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죽어야 예수님이 산다.
이런 투의 얘기는 교회에서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세울 정도로 당신을 끔찍이 사랑하시며, 당신의 기도를 항상 듣고 계시며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해주실 것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살 게 해주신다는 가르침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의 가르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하나님의 뜻은 맞지만, 그 대상이 교회의자에 앉아있는 교인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교회의 가르침이 맞는다면, 당신이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갈 리가 없다. 당신만이 아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목회자들의 대부분도 초라하고 무능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설교단상에만 올라가면 현실을 외면하고 신학교에서 배운 교단교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네 교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자 빛이라고 불러주신 자녀가 아닌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멸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인들이 하나님의 눈 밖에 난 까닭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위의 바울사도의 말씀은 너무도 유명해서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바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믿음은 자기 확신의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계획, 목표와 뜻을 버리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여서,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명령만을 위해서 살겠다고 고백하고 결단하였다. 그것도 일회적인 결단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그 결단을 삶에 올곧게 적용하겠다고 선포하였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사도바울은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에서 자신이 선포한대로 살다가 순교의 이슬로 이 땅을 떠나 천국에 들어갔다. 로마서에서 밝힌 대로, 그는 살 때나 죽을 때나 오롯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고백에 불과하고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가? 당신이 교회마당을 밟으면서 수많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많은 재산을 아낌없이 십일조와 헌금으로 드렸으며,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마다하지 않았음에도 세상 사람과 별 차이 없이 고단하고 팍팍하게 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이 교회에 온 이유가 주인을 위하여 죽을 생각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교회에 온 이유는 천국은 당연하고, 이 땅에서 잘되고 부유하며, 삶의 문제를 해결 받을 목적이 전부였다. 그래서 당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삶에 적용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당신은 가증스럽게 여겨 외면하고 계신 이유이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主人(主라는 본래의 단어)이라고 부르면서, 실제로는 자신이 주인행세를 하고 하나님을 도우미나 해결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움과 축복과 상관없이 살다가 죽으면 지옥 불에 던져질 운명인 셈이다. 그러나 당신이 필자의 주장을 귓등으로 들을 거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이를 콕 집어서 말씀해주신 성경구절을 알려드리겠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20:4)
요한이 환상에서 본 천국의 장면이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하는 지를 줄줄이 나열하고 있다. 여기에 목 베임을 당한 사람들이 나온다. 목 베임을 당했다는 문자적인 의미는 목이 잘라지는 참수형을 당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이 죄다 참수형으로 죽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십자가형으로, 어떤 이는 사자 밥으로, 어떤 이는 불에 태워지는 화형을 당했다. 그러므로 목 베임을 당한 사람들은 순교 당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를 믿는다고 감옥에 갇히거나 순교를 당하는 시절이 아니다. 거꾸로 기독교는 기득권층의 종교이다. 그렇다면 위의 말씀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가? 아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고, 예수님의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명령하고 계시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살고 계신가? 예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원하는 삶을 포기하며, 오직 주를 위해 살아가고 계신가? 그렇다면 어떤 어려움과 어떤 손실과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발버둥을 치면서 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인을 찾지도 않고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가 바로 주인을 찾는 것이며,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주인의 뜻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1시간도 기도하지 않으며 성경책이 집안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는 당신이, 날마다 주를 위해 죽고 있다고? 하나님을 감쪽같이 속이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당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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