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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Joyfule 2021. 7. 20. 03:08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그리스도인의 五확신 Lessons on Assurance

제 4 과  사죄의 확신


2. 당신의 죄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 시편 139:23~24

자백하는 것입니다. 시편 139:23~24절에 하나님은 내 마음을 살피시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 태도는 죄가 있다는 것을 검사하듯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의사가 현미경으로 병균을 찾아내듯이 하루 일과를 보낸 후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로 내 속을 샅샅이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깨닫게 되고 의심되는 것은 검사하고 찾아내어 자백하는 것이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욥이 이러했습니다. 자녀들의 죄까지 살폈습니다. 검사를 계속할 때 죄를 안 짖게 됩니다. 죄를 덮어놓으면 죄와 싸울 힘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내가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을 하고, 구제하고, 전도하는 것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내 마음을 살펴서 깨달은 것 의식하고 검사하여 찾으려고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찾아 끄집어내십시오.


(2) 시편 38:18

말씀된 태도입니다. 고하고, 슬퍼하고, 주님 앞에 고백하고, 괴로워하고, 안타까워 할 때 죄를 이기게 되고 싸울 힘이 생기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를 짖고 핑계를 하고 변명을 합니다. “고한다”는 말은 토해 낸다는 말입니다. 체한 자가 토해 내는 것은 속에서 안받아 주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는 죄를 거부하고 안받아 드리기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예민하여 집니다. 예민할 수록 죄를 크게 보고 자백하고 죄를 멀리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면 죽은 생명과 같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 철저히 죄를 찾아내어 토해야 합니다. 내 속에 죄를 받아들이는 자는 신앙 양심이 무디어 졌거나 영적 병이 든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의 생활 면에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영접하기 전에는 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양심의 판단으로 살았습니다. 믿고 난 후에는 죄를 거부하는 반응과 신앙 양심으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3. 죄를 자백함과 동시에 무엇이 따라야 합니까? (잠언 28:13)


잠언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죄를 버려야 합니다. 즉시 버려야 합니다. 죄에서 떠난 삶이 나타나야 합니다. 구별된 거룩한 삶이 와야 합니다. 죄에서 떠나야 성화가 옵니다. 정직하게 자백을 했다면 죄를 멀리 하게 됩니다. 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애통하게 자백을 하면 주님은 나에게 죄에서 떠나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에 결심이 옵니다. 이 때 순종하면 죄에서 떠나게 됩니다. 내 마음 중심이 중요합니다. 거룩한 구별된 삶이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자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에 “죄를 짖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죄를 짖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나옴이니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영혼은 순간적인 죄는 짖지만 이것은 자백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죄를 짖는 것은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예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길 수가 있습니다.


죄의 종류에 “고범죄”가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이나 믿은 후에도 고전적으로 선택해서 짖는 것입니다. 간음이나, 도둑질 등입니다. - (이사야53장에 허물) - 인간성 자체가 연약하여 게으르고 나태한 것이 연약성인데 육신이 약하여 거절해야 하는데 거절하지 못하여 억지로 친구나 타에 의해 끌려가서 죄에 동참하는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술, 담배, 도박, 노래방, 춤, 유흥업소, 음란, 비디오 등등 이외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의지 즉, 뜻이 강해야 합니다. 정적으로 끌려 다니면 안됩니다.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 사하시며 … 깨끗게 하실 것이요”


4. 시편 86편 5절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이 다른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죄 용서하시는 것을 즐겨 하십니다. 자백할 때 인자하시고 후하게 대하여 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연약성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성에 대해  주님은 몸으로 친히 경험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백하는 자에게 후하게 대하여 주십니다. 삭개오가 자백했을 때 이스라엘의 최고 가문의 자랑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으며 너의 집에 유하겠다고 주님은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너와 나는 한 몸이 된 한 가족이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한 형제의 개념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은 자백하는 자를 후하게 받아들여 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용서하여 주어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용서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해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는 일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성경에 징계는 교육입니다. 성경에 심판은 끝을 낸 것입니다.


5. 당신이 죄 사함을 받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엡 1:7)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죄사함의 근거입니다. 나의 자백이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물과 피와 예수님의 살이 증거가 됩니다. 예수 보혈의 피를 믿고 자백하십시오.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의 실체 피입니다. 자백을 할 때 예수님의 피가 내 죄의 값을 치루십니다. 구약에 짐승의 피를 먹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신약에는 예수님의 피는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 영혼에 예수 피를 뭍혔다. 속량했다. 구약의 방주 역청으로 안과 밖을 칠했다”는 것은 속량의 의미가 있습니다. 

방주에 역청을 칠했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속량된 자에게 세상물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즉 죄가 나를 정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망의 열매를 주어 지옥으로 데리고 가지 못합니다. 자백할 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억지로 기억하려고 하지 말고 미성숙하여 잘 모르오니 성숙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끝을 내어야 합니다. 탕자가 깨닫고 돌아오는 것이 성숙입니다. 기억 나지 않는 것 때문에 고민 할 것이 없습니다. 진리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격대로 선하게 사용하십니다. 사울은 자존심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나대로 맞게 사용하십니다.


