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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60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7. 5. 09:33
 
 
꼬마 철학자60  - 알퐁스 도데  
 
  흔들리는 시인의 꿈
  내가 '전원시'의 마지막 행까지 낭송을 끝마치자 
  자끄 형이 열광하며 벌떡 일어나서는 브라보를 외쳐 댔다. 
  그런데 곧이어 좌중을 휘둘러본 형은 
  그들의 놀란 표정을 보자 흥분에 들뜬 몸짓을 우뚝 멈췄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묵시록에 나오는 불의 말이 
담홍색의 작은 응접실에 느닷없이 뛰어든다 하더라도 내 푸른 나비만큼은 
그들을 아연실색하게 느닷없이 만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싸종 부부와 푸즈루 부부는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동그랗게 치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루이아 형제는 서로 손짓을 해대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근거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몹시 처참한 기분을 느끼며 그들을 휘둘러보았다.
그때 갑자기,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을 깨며 유령의 외침 같은 메마른 노인의 목소리가 
피아노 뒤쪽에서 울려 오는 바람에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새머리 라루트 영감은 2년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었다. 
각설탕을 갉아 먹던 악귀처럼 생긴 흉칙한 노인이 외쳤다.
 "나비가 죽은 건 정말 잘 된 일이야. 난 나비를 좋아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자 무겁던 분위기가 차츰 사라지고 
내 시에 대해 한두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형 프루이아는 시가 지나치게 길다며 한두 개의 짤막한 풍자시로 줄이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파싸종 부부의 아들은 시에 등장하는 무당벌레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 때문에 시의 진실성이 결여됐다고 평가했다. 
형 프루이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시를 어디선가 읽어 본 적이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자끄 형이 내게 소곤거렸다.
  "신경쓸 거 없어. 네 시는 걸작이야."
삐에로뜨 씨는 정신이 나간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시를 읽는 동안 그는 자기 딸 곁에 붙어 앉아 감동으로 떨리고 있는 
딸의 자그마한 손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딸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몹시 놀란 듯했다. 
삐에로뜨 씨의 말마따나 이건 이런 경우에 꼭 들어 맞는 말인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그는 아주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딸의 속적삼을 저녁 내내 들여다보고 있는 통에 
나는 검은 눈동자의 그녀에게 한마디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그곳을 빠져나왔다. 
뿐만 아니라 형 프루이아가 낭송하는 짤막한 풍자시를 듣는 것조차도 내키지 않았다. 
그 이후 이 일로 인해 그는 나를 결코 용서하지 않고 앙심을 품게 되었다.
내 생애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시 낭송의 밤 이후, 
이틀 뒤에 삐에로뜨 양은 의미심장한 짤막한 쪽지를 내게 보내왔다.
  '빨리 오세요. 아버지가 모든 걸 알고 계세요.'
그리고 그 밑에다 내 사랑하는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덧붙여 놓았다.
솔직히 나는 뜻밖에 받아본 그 굉장한 소식에 다소 황당했다. 
이틀 전부터 나는 내 시를 출판해 줄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어서 
검은 눈동자의 그녀보다는 내 시에 정신을 더 팔고 있었다. 
게다가 삐에로뜨 씨에게 까미유와의 관계를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 전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검은 눈동자의 그녀부터 받은 급한 전갈에도 불구하고 얼마 동안 '거기'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게 남아 있는 불안을 없애려고 나는 종종 이렇게 생각했다.
  '내 시를 팔고 나면 가지 뭐.'
불행히도 나는 내 시를 팔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당시의 출판업자들은 매우 친절하고 정중하고 관대하고 상냥했다. 
그런데 그들은 공통적으로 못된 결점을 모두 지니고 있었는데 
한시도 집에 붙어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천문대의 망원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한 별처럼 
그들은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찾아갈 때마다 언제나 그들은 부재중이었고, 나중에 다시 오라는 대답일뿐이었다.
  "제기랄!"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매번 그런 식으로 골탕을 먹이는 것이었다.
난 정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쫓아다녔다. 
수없이 출판사 문 손잡이를 돌렸다. 
행여나 하는 기대로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출판사 문 앞에서 망설여 대던 초라한 내 모습은 정말 그 자체였다. 
일단 사무실 안에 들어서면 더운 열기와 갓 인쇄된 새 책에서 풍기는 냄새가 
어찔할 정도로 달려들기도 했다. 
그곳은 몹시 분주한 키 작은 대머리 남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판매대 뒤편의 쌍사다리에 올라선 채
 "편집장께서는 외출중이십니다"라고 말해 버리곤 그만이었다. 
매일 저녁 슬픔과 짜증이 뒤섞인 가슴을 안고 지친 몸을 끌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자끄 형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로했다.
  "용기를 가져, 내일은 선공할 거야."
다음날이 되면 나는 다시 원고뭉치로 무장하고 전선에 나섰다. 
날이 갈수록 원고뭉치는 더 무겁고 귀찮게 느껴졌다. 
처음에 나는 마치 새로 산 우산처럼 그 원고뭉치를 자랑스럽게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원고 뭉치가 부끄러워져 
나는 외투 속에 집어넣어 보이지 않게끔 숨은 뒤 단추까지 채우곤 했다.
여드레가 그런 식으로 훌쩍 흘러가 버렸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자끄 형은 혼자 삐에로뜨 씨 집으로 저녁시간을 보내러 갔다. 
보이지도 않는 별을 쫓아다니느라 지쳐 있던 나는 종일 집에 누워 있었다. 
저녁때 집에 돌아온 형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는 내게 가볍게 투덜거렸다.
"야, 다니엘! 네가 오늘 '거기'에 가지 않은 건 잘못이야. 
까미유가 울면서 몹시 섭섭해 했어. 네가 보고 싶어 죽겠다는 거야. 
오후 내내 네 얘기만 하더라구... 아! 그애는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불쌍한 자끄 형은 그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