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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와 고용인이 되어가는 교역자들

Joyfule 2019. 8. 10. 08:05


 

 

       고용주와 고용인이 되어가는 교역자들

 

 

 

부교역자는 필요한데로 쓰는 임시 고용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는 그들을 채용한 고용주가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하나님의 사역자들인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은 같은 형제며 동역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앞선 자가 담임목사라면 부교역자들은 그 담임 목사를 통해 지도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합력하여 섬기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과 제자 디모데, 디도와 같은 관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제자인 그들을 때론 아들 같게 여기면서도 복음의 일을 위해서는 동역자라고 불렀고 또한 그 일을 잘 감당하는 자로 자라며 서가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언제나 기도하며 가르쳤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서신에서 찾아 볼 것 같으면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라 했고, 너를 생각하며 쉬지 않고 밤낮 간구한다고 했으며, 또한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된 디도를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고 했습니다(고후 8:23).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관계는 바로 이런 관계입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한 권속이요 한 형제이며 또한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를 세워 가도록 복음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입은 목사요 교사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도바울을 부르시고 그의 복음사역을 통해 믿음으로 부름 받은 자들 가운데 앞으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해 갈 자를 제자로 양육 받게 하셨고 그들은 복음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또한 비울의 사역을 도우며 부분적으로 교회를 섬기며 사역하는 자로 점점 자라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선한 일군으로 하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라면서도 이런 관계가 왜 안 되는 것입니까? 많은 요인과 문제가 있겠지만 대다수의 우리의 모습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나라 된 거룩한 교회 모습이 없고 또한 그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복음에 합당한 신앙이 서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저 욕망을 따라 보이는 크기로 성공하며 영광을 얻고 때로는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인간적인 사업적 의도가 처음부터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사도성이 있을 수 없고 복음의 한 믿음으로 내려가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교회의 맥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껏 이 땅의 교회들은 그런 식으로 달려 왔고 지금도 더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앞선 자는 그것을 비젼으로 추구하고 뒤선 자는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며 따라가는 계주 속에 있습니다. 실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말은 부교역자들이 큰소리치는 고용주 같은 담임목사 밑에서 임시고용인 같이 고생하며 때론 모욕을 당하며 마음이 상해도 나도 그와 같이 빨리 성공하리라는 각오로 전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고용인이지만 보다 큰 고용주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었고 어둠의 죽은 자 가운데서 잠자고 있는 상태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책망 받는 사데 교회처럼 되었고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분이 안 되는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보이는 것으로 크고 부유한 것을 자랑하는 눈멀고 부끄러운 모습에 있는 것입니다. 더욱 한탄스러운 것은 대다수가 이런 모습으로 교회를 경쟁적으로 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혁의 역사만 기도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