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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57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7. 2. 11:13
 
 
꼬마 철학자57  - 알퐁스 도데  
 
 푸른색 나비의 죽음 2
 "당신 시의 기준이 뭐냐니까! 당신 시는 뭘 기준으로 삼고 있느냔 말이요?"
 내 시의 기준을 말하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시의 기준 따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애당초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다. 
내 눈이 놀란 토끼 눈이 되고, 뺨이 붉어지고, 당황해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사상가는 화가 난 듯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 기준이 없다니!... 그렇다면 당신 시는 읽을 필요도 없소... 
대충 어떤지 안 봐도 다 아니까."
 그 말을 마치 그는 병에 남아 있던 두세 잔의 술을 연거퍼 따라 마시더니 
모자를 집어들고는 노기등등한 눈초리를 굴리며 나가 버렸다.
그날 저녁에 자끄 형에게 그 얘길 했더니 형은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 사상가란 놈은 정말 바보로구나... 기준 같은 걸 가져서 뭐 한다니? 
벵골 사람들은 기준을 하나씩 가진다니? 기준이라구? 기준이 뭐야? 
그거 대체 누가 만들어 낸 거냐? 너 그거 본 적 있어?... 기준을 파는 상인이라도 있나 보지? 참!"
착한 자끄 형은 내 시와 내가 당한 모욕 때문에 분개하며 눈물을 흘리고 어쩔 줄 몰라했다.
  잠시 후, 화가 가라앉은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잠깐, 단엘!... 내게 생각이 있어... 일요일에 삐에로뜨 씨 집에서 네 시를 읽지 않을래?"
  "'거기'서? 아! 자끄 형!"
  "왜 안 되니! 글쎄, 삐에로뜨 씨가 비록 시에 대해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까막눈도 아니야. 그는 투명하고 건전한 의식의 소유자라구... 
까미유도 약간 편견을 갖고 있긴 하지만 꽤 괜찮은 비평가라고 할 수 있어... 
트리부 부인도 책을 꽤 읽었고... 그 새머리 라루트 영감님도 그렇게 꼭 막힌 사람은 아니고... 
게다가 삐에로뜨 씨는 파리에서 꽤 점잖은 사람들을 알고 있으니 
그들도 초대하면 더욱 좋겠지... 어때? 한번 말해 볼까?"
나는 쏘몽 가에서 내 시를 평가해 줄 비평가를 찾아 보자는 자끄 형의 생각이 전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내 시를 발표해 보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릴 정도였으므로 
잠시 얼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자끄 형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다음날 즉시 형은 삐에로뜨 씨에게 그 이야기를 건냈다. 
사람좋은 삐에로뜨 씨는 그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감을 잡지 못했지만 
에세뜨 부인의 아이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는 주저없이 승낙했다. 
그리고 즉시 초대장을 띄워 보냈다.
그 담홍색의 작은 응접실에서 그런 축제는 단 한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삐에로뜨 씨는 내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도자기업계에서도 제법 한가닥한다 하는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날, 그 응접실에는 그 집 식구들 외에도 여러 사람이 모였다.
알포르 학교의 우수한 학생이자 수의사인 아들과 함께 파싸종 부부가 왔으며 
프루이아 형제도 와 있었다. 
프리메이슨 단원인 동생 프루이아는 구변이 좋아 프랑스 프리메이슨 본부의 집회소에선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었고 형 프루이아는 문학서클인 까보의 멤머인데 
사람들과 모여 떠들며 노는 걸 좋아했다. 
푸즈루 부부는 마치 파이프 오르간의 음관처럼 딸을 줄줄이 여섯이나 달고왔다. 
그런 굉장한 인물들 앞에 서자 나는 몹시 흥분되었다. 
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한 편의 시를 평가하시기 위해서 모이신 겁니다."
점잖게 앉아 있던 그들은 제각기 냉랭하고, 실망스럽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들을 지었다. 
그들은 마치 법관이나 되는 것처럼 머리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맞대고 쑥덕거렸다. 
삐에로뜨 씨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웅성대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더 와서 제각기 자리를 잡았다. 
나는 피아노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각설탕을 갉아먹고 있는 라루트 영감만이 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옹기종기 앉아서 내 주위에 반원을 이뤘다. 
잠시 자리잡느라 소란을 피우더니 곧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내 시의 제목을 읽었다.
터무니없게도 '전원시'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붙인 극시였다. 
싸르랑드 중학교에 있을 때 귀뚜라미와 나비, 
그리고 기타 자그마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 주기도 했었다. 
나는 그 동물들의 이야기를 대화 형식의 시로 만들어 '전원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시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그날 삐에로뜨 씨의 집에는 제 1부만 읽었다. 
여기서 나는 그 부분만 옮겨 쓰려 한다. 
하지만 그 부분이야말로 바로 '내 자전적 이야기'를 여실히 나타내 주고 있었다. 
담홍색의 작은 응접실 안에 둥그렇게 앉아 점잖은 사람들 앞에서 시를 읽으려니 좀 긴장이 되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읊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