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83 - 알퐁스 도데
겨울비 내리는 죽음의 길 3.
"자끄, 넌 당나귀처럼 멍청한 바보야. 자끄는 바보야!...."
그리고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을 거둔 것이었다.
아! 그 꿈이.... 그날 밤은 바람이 몹시도 불었다.
바람을 타고 싸락눈이 날아와 유리창을 때렸다.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탁자 위에는 은십자가 두 개의 촛불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웬 낯선 신부님이 큰 목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심한 바람소리 속에서도 신부님의 기도소리는 내 귀에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기도하지 않았다... 내겐 오직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자끄 형의 손을 꼭 쥐고 언제까지나 식지 않도록 덥혀 줘야겠다는 생각밖에...
그러나... 아침이 가까와질수록 형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무거워만 갔다.
한쪽에선 라틴어로 기도를 하고 있던 신부님이 갑자기 일어나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기도를 해봐... 좀 나아질 테니...."
그때서야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보았다...
칼자국과 상처투성이에도 불구하고 멋져 보이던 용모와
신부복 자락을 펄럭이며 걸을 땐 하늘을 나는 용처럼 보이던 그 모습...
그는 바로 싸르랑드 중학교시절의 내 친구 제르만느 신부님이었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통으로 완전히 허탈감에 빠져 있던 나는
신부님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럴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고 내겐 그저 단순한 일로 여겨졌을 뿐이다...
종부성사를 하고 가신 쌩 삐에르 신부님이 바로 그의 형이었다.
내가 학교를 떠나오던 날, 제르만느 신부님은 파리에 형이 한 분 계시다고 말했었다.
사람의 운명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인지
그즈음에 마침 제르만느 신부님은 파리에 들러 사제관에 묵고 있었다.
"여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사망한 가엾은 젊은이의 종부성사를 해주고 오는 길이야.
그를 위해 기도해 주게나."
"내일 미사를 올리면서 기도하도록 하지요. 이름이 뭔가요?"
"글쎄... 남부지방 출신인 모양인데, 외우기 꽤 힘든 이름이었어...
자끄 에세... 아, 그래... 자끄 에세뜨라고 하더군..."
제르만느 신부님은 그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서 긴가민가하며
지체 않고 삘르와 호텔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들어오면서 신부님은 형의 손을 꼭 쥐고 엉거주춤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란 것을 알아봤단다.
신부님은 슬픔에 빠진 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와 함께 밤을 새우겠노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방에서 내보냈고 무릎을 꿇고 앉아 밤새 기도하다가
내 어깨를 두드렸던 것이었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고통스런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고...
그리고 밤과 낮이 바뀌며 많은 날들이 흘러갔어도 희미하고 모호한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
선명한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내 기억의 필름이 완전히 꺾여 버린 것이었다.
다만 검은 마차 뒤를 따라 파리의 진흙탕 속을 끝없이 걸어가던 기억은
마치 몇 백 년 전에 있었던 잊혀진 역사의 한 장면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다.
나는 모자도 쓰지 않고 채 걷고 있었고 내 앞에는 삐에로뜨 씨와 제르만느 신부님이 걸어가고 있었다.
진눈깨비가 섞인 차가운 비가 얼굴을 때렸다.
삐에로뜨 씨는 큰 우산을 갖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받지 못했고,
빗줄기가 너무도 세차게 쏟아져 제르만느 신부님의 사제복이 흥건히 젖어 버렸다.
비가 내렸다!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도저히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처럼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끝없이 걸었다!
마차 옆을 따라서 검은 옷을 걸치고 흑단 지팡이를 든 키큰 신사가 걷고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장례식을 관장하는 사람으로 주검의 시종들처럼
비단 외투를 입고 칼을 차고 짧은 바지에 동그랗고 긴 모자를 쓰고 있었다...
환각이었을까?... 나는 그 신사를 보고 싸르랑드 중학교의 비오 씨를 연상했다.
키가 매우 크고 한쪽 어깨로 고개가 약간 기울어진 모습하며
나를 바라볼 때 입가에 번지던 위선적이고 차가운 미소도 꼭 같았다.
그 신사는 분명 비오 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그림자일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검은 마차는 앞으로만 나아갔다.
느리게, 느리게... 결코 장지에 다다르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끝없이 걸었다.
드디어 우리는 몽마르뜨르 언덕의 공원 묘지에 다다랐다.
공원 묘지에 들어서서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탕을 걸어
이미 파놓은 커다란 구덩이 앞에 가서 행렬은 멈췄다.
짤막한 외투를 걸친 남자들이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관을 옮겨 와 조심스레 구덩이 옆에 내려놓았다.
하관 작업은 어려웠다.
밧줄이 비에 흠뻑 젖어 도무지 미끄러지지 않았다.
나는 그 남자들 중 한 명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발을 앞으로 내려! 발을 앞으로 내리라니까!"
내 맞은편에는 비오 씨의 그림자가 여전히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나를 지켜보았다.
큰 키에 야윈 얼굴, 목이 꽉 조일 정도로 상복을 조여 입은 그 모습은 메뚜기를 연상케 했다.
하늘 전체를 꽉 뒤덮은 잿빛 구름을 억지로 뚫고 굴러 떨어진 비에 젖은 검은 메뚜기....
장례식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그 차가운 땅 속에 형을 홀로 남겨두고 나는 삐에로뜨 씨와 단둘이 몽마르뜨르 언덕을 내려왔다...
삐에로뜨 씨는 마차를 잡으려 애썼지만 허탕만 쳤다.
나는 모자를 손에 들고 잠자코 걸었다.
나는 여전히 영구마차 뒤를 따라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울면서 마차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뚱뚱한 삐에로뜨 씨와
억수같이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 속을 모자도 쓰지 않고 묵묵히 걷고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걸었다. 피곤했고 머리도 무거웠다.
쏘몽 가에 다다랐다.
저만치에 빗방울이 송송 맺혀 빛나고 있는 라루트 상회의 진열장이 보였다.
우리는 가게엔 들르지 않고 삐에로뜨 씨의 집으로 곧장 올라갔다...
이층까지 올라갔을 때 온몸에서 힘이 쏙 빠져나가 버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계단에 주저앉았다. 도저히 더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머리가 몹시도 무거웠다... 삐에로뜨 씨가 나를 안아 들고 오층으로 올라갔다.
오싹 한기가 들며 죽어 가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에 와 닿는 싸락눈 소리와 정원에 떨어지는 두둑두둑 빗방울소리가 아스라히 들려올 뿐이었다.
비가 내렸다!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차가운 겨울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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