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61 - 알퐁스 도데
흔들리는 시인의 꿈 2.
"삐에로뜨 씨는 ? 삐에로뜨 씨는 뭐라고 그랬어?"
내가 머뭇거리며 물어 보았다.
"아무 말도 안했어. 네가 안 나타나니까 꽤 실망하는 표정이더라...
다니엘, 넌 거기 가봐야 해. 가겠지?"
"내일 갈께, 자끄 형. 약속할께."
"톨로꼬또티깡! 콜로꼬또티그낭!"
우리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방금 돌아온 꾸꾸블랑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형이 갑자기 웃으며 내게 소곤거렸다.
"까미유가 저 여자를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모르지?
그애는 꾸꾸블랑이 자기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애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어...
그애가 꾸꾸블랑을 질투하다니! 참 웃기는 일이지?"
나도 형처럼 웃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만일 검은 눈동자의 그녀가 꾸꾸블랑을 질투한다면
그건 순전히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날 오후, 나는 삐에로뜨 씨 집을 찾아갔다.
나는 곧장 오층으로 올라가서 검은 눈동자의 그녀와 얘기를 나눈 다음 삐에로뜨 씨를 만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 뒤편에 있는 옆자리에 앉아야 했다.
이따금씩 가게 뒷방에서 플루트를 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삐에로뜨 씨는 더듬거리지도 않고 거침없이 빠르게 말했다.
"다니엘,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니 굳이 말을 돌리지 않겠네.
이건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우리 딸은 자네를 사랑하고 있는데...
자네 역시 그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나?"
"물론입니다. 삐에로뜨 씨."
"그렇다면 됐네. 한 가지 제안을 하겠는데... 내 딸이나 자네는 나이가 아직 어리니
결혼은 3년 후에나 하기로 하자구.
그러니 앞으로 3년 안에 자네는 직업을 구해 안정된 생활 기반을 닦아야 하네.
자네가 앞으로도 계속 '푸른 나비 장사'를 할 생각인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만일 내가 자네 입장이라면 말이야... 이건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나라면 그 시를 팽개쳐 버리고 라루트 상회에 들어가겠어.
그래서 도자기 장사에 익숙해진 3년 후 삐에로뜨 사위인 동시에 상속인이 되겠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삐에로뜨 씨는 날 팔꿈치로 툭툭 치더니 킥킥 웃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를 도와 도자기를 팔도록 내게 권유하면 내가 무척 기뻐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화낼 용기도, 대답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나는 두려워졌다.
접시와 색색의 잔들, 반구형의 대리석 덮개들이 내 주위에서 춤을 췄다.
카운터 앞쪽의 진열대 위에 놓인 연한 색깔의 유약을 입히지 않고 구운 도자기에
그려진 목동들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다가 지팡이를 휘두르더니 내게 외쳐 댔다.
'너는 도자기나 파는 게 어울려!'
그 뒤편에 있는 자주빛 사기 인형들도 목동들의 말에 찬성한다는 듯 커다란 머리를 흔들어 댔다.
'그래... 그래... 넌 도자기나 파는 게 어울려!'
또한 가게 뒷방에서도 음험하고 비웃는 듯한 플루트소리가 슬며시 흘러나오고 있었다.
'넌 도자기나 파는 게 어울려! 넌 도자기나 파는 게 어울려!'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삐에로뜨 씨는 내가 흥분과 기쁨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 듯했다.
그는 내게 확신을 주듯 한마디 덧붙였다.
"오늘 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세... 지금은 딸애에게 올라가 보게나...
이건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그 아이는 아마 지금쯤 자네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는 삐에로뜨 양에게 올라갔다.
그녀는 트리부 부인과 함께 담홍색 응접실에서 아버지의 슬리퍼에 수를 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내 기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그녀는 자기 아버지 삐에로뜨 씨를 영락없이 빼다박은 듯이 보였다.
살그머니 바늘을 빼내더니 몇 코나 수놓았는지
큰소리로 세고 있는 태평한 태도에 나는 부아가 잔뜩 치밀어올랐다.
자그맣고 불그스레한 손가락, 화색이 도는 두 뺨, 근심걱정 없는 태평한 표정의 그녀는,
'넌 도자기나 파는 게 어울려!'라고 소리치던 도자기 속의 여자 목동과 꼭 닮아 보였다.
다행히도 검은 눈동자의 그녀도 거기 있었다.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다소 흐릿하고 우울해 보였지만
무척 흥분한 내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내 뒤를 따라 삐에로뜨 씨가 들어왔다.
아마도 그는 우리를 감시하는 트리부 부인이 믿기지 않아 쫓아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 순간부터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사라지고 도자기 속의 목동 같은 삐에로뜨 양만이 남아 있었다.
삐에로뜨 씨는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며 수다를 떨었다.
'이건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라는 말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요란스러운 식사가 평소보다 훨씬 더 오래 계속되었다.
식사를 끝마치고 삐에로뜨 씨는 나를 따로 불러 내더니 자신의 제안을 상기시켰다.
나는 침착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요한 문제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므로
한 달 뒤에 대답하겠다고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내가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무척 놀라와하는 듯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알았네. 한 달 후에 대답을 듣기로 하지."
삐에로뜨 씨에 대해선 아무것도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커다란 충격으로
오후 내내 그 끔찍하고 치명적인 '넌 도자기나 파는 게 어울려'라는 말이 귓전을 울려 댔다.
나는 자기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와 피아노 옆에 자리잡은
새머리 노인이 각설탕을 갉아 먹는 소리에도 그 말을 들었으며,
금발 청년이 플루트로 룰라드 곡을 연주할 때도 그 말을 들었다.
심지어 삐에로뜨 양이 피아노 앞에 앉아 '로젤린의 꿈'을 연주할 때에도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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