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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62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7. 7. 07:48
 
 
꼬마 철학자62  - 알퐁스 도데  
 
   흔들리는 시인의 꿈3
   또한 나는 거기 모인 인형처럼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부유한 사람들의 몸짓과 의상 속에서도, 벽지의 화려한 그림 속에서도, 
   커다란 시계추에 그려진 장미꽃을 꺾고 있는 비너스와 
   그 장미에서 사랑의 신이 날아오르고 있는 그림 속에서도, 값비싼 가구에서도, 
그 담홍색의 끔찍한 응접실에 자리잡고 있는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 속에서도 그 말을 읽을 수 있었다. 
매일 저녁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똑같은 곡을 연주하며 
그날그날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 응접실은 내게 그 말을 전해 주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그런 고루한 응접실에는 없었다.
그 지겹고 괴로운 집에서 돌아온 나는 자끄 형에게 삐에로뜨 씨의 제안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형은 나보다 더 심하게 분개를 했다.
"다니엘 에세뜨가 도자기 장사를 한다고? 생각해 보렴! 
그건 마치 라마르띤느에게 성냥을 팔라거나 쌩뜨 뵈브더러 말총 빗자루를 팔라는 이야기와 똑같아. 
그 바보 같은 삐에로뜨 씨는 정말 미쳤군!... 하
지만 그를 원망할 필요는 없어. 뭘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네 시집이 성공을 거두고 네 이름이 신문을 장식하면 그 사람도 태도를 바꿀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자끄 형, 하지만 신문에 내 이름이 오르려면 내 시집이 출판되어야 하는데, 
그건 가능성이 없잖아... 왜 그러는지 알아? 
출판업자를 찾을 수가 없고 또 그 사람들은 시인들이라면 만나려고 하지 않아. 
그 위대한 바가바도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 시집을 인쇄해야 했어."
자끄 형이 식탁을 톡톡 두드려가면서 말했다.
  "음, 우리도 그 사람처럼 하면 되지? 우리 돈으로 네 시집을 인쇄하는 거야."
  나는 놀란  눈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우리 돈으로?"
  "그래, 우리 돈으로 출판하는 거야. 마침 후작님이 요즈음 회고록의 1부를 인쇄하고 있거든... 
난 그 회고록의 출판업자를 매일 만나고 있단다. 
그는 딸기코에 어린애같이 순진한 알자스 출신이야. 
그는 틀림없이 네 시집을 외상으로 인쇄해 줄 거야... 
그렇고 말고! 네 시집이 팔리면 그 돈을 갚으면 돼... 자! 됐어. 내일 내가 그 사람을 만나겠어."
다음날 자끄 형은 그 출판업자를 만나 보고는 희색이 만면해서 돌아와 
개선장군처럼 말했다.
  "됐어! 네 시집을 내일 인쇄에 걸기로 했어. 모두 9백 프랑쯤 될 거야. 대단치 않은 돈이지. 
한 달에 3백 프랑씩 세 번에 걸쳐서 갚기로 했어. 이제 계획을 좀 세워 보자. 
천 부를 찍어서 한 부에 3프랑씩 파는 거야. 내 말 알아듣겠니?
 3천 프랑이라구. 그러고 나서 출판업자에게 빚을 갚은 다음 시집을 팔아 주는 서점에 
한 권당 1프랑씩 넘겨 주고 신문기자들에게도 몇 부 주고 나면 
우리에게는 천백 프랑의 이익이 떨어지는 거야. 알겠니? 그렇게 되면 성공적인 데뷔가 되는 거야."
그렇게 성공적인 데뷔만 하게 된다면 더이상 보이지도 않는 별들을 쫓아다닐 필요도 없고, 
출판사 문 앞에서 창피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날 쌩 제르멩 데 프레 광장의 우리 방은 멋진 계획과 화려한 꿈으로 가득 찼다.
그 이후로 나는 출판사에 가서 교정지를 고치고, 표지의 색깔을 의논하고,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인쇄된 종이를 보고, 두세 번이나 제본소를 뛰어다녔다. 
드디어 처음으로 나온 시집을 받아들고서 떨리는 손끝으로 책장을 열었다... 
자! 세상에서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바로 그날 저녁 나는 '전원시' 시집을 들고 자끄 형과 함께 삐에로뜨 씨 집으로 향했다. 
형과 나는 기쁨에 들뜨고 당당한 태도로 그 담홍색 응접실에 들어섰다.
"삐에로뜨 씨, 내 첫 작품을 까미유에게 바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이렇게 외쳐 대며 기쁨으로 떨고 있는 그 사랑스런 자그마한 손 위에 내 시집을 올려놓았다.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표지에 쓰여 있는 내 이름을 보자 
반짝반짝 광채를 발하며 감사의 눈길을 내게 보냈다. 
삐에로뜨 씨는 검은 눈동자의 그녀만큼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식으로 책을 찍어 내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지를 자끄 형에게 물어 보았다. 
자끄 형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천백 프랑은 너끈히 벌 수 있죠."
  "아니, 그게 사실인가?"
두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그 비단 같은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깐 채 내 책을 읽다가 감탄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하는 검은 눈동자의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너무너무 기뻤던 것이다. 
시집과 검은 눈동자의 그녀, 이 두 가지 즐거움을 내게 안겨 준 것은 어머니 같은 자끄 형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는 '전원시'가 서점에서 
어떤 반응을 받고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오데옹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자끄 형의 여전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 얼마나 팔렸는지 보고 올께."
나는 길에서 서성거리며 형을 기다렸다. 
서점 진열대 안에 검은색 줄이 쳐진 내 시집 표지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면서 말이다. 
얼마 후에 형이 돌아왔다. 형은 흥분으로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 보였다.
  "야, 벌써 한 권 팔렸어. 이건 좋은 징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형의 손을 꼭 쥐었다. 
너무도 흥분이 되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파리의 누군가가 자기 지갑에서 3프랑을 꺼내 내 시집을 사서 그걸 읽고 나를 심판한다. 
과연 그 사람은 누굴까? 그 사람은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은데."
그러나 다음날 불행히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내 시집이 나온 다음 날, 
그 사나운 사상가 옆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데 자끄 형이 
숨을 헐떡거리며 식당으로 뛰어들어와 다짜고짜 나를 밖으로 잡아 끌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