 새로 완공된 초고층 아파트의 위용에 눈길을 주다가 그만 수건을 놓친다. 이크! 수건 한 장 놓쳤을 뿐인데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추락한 것처럼 간이 철렁한다. 상체를 기울여 10층 아래를 내려다본다. 둥글게 다듬어진 조경수들의 우듬지와 단지 사이로 난 오솔길이 나와의 거리만큼 축소되어 시야에 들어온다.
어느 구석으로 떨어졌는가. 푸른 수건 한 장은 자취가 없다. 다 낡은 수건이었다. 찾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놓친 것은 항상 아쉽다. 어쩌면 수건으로서의 삶이 진즉부터 곤고했던 그것은 이참에 내 손을 뿌리치고 힘껏 달아나버렸는지 모른다. 빈 손아귀에 가두지 못하고 멀거니 아래를 내려다본다. 문득 상체의 체중이 난간에 온전히 실려 있음을 깨닫는다. 흠칫 놀란다. 얼른 물러난다. 한걸음 비켜서서 난간을, 그 너머를 바라본다. 외계와 나를 격리시켜 주는 흰, 흰, 철봉들이 새삼스럽다.
내가 난간을 이리도 신뢰하였던가. 얼마나 실한지. 얼마나 튼튼하게 박혀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믿고 내 온몸을, 내 생을 그것에 맡겼구나. 세상을 살면서 난간만큼 신뢰한 게 또 있었을까. 난간 말고 더 무엇이 있었던가. 계산 없이 믿으며 존재의 전부를 방기하게 만들었던 대상과 순간이.
난간 아래는 수많은 유리판으로 이어진 미끈한 절벽. 난간이 없다면 나는 가파른 유리절벽의 끄트머리에서 허공을 마주하고 서 있는 참이다.
지금, 허공과 나 사이에는 난간뿐이다. 북쪽으로 길게 꼬리를 뻗친 새털구름과 나 사이에는 난간뿐이다. 잔치의 전날 같은 2월. 기대와 초조가 뒤섞인 이 계절과 나 사이에도 오직 난간뿐이다. 만약 난간이 없었다면 슬픈 왈츠, 시밸리우스의 우울한 격정이 소용돌이치던 오후 4시와 나 사이에는 그 무엇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베렌다의 끄트머리에서 물러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의심만이 밀생(密生)한 내 속에서 발견한 이 무작정의 믿음. 경이롭다.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는 아파트 18층에 살았다. 내가 살았던 집 가운데 가장 높았던 층위, 거기 입주한 뒤로 한동안은 난간 근처에 다가서지 못했다. 가까이만 가도 어지러웠다. 18층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은 평온하지 않았다. 지상의 모든 것들은 몹시 예민해 보였고 매번 위협적인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갓 피어난 꽃송이를 달고 있는 목련도 누가 버리려고 내놓은 헌 책들도 다 나를 위협하는 흉기 하나씩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다가가면 늘 내 편처럼 여겨지던 나무들이 18층에서 내려다보면 아무 교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시(詩)의 에스프리가 증발해버린 나무는 그저 땅 위로 돌출된 하나의 유기체로 서 있을 뿐이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사물과의 교감이 증감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뭔가를 고개 숙여 굽어보는 일은 늘 불편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무당벌레 한 마리가 난간 위에 앉는다. 연약한 날개로 높이도 날아왔다. 무당벌레에게 난간은 무용하다. 난간은 날개 없는 존재들을 위한 것. 알록달록한 벌레는 난간 가장자리를 따라 보란 듯이 잘도 기어간다. 완벽한 균형이다. 심술이 난다. 손가락으로 그것을 탁 튕겨버린다. ‘이런 염병 헐…….’ 일격을 당한 벌레는 야유하면서 날개를 퍼덕이며 사라진다.
무당벌레는 제 날개를 믿어 허공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나는 난간 때문에 눈 앞의 허공을 견뎌낸다. 지난 가을, 준령의 협곡 사이에 걸린 두 개의 다리를 태연히 지나, 붉은 제라늄의 베란다로 건너온 것도 난간이 있었던 덕분이다. 베란다나 다리의 가장자리에 다가서지만 않는다면, 난간이 없어도 추락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난간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평형을 잃고 무너지고 말 터. 어쩌면 저 난간은 몸보다는 마음을 위한 방어막이다.
나를 잡아줄 거란 믿음이 있기에 이따금 몸 기대어 베란다 유리창의 바깥을 닦았었다. 난간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유리는 생을 건 노역 뒤에 맑고 투명해졌다.
이 높은 곳에 난간을 막아 준 사람은 누군가. 맘 놓고 허공에 다가설 수 있게, 저 아래 단단한 아스팔트를 향해 몸을 기울일 수 있게 해 준 그는. 그 사람이 고맙다. 이 세상의 모든 난간들과 그것을 만들어 준 사람들 모두 고맙다.
어쩌면 부모님과 남편, 그들이야말로 천지분간 못하고 걸어온 내 인생길의 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세상에는 철봉이나 벽돌, 동아줄로 만든 난간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 온몸으로 난간이 되어준 그들. 난간이 되느라고 정작 난간도 없는 허공에서 두려움을 다스렸을 그들. 내가 세상이라는 허공에 겁 없이 다가설 수 있게 때로 아득한 절벽 아래로 무심히 몸을 기울일 수 있게 해준 그들이 고맙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 제 무작정의 믿음을 기대올 때, 그 순진한 신의를 받쳐 주는 실한 난간이 되어야함을 안다.
맞은편 아파트의 유리창이 내 쪽으로 눈부시게 햇빛을 반사한다. 저곳에도 1층부터 66층까지 난간은 빈 틈 없이 달려 있다. 입주가 시작되면, 저 난간의 어딘가에 몸 기대어 허공과 마주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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