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40 - 알퐁스 도데
슬픈 당나귀 자끄
그날 밤 자끄 형의 방은 얼마나 아늑했었는지 모른다.
벽난로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식탁 위를 밝게 물들였으며
방안은 온통 오래된 포도주를 두 번 다시 먹어 보지 못했다.
식탁 반대편에 나와 마주 앉은 자끄 형이 내게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눈을 치켜들 때마다 나는 어머니처럼 정겨운 형의 눈길과 마주치곤 했다.
나는 너무도 행복했기 때문에 흥분해서 계속 지껄여 댔다.
"어서 먹어."
형이 내 접시에 먹을 것을 담아 주면서 먹으라고 재촉했지만
나는 계속 횡설수설 떠들기만 했다.
그러자 형은 잠자코 저녁이나 먹으며 자기 얘기 좀 들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은 체념한 듯한 순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와 떨어져 지내던 동안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차분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네가 떠나고 나자 집은 초상집같이 변해 버렸단다.
아버지는 일손을 놓고 가게에 앉아 온종일 혁명분자들에게 욕과 저주만 퍼부어 대셨어.
그리고 나더러는 바보 같은 놈이라고 고함을 치시는 거야.
그러나 장사가 될 리가 없지. 부도난 어음이 매일 아침 수북이 쌓이고,
집달리는 이틀에 한 번씩 들이닥쳤어.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우린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단다.
넌 마침 적당한 때 떠난 거야.
그런 생활이 한 달쯤 계속되고 난 뒤
아버지는 포도주 회사에 취직해서 브르따뉴 지방으로 떠나셨고,
어머니는 바티스트 삼촌 댁으로 가셨지.
두 분이 떠날 때 나는 역까지 쫓아가 차에 태워 드렸단다.
내가 얼마나 울었겠나 상상이 되겠지?
두 분이 떠나신 뒤 그나마 우리 집에 남아 있던 변변찮은 가구는 모두 팔렸지.
집달리가 우리 집 문 앞 큰길에다 내다 놓고 팔아 버렸어.
가구가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가는 중에 내복을 넣어 두던 장농 말이야.
나는 그걸 산 사람 뒤를 쫓아가서 '그걸 내려놔요!'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고까지 했단다.
넌 내 마음을 이해하겠지?
결국 다 낡은 의자 하나하고 담요와 빗자루만이 남았단다.
그 빗자루는 랑떼른느 가의 우리 집 한구석에다가 모셔 두었지.
집세는 두 달치가 미리 지불돼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불기 없는 썰렁한 집에 혼자 남게 된 거야.
내가 얼마나 슬퍼했겠니?
매일 저녁, 사무실에서 돌아 오면 새록새록 슬픔이 솟아났단다.
시멘트로 사방이 둘러싸인 차가운 벽 속에
홀로 갇혀 있다는 걸 느낄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어.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문을 힘껏 소리나게 여닫곤 했단다.
무덤 속 같은 적막을 참을 수 없었던 거야.
이따금씩 가게에 누가 오는 듯한 기척을 들으면 '가요!'라고 소리치며 뛰쳐나가곤 했지.
집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창문 근처의 안락 의자에 앉아
서글픈 표정으로 뜨개질을 하고 계시는 듯한 착각을 하곤 했단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바퀴벌레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지.
우리가 리용에 이사와서 없애느라고 애깨나 먹었던 그 끔찍한 벌레들은
아마 네가 떠났다는 걸 알았는지 더 무섭게 들끓었어. 처음엔 나도 잡아 보려고 했어.
촛불과 빗자루를 든 채 밤새 부엌에서 마치 사자처럼 싸웠지만 늘 울음만 나왔지.
유감스럽게도 나 혼자서는 아무리 애써 봐야 소용없었어.
안누 할머니와 함께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살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거야.
결국 바퀴벌레는 점점더 불어났지.
아마 그 습기찬 도시에 사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바퀴벌레들이
일제히 궐기해서 우리 집을 공격했던 게 틀림없어.
부엌 안은 금세 발도 들여놓지 못할 정도로 바퀴벌레들이 들어차
나는 두려움에 떨며 열쇠 구멍으로 우글거리는 벌레들을 들여다볼 뿐 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어.
아마 수십 억 마리는 족히 됐을 거야...
아마 너는 그 저주받을 곤충들이 설마 그렇게 많을라구 하고 생각할 거다.
그래, 넌 그놈들을 잘 모를 거야. 그놈들은 어디든지 침략한다구.
문도 꼭꼭 잠가 놓고 열쇠 구멍까지 막아 놨는데도 그놈들은 부엌에서 기어나오더니
내가 침대를 가게로 옮겼다가 다시 응접실로 끌고 다녀야 했어.
너 웃는구나! 네가 그 광경을 봤어야 하는 건데.
빌어먹을 놈의 바퀴벌레들은 드디어 나를 복도 구석에 있던 우리 방에까지 몰아 냈어.
그놈들은 내가 거기서 이삼 일 동안 숨을 돌리도록 내버려 두더라.
어느날 아침 눈을 뜬 나는 수백 마리나 되는 바퀴벌레들이
빗자루를 타고 기어오르는 걸 보게 됐어.
그뿐만이 아니야. 줄지어 침대로 몰려오는 거야.
무기도 없이 내 최후의 보루에까지 몰린 나는 도망을 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지.
결국 의자와 담요, 빗자루를 몽땅 바퀴벌레에게 내주고 만 거야.
랑떼른느 가의 그 끔찍한 집에서 그렇게 쫓겨났어.
다시는 그 집에 돌아갈 엄두가 안 났지.
리용에서는 그 후에도 몇 달을 더 지냈단다.
하지만 그건 지루하고 암울하고 눈물로 지샌 세월이었어.
사무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울어 대는 나를 막달라 마리아라고 불렀지.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았어. 친구도 없었고.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란 네 편지를 읽는 거였단다
아! 다니엘, 네 편지는 정말 멋지더구나!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넌 분명히 신문에다가도 글을 발표할 수 있을 거다.
넌 나랑은 틀리니까. 부르는 대로 받아쓰는 바람에
나는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재봉틀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어.
그러니 아버지가 '자끄, 이 당나귀보다 멍청한 놈아!'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하지만 당나귀 같은 바보가 되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야.
당나귀는 충직하고, 끈기 있고, 부지런하고, 마음 착하고, 허리 힘도 센 짐승이거든...
이런 얘기는 집어치우고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갈까?
넌 우리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늘 편지에다 써보내곤 했었지.
나도 네 편지에 감동을 받아서 너처럼 훌륭한 생각을 갖게 되었단다.
하지만 내가 리용에서 버는 돈으로는 나 혼자 먹고 살기도 빠듯했지.
그래서 파리로 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파리에서 돈벌이를 하게 되면 우리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을 것 같았던 거야.
그래서 파리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단다.
그리고 나는 미리 준비를 했지.
깃털 빠진 참새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파리 거리를 무턱대고 헤매고 싶지는 않았거든.
다니엘, 너처럼 하나님 은총을 받은 애는 괜찮겠지만 나 같은 울보는 어림도 없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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