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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적?

Joyfule 2019. 11. 9. 01:31

 

 

     믿음과 기적?

 

 

한마디로 말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눈앞에 보는 것처럼 나를 내맡기고 매달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고자 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리고 우리 앞에 당신의 그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잡아주시고 붙들어주시는 그 분의 손길을 느낀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 <믿고자 하는 마음>을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론으로 설명이 안되고 체험이 말할 뿐이다. 그러니까 체험을 하기 위해 우선 일단 믿어 볼 것이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 바디매오


소경 바디메오의 기적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조건으로 기적 보기를 원한다. 기적을 보여주면 하나님을 믿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왜냐하면, 기적은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믿음 하나만으로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폭약만 가지고서는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가과 같은 것이다. 폭약을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뇌관과 도화선이 있어야 하고 그 도화선에 불을 붙여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적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믿음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믿음과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하고 구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등식(等式)으로 나타내면

<믿음> + <간절한 소망> +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나타내는 행위> = 기적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믿음만 가지고서는 안 되고,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 믿음과 소원을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있어도 안 된다. 그것을 무엇인가의 형태로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는 그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즉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니, 그런다고 정말 기적이 일어날까요?”하고 못 믿어 하시는 분. 믿으시기 바란다. 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

소경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며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는 그의 믿음과, 눈을 뜨고자 하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예수님 앞에, 즉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나타낸 것이다. (다 아는 것이지만,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소리는, 메시아는 다윗 가문에서 나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다윗의 지손이여, 하는 소리는 메시아여, 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처음 믿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삼아. 참 소경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아직 모르는 사람은 누가복음 18장 35절에서 43절까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뜨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어야 하고,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믿음만 가지고서는 안 되고, 눈을 뜨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하고, 간절한 소원만 가지고 있어도 안 된다. 믿음과 소원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틀림없는 메시아야. 전능하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분명해 나는 그렇게 믿어. 그리고 나는 눈을 뜨고 싶다. 예수님 앞에 나가서 이 소원을 아뢰면 틀림없이 눈을 뜨게 해 두실 텐데...” 하고 생각만 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백날이 가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믿음과 소원을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나타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그것을 행위로 나타내기 위해 앞으로 뛰어나오면서 외쳤던 것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래서 그가 눈을 떴는가?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보고 조용하라고 꾸짖었던 것이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다윗의 자손을 외치며 나오는 바디매오와 메시아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타나 배디매오를 꾸짖은 것이다.


기적 앞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장애물은 언제나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나타난다. 어찌했거나 기적 앞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나타난다. 따라서 기적을 보기 위해서는 장애물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장애물 때문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기적이 일어날 전조라고 생각하고 기뻐할 것.

 

바디매오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다윗의 자소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응답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믿음>과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계속 외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첫 번째 외치는 소리도 물론 들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외치는 소리를 들고 나서야 머물러서시며 그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외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간절히 사모하며 열심히 외치는 자에게 응답하신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쉬지 말고 계속 외쳐야 한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물으셨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워하느냐?”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다 아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직접 아뢰기를 원하신다. 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어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로 확실하게 알게 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그냥 이루어지시는 일은 없다.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이루어 주신다. 그냥 이루어 주시면 아둔한 인간들은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소원을 아뢰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바디매오는 곧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이어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바디매오는 눈을 떴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란 무엇인가?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2) 그 앞에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소경 따위 아주 쉽게 보게 할 수 있다고 믿고

4) 눈을 뜨고 싶은 소원을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5) 예수님 앞에 큰 소리로 외치고 나왔다.

위의 1) + 2) + 3) + 4) + 5) = 구원받는 믿음.


소경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설교하시는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바디매오가 눈으 뜬 것으로 그 설교를 마친다. 바디매오는 눈을 떴다. 기적은 일어났고, 그는 그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 얘기는 끝난 것이다.

하지만....실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성경은 바디매오가 눈을 뜬 다음에 한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눅18:43)


이것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 은혜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런 다음, 예수를 좇아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가신 그 험하고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소경 바디매오의 진짜 이야기는 그가 눈을 뜬 다음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