6.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하여 히브리서 10장 12절은 무엇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죄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까지 제사를 드렸습니다. 영원히 용서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10~14절에 신약의 제사장과 구약의 제사장을 비교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첫째, 구약의 제사장은 매일 제사를 드렸습니다. 항상 서 있어야 했습니다. 서서 섬기면서 같은 제사를 반복하여 드렸습니다. 성막 안에는 의자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개별적으로 찾아오니 사람도 많고 죄도 많으니 앉을 시간도 없었고 제사장도 바뀌었습니다. “아사셀”은 죄는 사탄에게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신약의 제사장은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으로 단번에 끝내셨습니다. 단 한번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리므로 모든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죄의 값을 완전히 치루셨습니다.


이제는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신앙 생활 하십시오. 미래에 대하여 희미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점으로 볼 때 나는 어떤 때의 사람입니까? 미래의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미래까지도 그 영향이 미칩니다. 이것은 영원까지입니다.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고 그 영혼이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자백은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과 교제이고 누리고 사는 것이 천국에 가는 것만큼 귀중합니다. 성화는 이 땅에서 누리는 복된 삶이 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자백은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성화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는 것이고 상급이 됩니다.


7. 당신이 이미 자백한 죄에 대하여 계속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히 10:17)


히브리서 10: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든지 성실한 자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백을 했는데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기억을 아니 하신다고 약속을 주셨는데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증거입니다. 영적 교만입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구가 둥글다 하기전에 성경은 동(東)과 서(西)로 말씀을 했습니다. 죄를 동에서 서로 옮기신다고 했습니다. 동과 서는 영원히 만나는 기점이 없습니다. 내 죄를 발로 밟으셨다고 했습니다. 등뒤로 돌리시고 바다 깊은데 던지셨습니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개념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 피는 죄 사하는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 피는 생명까지 줍니다.


“피”는 깨끗하게 하는 것과 생명을 준다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성경의 증거는 물과 피와 성령 등을 의미합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본질적으로 거짓말쟁이 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 아비는 마귀에게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말 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의 아비가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이 욥을 참소케 했습니다. 죄 의식을 심어줍니다. 죄는 본질 자체가 하나님과 교제를 끊어 버립니다. 갈라놓습니다. 죄의식을 주는 것은 하나님과 갈라놓는 작전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결국 자존심만 강하여 집니다. 부부가 갈라지는 것은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존심은 사탄의 무기입니다. 베드로가 죄를 짖고 멀리 주님과 사이를 두었을 때 계집종과 사탄이 온갖 시험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면 죄를 자백하여 놓고도 하나님 알고 계시는지 의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기 때문에 죄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자백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알고 그 말씀 안에 거하고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알 때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백을 하고도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성실한 자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자백을 하면 성령님은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예수 통해 의롭다 인정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정죄는 사탄이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앞에 성실히 자백을 하면 양심에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8.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체험한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에베소서 4:32)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랑 받는 자의 태도는 다른 사람을 용서합니다. 따지는 흑백논리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따지면 반드시 갈라집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먼저 기억을 해야 합니다.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 속에는 긍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긍휼을 베풀면 됩니다. 다윗이 원수의 손자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볼 때 용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죄입니다. 죄를 짖고 자백을 하지 않으면 계속 멀어집니다. 자백은 곧 축복입니다. “용서”는 내게 죄 지은 자에게 보복을 하지 않고 끝을 냅니다. 즉 상대하지 않고 교제하지 않습니다. “용납”은 용서하고 보복을 하지 않고 받아들여 교제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도하면 용서보다 한차원 높은 용납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성숙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용납까지 하셨습니다. 우리의 수준도 이 단계까지 자라기를 바라십니다. 자백을 철저히 하면 용서도 하고 용납까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자백을 하지 않을 때 정죄의식 때문에 멀어집니다. 용서받은 경험자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 외어 쓰기  요한일서 1:9


◉ 적 용  (요한일서 1:9)


백지에 자신의 죄를 자백하여 기록하여 보십시오. 용서 할 것도 써보십시오. 그후 요한일서 1장 9절을 암기한 다음 불로 태우십시오. (그림을 보십시오) 자백을 할 때 하나님은 죄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십니다.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 죄에서 벗어 나는 축복을 주십니다. 자백할 때 변화가 오고 성숙이 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편은 용서이십니다. 자백은 영적 수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옵니다. 사무엘은 민족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도 자백을 했습니다. 담임 목사에게 오픈 하십시오. 그래야 내가 기도할 수 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등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또 하나님은 우주보다 더 큰 발로 밟으셨습니다.


그리고 동에서 서로 옮겨 버리셨습니다.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자백한 죄는 다시는 기억도 아니 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자신도 잊어 버려야 합니다. 이제부터 감사 찬송을 드리고, 사죄의 확신의 암송을 하고 결단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죄를 원수처럼 여기고 의분을 토해 내면서 싸울 때 신앙의 성숙이 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죄는 작은 것이라도 크게 보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분별력이 생기고 영적으로 예민하여 집니다. 자백은 그 사람의 영적 수준입니다. 자백을 하면 할 수록 죄는 더욱 더럽게 보입니다. 그리고 크게 보입니다. 깨끗할 때 더러운 것이 잘 드러납니다.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신앙 양심이 둔하여 집니다. 자백을 통성 기도나 말로나 편지로 철저히 써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