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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기본교리.세가지 경건훈련.(금식)

Joyfule 2022. 12. 31. 00:14


 

 

 

     기독교 기본교리.세가지 경건훈련.(금식)

 

 3. 금식

본문 / 마6: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슬픈 기색으로 금식하지 말라

세 번째로 예수님은 금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식음을 전폐할 정도라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 매우 심각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을 가면서 금식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것을 온전히 절연하고 회개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지 않고, 즉 생명을 걸고 오직 하나님께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금식은 육의 양식을 끊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과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겠다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이전의 죄적인 삶을 모두 청산하고 죽고 다시 살아나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주 금식을 하며 신앙의 경건을 지켰습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며, 이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긴급한 것임을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심각하게 죄로 치우쳐진 영적인 상태에 집중하느라 육체의 욕구를 뒷전으로 미루어두는 것입니다. 금식은 영적인 정결함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겸허해지는 것입니다.(시69:10; 102:4)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에 의해서 규정된 금식일이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규정해 놓은 유일한 금식일은 7월 10일에 행해진 속죄일 때였습니다(레16:29,31; 렘36:6). 이날에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덮어 씌웠고, 이 희생제물이 광야로 나가서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했습니다. 이 대속죄일에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온전히 자복하고 회개하며, 또한 자신의 죄에 대해서 금식을 거룩하고 엄숙하게 행했습니다. 그 이후에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기간과 포로기 이후로 네 가지의 금식일을 만들어 지켰는데(슥8:19), 그것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4월 9일, 그리고 연이어 성전이 파괴된 5월 9일(왕하25:8), 예루살렘 함락 이후 예루살렘 통치자로 임명됐던 그다랴가 살해된 7월 2일(렘41장), 그리고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다시 예루살렘이 포위된 10월 1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이밖에 추가로 주 2회 금식일을 지켰습니다(눅18:12). 2회는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에 올라갔던 목요일과 하산한 월요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처럼 엄격한 금식의 기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금식을 하면서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금식을 할 때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 썼습니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재는 재앙을 상징합니다. 그것을 뒤집어 쓰고 처참한 몰골로 "이런 재앙을 받기에 합당한 불쌍한 자를 용서해 주소서"라는 자세로 금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금식을 하는 자가 얼마나 슬픈 기색을 띠느냐에 따라서 그의 금식이 얼마나 엄숙한가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금식이 점점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엄숙하게 금식하고 있는지를 보이는, 그리고 그런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는 외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금식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의 경건을 자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해서 온갖 생색을 다 내는 금식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외식하는 자세를 가질 때, 그리고 단지 배가 고파서 힘들고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금식을 할 때 금식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왜 금식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스가랴 선지자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 월과 칠 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슥7:5)라고 했습니다. 금식이 자신의 죄에 대한 엄숙하고 진지한 회개의 목적이 아니라, 금식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금식하는 이유를 다시금 깊이 있게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하루 세끼를 잘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자신의 육적인 필요에 대해서 너무나 민감합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자신이 얼마나 육적인가를 깊이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금식을 해보면 자신이 얼마나 육적인 존재인가를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만 금식을 해도 세상의 모든 것이 먹을 것으로 보이고 온 몸에 힘이 없어집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영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너무나 둔감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려고 하지 않고, 더 가까이 나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깊은 자신의 죄성을 금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금식을 하면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고,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먹고만 살았는가, 먹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살았는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루의 삶에 있어서 어느 정도를 영적인 양식을 섭취하는데 할애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전도하고 예배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마 매우 작은 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니면 무관심한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을 한다고 하면서도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금식을 통해서 우리 안에 이런 잘못된 모습들, 죄로 찌든 모습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금식을 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피부의 건조를 막기 위해서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금식을 하면서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 쓴 이후에 머리에 기름마저도 바르지 않으면 그 몰골이 매우 처참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금식 중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히려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며 자신이 금식 중이라는 것이 외식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금식

우리가 금식할 때, 자신이 얼마나 배고픔을 잘 참는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면서 자신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매우 얄밉고, 자신이 왜 금식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수치스러운 죄와 허물을 청산하고 새롭게 가기 위해 하는 금식인데, 오히려 그것을 떠벌리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선전하는 것도 금식의 기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금식은 이미 상을 다 받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금식을 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금식으로 인해서 고통 가운데 있는 저를 보시며 저보다 하나님께서 더 마음이 아프실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씩씩하게 잘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식 후에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살겠습니다."라며 의연한 모습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금식을 기쁘게, 그러나 매우 가슴 아프게 받으실 것입니다.

자녀가 식음을 전폐하면서 자신의 죄를 씻고 새 삶을 살고자 한다면 마음이 아프지 않을 부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으로 밥을 먹어도 맛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자녀와 금식하고 싶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너무 기특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금식은 하나님을 위로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금식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고통의 한 가운데서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러한 하나님을 위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식 가운데 우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신음하시고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알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우리의 금식을 지켜보시며, 함께 금식하고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후에 우리에게 위로와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잘못된 구제와 기도, 금식의 모습은 없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길에서 경건을 훈련하는 가운데 우리가 이것을 깊이 주목해 보기를 원하십니다. 바른 마음과 생각에서 나온 경건의 모양을 우리가 지닐 때, 참된 경건의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