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주와 고용인이 되어가는 교역자들
근간에 우리는 교회 노조설립에 관한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교계 언론들은 “스스로 노동자로 전락한 목회자들”, “은혜위의 노동법(?)”, “교회 노조 설립은 하나님과 성직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행위, 교회 본질을 크게 왜곡하는 일” 등으로 사설에서나 교계 대표되는 자들의 입을 인용한 기자 수첩 등에서 주로 날을 세워 비판했습니다.
물론 찬성하며 공감하는 자들의 입장도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반응은 교회 노조설립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로, 말도 안 되는 일로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로 그것을 시작한 자들에 대해 교회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가는 자들로 세속화시켜 가는 부정세력으로 몰아 부치면서 예의 주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다수가 맹비난하는 것처럼 교회 노조설립은 한마디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선언이요 교회가 될 수 없다는 증명인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할 때에 그 문제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되는 원리의 말씀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갈 6:7). 이들은 이 땅의 교회들이 그동안 무엇을 세우고 무엇을 그토록 원하며 얻으려 했던 가에 대한 한 산물인 것입니다. 그 나무를 증명하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마 7:17-18). 이런 원리로 볼 때 이들은 교회를 세속화 시키는 장본인들이 아니라 세속화 되어 온 교회들의 결실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나무 된 우리 자신들은 못보고 나무에 맺힌 열매가 엉뚱한데서 생겨진 것이 날아와 붙어 있는 것처럼만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 노조설립을 하게 된 취지를 보면 이러합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교회 당회장과 노동자(부교역자나 직원 등)간의 가부장 봉건적인 관계로 근로환경의 사각지대에 방치 되어 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계속 보면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에 의해 존재하고 한순간 파리 목숨처럼 잘라 져야하고 때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차량운행이나 심방, 맡은바 파트의 일과 담임목사 비서같이 해야 하고 그 외에 교회 제반되는 모든 일까지 사찰처럼 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비해 사례는 너무 적고 그것도 담임목사에 눈 밖에 나면 언제든지 한순간 그만 두어야 하고 때로는 억울하고 황당하여 담임목사에게 따지고 싶고, 어디 내놓고 하소연이나 하고 싶어도 그 교단에서 앞으로 목회 하려면 어쩔 수없이 참아야 하는 이런 경우들이 너무도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로 부교역자의 이런 형편을 뼈저리게 실감했던 자들이 교회 노조 설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며 지금은 그것을 공감한 다수의 부교역자들이 계속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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