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 대하여 / 변종호
충직하다. 어디든 그가 앞장서야 갈 수가 있다. 무슨 업보를 지었기에 평생 무거운 체중을 짊어져야 한다. 손과 입이 저지른 잘못도 무릎이 꿇어야 한다. 더는 몸을 낮출 수 없는 오체투지도 그가 구부려야 가능한 일이다.
신장身長 삼 분의 일쯤, 다리 양쪽에 자리 잡았다. 강력한 전후 십자인대, 측면 인대와 근육이 연결되고 마찰과 충격을 완화하는 연골이 슬개골과 대퇴골, 경골을 감싼 모양새다. 진중하고 점잖다. 거부도 모른다. 부당하면 투덜대기라도 하련만 그럴 줄도 모른다.
뒤로는 뒤꿈치와 궁둥이가 닿도록 굽혀지지만, 좌우는 조금만 틀어져도 탈이 나는 것도 이곳이요, 갓난아이의 배밀이가 끝나면 고달파지는 것도 무릎이며, 눈이 보고 뇌가 명령한 대로 움직여야 한다. 인간이 느끼는 최상의 쾌락도 남녀 간 무릎이 겹쳐져야만 한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설사 발목을 잃어도 무릎이 있으면 걸을 수도, 달릴 수도 있다는 걸 의족 스프린터로 확인했다.
연말연시가 되고 명절이면 수많은 문자가 날아든다. 빠지지 않는 건 건강하라는 덕담이다. 건강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프지 않고 살기를 원하는 것도 욕심이지만, 정작 많은 이들은 건강을 위해 절제된 음식섭취와 꾸준히 운동하는 것을 외면한다.
사무실 건너 아파트 뒤에는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돼 있고 걷기 전용 인도가 있다. 이곳을 이용해 운동하는 사람 중에는 뚱뚱한 몸으로 줄넘기와 달리기를 하는 걸 보면 얻는 것만 염두에 두고 잃는 것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충격을 받은 무릎연골은 쉽게 손상되기 마련이다. 근육이나 머리는 쓰면 쓸수록 발달하는 데 비해 무릎연골은 한번 닳거나 손상되면 재생이 안 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권장하는 운동이 있다. 허리 강화와 하체를 단련시키는 운동이다. 허리운동은 오랫동안 해온 터라 하체운동을 위해 팔짱을 끼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했다.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뚝뚝’거리며 무릎이 이상 신호를 보내온다. 언제까지나 충직한 일꾼으로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보다. 운동이라는 달착지근한 약으로 살살 달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손상돼도 통증을 느낄 수 없는 침묵의 장기인 간처럼 다 닳아 뼈가 서로 닿기 전까지 무릎연골은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는다. 얼마큼 닳았는지 얼마나 더 쓸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게 무릎이다. 그런지도 모르고 지리산, 설악산 종주와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 등산하고 조깅에 마라톤까지 뛰며 무릎을 혹사했던 무모함을 이제야 느낀다. 돌아보면 함께할 때는 모르다 미욱하게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고 후회를 하곤 했다.
빛바랜 유모차에 몸을 의지해 힘겹게 걷는 등 굽은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활처럼 휜 다리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헐렁한 바짓가랑이를 흔들어댄다. 지나온 삶이 내 어머니만큼이나 고단했을 것 같아 가슴이 짠해 온다.
기억 속에 어머니 무릎은 온통 벌집이었다. 다섯 가족의 생계를 당신의 무릎에 온통 짊어져야 했던 어머니. 일찍 찾아온 퇴행성관절염을 치료하려고 약쑥을 비벼 손수 뜸을 떴다. 심한 화상으로 곪은 상처에는 고름이 줄줄 흘러내리기도 했다. 빤한 틈 없이 번들거리던 뜸 자국이 난 어머니 무릎은 고난의 흔적이요, 희생의 증거였기에 반세기가 지났어도 잊을 수가 없다.
늘어나는 수명으로 무릎이 아프다는 여성이 많다.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은 여성은 묘하게도 안으로 조여 주는 근육에 비해 밖으로 당겨주는 근육의 퇴화는 늦단다. 그러다 보니 앉으면 자연스레 벌어지는 다리요, 일어서면 휘어지는 다리가 된다. 퇴행성관절염으로 가는 길이다. 쪼그려 앉아 일하고 빨래와 청소하느라 연골이 닳고 손상돼 아프니 딱하지만, 도리가 없다. 요즘은 의술의 발달로 뼈를 깎고 구멍을 뚫어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일부 하기도 하지만, 고비용인 데다 수술 후의 고통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인생 100세 시대라지만 생과 사는 천명이며, 우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짝 빛을 내고 사라지는 존재다. 그 짧은 동안 부와 권력, 명예와 무병장수를 탐하느라 정작 자신을 구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지 않은가.
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사는 길이고, 안락과 편함을 추구하면 뼈와 근육을 약하게 만드는 길임을 이순에 들어서야 깨닫는다. 아무리 오장육부가 건강한들 무릎이 무너지면 문밖출입은 물론이요, 화장실조차 의지대로 갈 수 없다. 의자에 앉거나 누워야만 겨우 쉴 수 있는 무릎, 여태 걸어온 길도 멀리 왔지만, 아직 가야 할 곳도 많다. 미안하고 고맙지만 마음먹으면 군소리 없이 나서는 무릎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훌쩍 떠나는 꿈을 꾼다.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쑥 뜯는 날의 행복 / 반숙자 (0) | 2015.07.31 |
---|---|
고맙다 난간 / 성낙향 (0) | 2015.07.29 |
꿈이지만 현실, 진실이지만 거짓인 세계 / 박완서 (0) | 2015.07.25 |
回想(1) 어느 시골 학교 校長 선생 이야기 (0) | 2015.07.24 |
누군가를 기다리는 밥상이 덜 쓸쓸한 법이지 / 박완서 (0) | 2015.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