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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41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6. 14. 11:00
 
 
꼬마 철학자41  - 알퐁스 도데  
 
   슬픈 당나귀 자끄 2
   그래서 나는 쌩 니지에 성당의 주임 신부인 
   미꾸 신부님을 찾아가서 소개장을 부탁드렸어. 
   쌩 제르맹 구역에선 꽤 영향력이 센 분이셨거든. 
   신부님은 어느 백작과 공작에게 보내는 두 통의 소개장을 내게 써주셨어. 
너도 알겠지만 난 아무 옷이나 걸쳐도 폼나는 편이잖니? 
그런데 마침 어떤 양복장이가 나를 보더니 잘 빠진 체격이라면서 
검은색 정장 한 벌과 조끼, 바지를 몽땅 외상으로 맞춰 준 거야. 
나는 소개장을 양복 속에 집어 넣고는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리용을 떠났지. 
호주머니에는 단 돈 60프랑밖에 없었어. 35프랑은 기차삯이었고, 25프랑은 교제비였지.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7시경 나는 검은색 정장에 노란색 장갑을 끼고 거리로 나갔지. 
다니엘, 넌 내가 꽤나 모자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겠지. 
파리에서 아침 7시라면 모든 사람이 잠자고 있거나 
잠이 깼더라도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을 시간이거든. 하지만 난 그걸 몰랐어. 
나는 어깨를 으쓱대며 새로 맞춘 무도화를 신고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를 내며 그 큰거리를 걸어다녔어. 
또, 그처럼 이른 시간에 거리에 나오면 
행운의 여신을 만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지. 
하지만 파리에서는 행운의 여신도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는가 보더라.
그래서 나는 호주머니에 소개장을 집어 넣은 채 
쌩 제르멩 구역을 종종걸음으로 왔다갔다 했단다.
우선 나는 릴르 가에 있던 백작 집으로 갔다가 쌩 귀욤므 가의 공작 집으로 갔어. 
두 집의 하인들은 정원을 쓸거나 구리 초인종을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닦고 있더라. 
그 하인배들한테 내가 미꾸 신부님 소개로 주인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니까 
그들은 콧방귀를 뀌면서 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내 다리에 물을 끼얹는 것이었어... 
왜 그랬는지 알겠니? 내 불찰이었지. 
그 시간에 그런 집을 찾아간다는 것은 바로 티눈을 치료하는 의사밖엔 없었거든.
아마 너 같으면 다시 그 집에 찾아가지 않았을 거야. 
더군다나 그런 하인배들의 멸시하는 듯한 눈길을 견뎌 내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바로 그날 오후 
뻔뻔스럽게 다시 찾아가서 하인들에게 나를 주인에게 데려다 달라고 요구했지. 
여전히 내가 미꾸 신부님 소개로 왔다고 말하면서 말이야. 
내가 그렇게 용감하게 군 게 나로서는 다행이었어. 
결국 그 두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었거든. 
하지만 나를 맞은 두 사람의 태도는 완전히 딴판이었어. 
릴르 가의 백작은 아주 냉랭하게 나를 맞아들였지.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백작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어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어. 
백작 역시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 
그는 미꾸 신부님의 편지를 읽어 보고는 그대로 호주머니에 수셔넣어 버리는 거야.
그러더니 쌀쌀맞은 표정으로 주소를 적어 놓고 가면 
조만간 연락해 주겠다고 한마디 뱉고 마는 거야.
참 더러운 인간이었지. 나는 완전히 기가 죽어 그 백작 집에서 나왔단다, 
다행히도 쌩 귀욤므 가에서 받은 환대 덕분에 내 마음은 훈훈해졌지. 
거기서 만난 공작은 세상에서 가장 상냥하고 유쾌해 하는 뚱뚱보였어. 
게다가 그분은 미꾸 신부님을 몹시 존경한다는 거야. 
신부님과 관계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쌩 귀욤므 가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정말이지 그 공작은 선량하고 좋은 사람이었어.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지. 
베르가모뜨 담배를 한 움큼 내게 쥐어 준 공작은 
내 귀를 잡아당기더니 뺨을 토닥거리면서 말했단다.
'자네가 일할 만한 자리를 책임지고 찾아 보겠네. 
곧 적당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게야. 
틈나는 대로 와서 나와 이런저런 얘기나 하자구.'
나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몹시 기뻐하며 공작 집을 나왔어. 
그리고 이틀 동안 그분을 찾아가지 않았어. 가볍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말이야. 
세째 날이 되어서야 쌩 귀욤므 가에 있는 공작 저택을 찾아갔단다. 
곤색 바탕에 금박이 있는 옷으로 정장을 한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내 이름을 묻더라구. 
그래서 나는 으쓱대며 미꾸 신부님 대리인이라고 말했지.
잠시 후에 그 남자가 되돌아 와서 뭐라고 했는지 아니?
'공작님께서 지금은 몹시 바쁘니 미안하지만 다른 날 찾아오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무안해 했겠는가를 생각해 봐라. 
다음날 같은 시각에 나는 다시 공작을 찾아갔지. 
그 우락부락한 문지기가 마치 금강잉꼬처럼 층계참에 버티고 서 있더구나. 
멀리서 나를 알아 본 그가 '공작님은 외출하고 없어요'라고 소리치더군.
그래도 난 공작이 들어오면 
오늘도 미꾸 신부님의 대리인이 다녀갔다고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왔어.
그 이후로도 계속 찾아갔지만 한번도 공작을 만날 수가 없었단다. 
그때마다 공작은 목욕중이거나, 미사를 올리고 있거나 아니면 정구를 치고 있다는 거야. 
심지어는 사교계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못 만난다고 핑계를 대더군. 
사교계 사람들과 말이다! 그건 틀에 박힌 핑계일 뿐이야. 
솔직이 말해서 나는 사교계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결국 나는 남자가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저는 미꾸 신부님의 대리인입니다'라는 
말 때문에 내 처지가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내가 누구의 대리인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어. 
하지만 층계에 버티고 서 있던 덩치 큰 문지기는 
내 뒷모습에 대고 미꾸 신부님의 대리인이 분명하냐고 묻는 거야. 
그러면 정원에 나와서 빈둥거리던 푸른 옷을 입은 몇몇 하인들이 폭소를 터뜨렸어. 
고약한 놈들이었지. 
내가 미꾸 신부님 대리인만 아니었더라면 그 녀석들을 몽둥이로 후려쳤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