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81 - 알퐁스 도데
겨울비 내리는 죽음의 길 1.
만약 아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고,
꿈 이야기를 들으면 코웃음만 치거나,
어떤 야릇한 예감에 단 한번도 흘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한 현실만을 인정하고 미신 따위는 절대로 없다는 믿음을
한순간이라도 버리지 않은 강철 같은 머리를 가진 실증주의자라면,
그래서 또한 여하한 경우라도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고 논리로서 설명해 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면 어떤 것이라도 부정해 버리는 사람이라면
내가 겪은 이 불행을 절대로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험난한 세상이라도 진실은 존재하며 또한 그 진실성은 영원하듯이
내가 겪은 이 엄청난 일은 사실 그대로이며 조금의 과장도 없음을 꼭 밝혀 두고 싶다.
12월 4일, 나는 평소보다 일찍 울리학원을 나왔다.
아침에 몹시 피곤해 하는 자끄 형을 홀로 남겨 두고 나왔기 때문에 어떻게 됐는지 몹시 걱정됐다.
허둥지둥 삘르와 호텔의 정원을 가로질러 가다가 그만 실수를 하여
무화과나무 옆에 서 있는 삘르와 씨의 밟고 말았다.
그는 키가 작고 똥똥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똥똥한 사람은 장갑의 단추를 채우려고 몹시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사과하고 나서 곧장 갈 했는데 삘르와 씨가 나를 불렀다.
"잠깐만요, 다니엘 씨!"
그러고는 똥똥한 사람에게로 몸을 돌리며 그에게 덧붙였다.
"이 청년이 바로 그 사람의 동생입니다. 이분에게 말씀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나는 몹시 당황하여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 똥똥한 사람이 내게 무얼 알려 주겠다는 것인가?
자기 손에 비해 장갑이 너무 작다는 걸 알려 주겠다는 것일까?
그건 말하지 않아도 벌써 알고 있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였다. 삘르와 씨는 고개를 위로 쳐들고
열리지도 않은 무화과를 찾기라도 하려는 듯이 무화과나무를 쳐다만 보았다.
장갑을 낀 남자는 여전히 단추를 채우려고 애쓰고 있었고...
그러더니 결국 말하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상당히 초조한 듯 여전히 장갑 단추를 채우려고 애쓰면서 안절부절했다.
"나는 20년 전부터 삘르와 호텔의 주의치로 일해 왔읍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나는 그가 말을 끝마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의사'라는 말만으로도 나는 말만으로도 나는 모든 걸 짐작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제 형 때문에 오셨군요... 많이 아픈 거지요?"
그 의사가 나쁜 사람인지 선량한 사랑인지 처음 보고서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 순간 의사는 자기 입장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자끄의 동생에게 얘기하려 한다는 사실도 망각해 버렸고
따라서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한 어떠한 노력이나 배려에는
잠시도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처럼 보였다.
그가 뱉아낸 그 말은 너무 잔인하게 들렸다.
"아프냐구요! 아픈 정도가 아닙니다...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
그럴 수가! 너무나 엄청난 충격이었다.
집이, 정원이, 삘르와 씨가, 의사가, 그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무화과나무에 몸을 기댔다. 쓰러질 것 같았다.
삘르와 호텔의 그 주치의는 참으로 강한 주먹을 가진 모양이었다.
더구나 내 심경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장갑 단추를 끼우려고 애쓰면서 아주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급성 질구성 결핵입니다...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전혀 없어요...
게다가 너무 오래 방치해 두어서... 내게 너무 늦게 알려 주었어요."
"그, 그건 내 실수가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이 사람좋은 삘르와 씨가
여전히 조심스럽게 무화과를 찾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제 잘못이 아니예요. 나는 그가 아프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요.
가엾은 에세뜨 씨. 나는 충고했었지만 그는 결코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요.
자기 동생이 겁을 먹을까 봐 그랬던 것이지요. 참 대단한 우애를 가진 형제들이지 않습니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절망적인 흐느낌이 솟아나오려고 했다.
"이봐요, 용기를 가져요! 누가 압니까!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도 낫게 되는 경우가 있죠.
의학으로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자연의 그 오묘한 이치는 아직 모르는 거라오...
내일 아침에 다시 오지요."
의사는 몸을 돌리더니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드디어 장갑의 단추 하나를 채웠던 것이다.
나는 잠시 넋을 잃은 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곤 눈물을 닦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용기를 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자끄 형은 내가 침대를 쓰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아! 형... 그의 얼굴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창백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그 얼굴, 그 모습 그대로 그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우선 소파로 가서 형을 침대로 옮기는 것이 가장 급선무란 생각이 떠올랐다.
어쨌던 간에 소파 아닌 다른 데로 옮기고 싶었다.
'소파 위에 누워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
하지만 곧 또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넌 못할 거야. 자끄 형은 너무 크단 말이야!'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죽음의 장소에 누워 있는 자끄 형을 바라보자
내 용기는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형은 위독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소파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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