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56 - 알퐁스 도데
푸른색 나비의 죽음
마침내 나는 시를 끝냈다. 넉 달 만에 완성을 본 것이었다.
마지막 행을 쓰고 났을 때 나는 펜을 쥘 힘도 없이 기진맥진해 버렸다.
내 손은 흥분과 긍지, 기쁨과 초조감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날 쌩 제르멩 종탑 옆 건물의 고미다락방은 대사건이라도 터진 듯 시끌벅적해졌다.
자끄 형은 다시 옛날의 자끄 형으로 되돌아가 하루종일
판지와 조그만 풀단지를 끼고 앉아 내 시를 멋진 시집으로 제본해 주었다.
다 만들어진 시집을 들고 내가 한 행 한 행 읽어 나가자
형은 감탄의 고함을 내지르고 발을 구르며 열광했다.
난 내 작품에 대해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형은 내 시가 굉장히 훌륭하다며 너무나 좋아했다.
난 형의 비평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어
좀더 공평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만한 사람이 내 시를 읽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간이식당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긴 있었다.
자끄 형과 나는 그 간이식당의 단골이 되었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로는 내실의 공동식탁에서 식사를 해오고 있었다.
내실엔 이십여 명의 젊은 작가와 화가, 건축가 등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지금은 그 당시에 만난 그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꽤나 출세를 했다.
몇몇은 이따금씩 신문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아직도 별볼일 없이 비실대는 현재의 내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다.
어쨌던 그 식당에 갈 때마다 그들은 모두들 어서 오라고 한마디씩 건네며 나를 환영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수줍어해서 그들 얘기에 끼어들지 못했기 때문에
난 그들 관심에서 금세 멀어져 버리곤 했다.
나는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과 동떨어져
내 방의 책상에 앉아 있을 때와 다름없이 혼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매주 한 번씩 우리는 유명한 시인과 식사를 했다.
그 시인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가 쓴 시 제목을 따서 그냥 바가바라고 불렀다.
그런 날이면 내실에 모인 사람들은 18쑤우씩 하는 보르도산 포도주를 마셨다.
디저트가 나올 때쯤 바가바가 시를 한 편 낭송했다.
그는 주로 인도 시만을 지었는데 그 제목은 '락싸마나' '다싸라타' '칼라트쌀라' '바기라타' '
쒸드라' '크노세파' '비쒸바미트라'등 완전히 인도어 일색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가바'였다.
그가 시를 낭송할 때면 내실 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때마다 흥분한 청중들은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굴러 대며, 심지어는 탁자에 뛰어오르기까지 했다.
내 오른편에는 주독에 걸린 듯 딸기코에 키가 자그마한 시인이 앉아 있었는데,
첫 행을 읽자마자 눈물을 짜기 시작하더니 내 냅킨으로 내내 눈물을 찍어 냈다.
나도 은연중에 거기 이끌려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요란하게 고함을 질러 대긴 했지만
속으로 바가바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시엔 한결같이 하얀 연꽃과 콘돌 독수리, 코끼리, 물소 등이 등장했다.
이따금씩 하얀 연꽃을 뜻하는 로투스란 단어가 로토스로 변할 뿐
그러한 변화를 빼놓으면 그의 시는 늘 그게 그거였다.
열정도, 진실도, 환상도 없고 운에다 다른 운을 슬쩍 덧붙인 속임수일 뿐이었다.
나는 바가바를 별볼일 없는 삼류시인쯤으로 생각했다.
혹시 내가 내 시를 한 번쯤 그들 앞에서 읊어 보기라도 했더라면
그를 그렇게까지 깎아 내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시를 발표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의 시에 대해서 무자비하게 혹평을 가했다.
그 식당을 드나들던 사람들 중에서 내 왼편에 앉아 있던 사람도
그 인도 시인에 대해 나와 똑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역시 바가바의 시에 아무런 흥미도 없는 듯했다.
대머리인 그는 다 해진 허름한 옷을 걸치고 그나마 몇 올 안 되는 머리칼은
오랫동안 감지 않아 기름기가 잘잘 흘렀으며, 기다란 수염은 마치 국수가락처럼 흘러내려 있었다.
그는 좌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아는 것도 많은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위대한 현인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거의 말이 없었으며 자신을 드러내놓거나 과시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했으며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굉장한 분이야... 사상가라고."
바가바의 시가 낭송될 때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빈정거리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를 상당히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고상하신 분이야... 저분이 내 시를 한번 읽어 봐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날 저녁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나는 브랜디 한 병을 들고 그 사상가에게 가서 함께 한 잔 하자고 청했다.
그가 내 청을 받아들여 함께 술을 마시면서 얘기해 보고 나서
나는 그가 시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가바쪽으로 화제를 이끌어 갔다.
하얀 연꽃과 콘돌 독수리와 코끼리와 물소에 대해 대담하게 악평을 하기 시작했다.
코끼리는 반드시 원한을 갚는 동물이란 점을 익히 알면서도 나는 주저하지 않고 혹평을 가했다.
내가 열을 내며 얘기하는 동안 그 사상가는 아무 말 없이 술만 들이키다가
이따금씩 미소를 지으며 동의한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곤 했다.
"저런... 저런...."
나는 신이 나서 계속 말했다.
나 역시 시를 쓰고 있는데 내 시를 좀 읽어 보고 평을 해줄 수 없는지 부탁했더니
그 사상가는 여전히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며 "저런... 저런..."만 되풀이했다.
그의 기분이 몹시 좋은 것처럼 보여 나는 '이때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주머니에서 얼른 내 시를 끄집어 냈다,
그 사상가는 태연히 다섯번째 술잔을 들어 입 안으로 털어넣더니
시 원고를 펼치는 내 모습은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늙은 주정뱅이처럼 떨리는 손으로 내 팔을 덥썩 잡으며 말했다.
"우선 한마디 묻겠소, 젊은이... 당신이 쓴 시의 기준은 뭐요?"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사상가가 목소리를 한층 높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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