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82 - 알퐁스 도데
겨울비 내리는 죽음의 길 2.
자끄 형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로구나 다니엘... 의사를 만난 거지?
널 낙담시킬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네 얼굴을 보니 그 의사가 내 부탁을 들어 주지 않은 것 같구나.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모양이지... 손을 잡아 다오...
누가 이렇게 될 줄을 생각이나 했었겠니?
누구는 니스로 폐병을 고치러 가는데 나는 그곳에서 병에 걸려 왔구나.
참 야릇한 일이야! 다니엘... 네가 그렇게 상심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하나도 없어진단다.
아직은 괜찮아... 오늘 아침에 네가 나가고 난 다음에 이젠 다 됐다는 걸 알아차렸어.
그래서 쌩 삐에르 주임 신부님을 모셔오라고 사람을 보냈다.
좀 전에 신부님이 왔다 가셨어. 이따가 종부성사를 베풀어 주시러 다시 오실 게다...
나한테는 기쁜 일이란다. 알겠니? 아주 좋은 분이야...
그분의 성이 네가 싸르랑드 중학교에 있을 때에 알게 됐다던 신부님의 성하고 같더구나...."
형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더니 눈을 감았다.
그가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나는 미친 듯이 큰소리로 형의 이름을 외쳤다.
"자끄 형! 형! 아! 자끄 형...."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잡은 손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삘르와 씨가 한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소과 쪽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이게 웬일이야, 자끄...이건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안녕하셨어요, 삐에로뜨 씨?"
형이 눈을 뜨면서 힘없이 말했다.
"삐에로뜨 씨! 당신이 달려올 줄 알았어요... 다니엘은 저쪽에 좀 가 있거라.
삐에로뜨 씨와 할 이야기가 있어."
삐에로뜨 씨는 다 죽어 가는 자끄 형의 새파랗게 질린 입술에 귀를 갖다댔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런 모습으로, 아주 작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방 한가운데 꼼짝 않고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여전히 책을 겨드랑이에 낀 채로 서 있는 것을 보고 삘르와 씨가
조심스레 책을 빼주면서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내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촛불을 켜고 탁자 위에 하얀 식탁보를 깔았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왜 식탁보를 깔까?... 식사를 하려는 건가?... 하지만 난 배고프지 않아....'
밤이 되었다. 밖에선 호텔에 사는 사람들이 정원 쪽에서 우리 방을 가리키면서 손짓을 해댔다.
자끄 형과 삐에로뜨 씨는 아직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때때로 삐에로뜨 씨는 굵은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대답했다.
"그래, 자끄, 그래...."
나는 감히 그쪽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드디어 형이 나를 불러 자기 머리맡 쪽의 삐에로뜨 씨 옆에 앉게 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형이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다니엘, 너를 남겨 두고 가게 돼서 뭐라 말할 수 없이 슬프구나.
하지만 너 혼자 남겨 두진 않아. 그게 네겐 위안이 될 거야...
삐에로뜨 씨가 네 곁에 있게 될 거다.
삐에로뜨 씨가 널 용서하고 나 대신 너를 돌봐 주기로 약속했다...."
"말해서 무엇하나, 자끄! 약속하지... 이건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결단코 약속하지."
"불쌍한 다니엘, 너 혼자 힘으로는 결코 우리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못할 거야...
널 무시하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넌 우리 집을 일으켜 세우기엔 적합하지 못해...
하지만 삐에로뜨 씨가 도와 준다면 우리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
너보고 어른이 되라고 요구하진 않겠다.
제르만느 신부님 말처럼, 넌 영원히 어린애 같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착하고 용감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좀 가까이 오렴. 이건 네 귀에다 대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무엇보다도 까미유를 울리지 않도록 해...."
형은 말을 하기가 몹시 힘든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모든 게 끝나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도록 해.
하지만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알려드려야 할 거야...
한꺼번에 모든 걸 알게 되시면 너무 큰 충격이 될 거야... 이제 알겠니?
왜 내가 어머니를 이곳에 오지 못하게 했는지를 말이야.
난 어머니가 이곳에 계시게 되는 걸 원치 않았던 거야.
이런 일은 그 어떤 어머니에게라도 엄청난 고통이란다...."
형은 말을 멈추고 방문 쪽으로 바라보았다.
"하나님이 도착하셨구나!"
형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보고 떨어져 달라는 손짓을 했다.
신부님이 종부성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흰 식탁보 위에 양초가 켜지고 그 사이에 성체의 빵과 성유가 놓여졌다.
그런 다음 신부는 침대 쪽으로 다가가서 의식을 시작했다....
그 의식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을 것처럼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의식이 끝나자 형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날 안아다오."
너무도 힘없이 작게 말해서 형의 목소리는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들려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사실 그 무서운 질구성 결핵이 야윈 형의 등 뒤에서
형을 죽음으로 몰아붙였던 그때부터 난 형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너무 멀리에....
형을 안으려고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았다.
형의 손은 임종의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인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그 손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한 시간, 아니면 영원이란 시간이 이미 흘러가 버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형은 더이상 날 바라보지도, 더이상 말을 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 손 안에 들어 있는 형의 손이 마치 '아직도 네가 내 곁에 있구나'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때때로 미미하게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형은 벌떡 눈을 뜨더니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때 나는 형에게 몸을 굽히고 있었으므로
형이 아무리 조그만 목소리로 하는 말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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