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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하고 당당한 여성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3. 27. 13:20





알뜰하고 당당한 여성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서울에서 내가 사는 동해의 실버타운으로 이웃의 영감님 부부가 찾아왔다. 말이 영감이라고 했지만 아직 칠십대 중반의 내가 형님같이 생각하는 분이었다. 그 부부는 수천억의 재산을 가진 부자다. 그 부부는 강남의 요지인 청담동과 서초동에 만도 여러 채의 빌딩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항상 소박한 서민으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러 꾸미는 위선적인 겸손이 아니었다. 자신들은 아끼고 살지만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부하는 데는 손이 큰 편인 것 같았다. 십년 전 그가 다가와 좋은 선생님 같이 내게 뒤늦은 바둑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기차로 묵호역에 도착한 그 부부가 내게 말했다.

“여기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이 옷값이 싸다는데 같이 가보면 어떨까요?”

명품을 입고 과시하는 세상에서 그 부부는 남들이 겉만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부부와 함께 묵호의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갔다. 무너져 가는 듯한 어둠침침한 가게 안에 옷들이 걸려있었다. 오천원짜리 싸구려부터 저가의 옷들이었다. 그중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품을 하며 앉아 있던 육십대 말쯤의 가게 주인여자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옷 한 장도 못 팔았는데 처음으로 손님이 오셨네”

그 시장안 옷가게 주인들이 대충 그렇게 보였다. 옷을 팔려는 건지 무료하게 정물같이 앉아 가게를 지키는 건지 구별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저가의 옷이지만 품질은 괜찮은 것 같았다. 며칠 전 실버타운에 사는 팔십대 노부부가 북평의 오일장에서 옷을 몇 벌 사왔다고 했다. 미국에서 오십년 살다가 역이민을 온 부부였다. 한국의 시골장에서 파는 옷이 의외로 품질이 좋고 값이 싸더라고 내게 말했다.

나를 찾아온 이웃 부부는 바지를 두 벌 샀다. 바지 길이를 고치기 위해 재래시장 안 깊숙이 있는 옷 수선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대형마트 때문에 점점 쇠락해 가는 재래시장안은 초라하고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육십대쯤 보이는 여성 혼자 미싱앞에 앉아 있었다. 별로 일거리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바지 길이를 조금 줄이려고 하는데 얼마죠?”

내가 물었다.

“이천오백원이요”

서울의 삼분지 일쯤 되는 가격인 것 같다. 그녀가 작업대에 바지를 막 올려놓고 가위를 들었을 때였다. 가게의 샷시문이 조금 열리더니 문틈으로 한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그 여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담아주는 비닐빽을 옷수건가게 여인에게 내보이며 물었다.

“귀퉁이가 튿어졌는데 고쳐 줄 수 있어요?”

내 인식으로는 비닐쓰레기로 분류되어 버려질 물건이었다. 그걸 수선해 달라는 게 이상했다. 지금같은 풍요의 시대에 그런 걸 고쳐쓰나 하는 생각이었다. 옷 수선 가게 주인은 알았다고 하면서 그 비닐빽을 받아들고 내게 말했다.

“저 손님 비닐빽부터 먼저 수리해 드리려고 합니다.”

샷시문 밖에서 미안해 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 같았다. 미싱 위에 올라간 비닐빽 위로 바늘받침이 내려지고 순간 드르륵 박히면서 튼튼한 새 비닐빽이 탄생했다. 예전에 우리 부모들을 다들 저렇게 알뜰하게 살았다. 찬밥은 비벼먹고 구멍 난 양말을 기우고 또 기워 신게 했다. 얼마전 길가에 버려진 플래카드를 가지고 가서 크고 작은 빽을 만들어 선물했다는 할머니 얘기를 듣기도 했다. 옷수선 가게 여인이 그 비닐빽을 안팎으로 튼튼한지 확인하고 내주면서 동전을 받는 것 같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것 같은데 그 정도면 공짜로 해주는 게 인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그거 해주고 돈 받습니까?”

나는 몇 년을 무료로 변호를 해주고도 돈을 받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가난한 시장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야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 말에 옷수선을 하는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

“예 저는 아주 작은 일을 해 주고도 돈을 받습니다. 그게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예요. 내가 거저 해 줘 보세요. 사람들은 공짜로 받으려고 하지 않아요. 나중에 뭐라도 가져다 주려고 고심을 하죠. 동전 한 개라도 내가 받아야 부탁한 사람의 마음에 부담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돈을 받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재래시장에서 바지를 사고 좋아하는 부자의 검소함을 보았다. 그리고 옷 수선을 하는 여인에게서 노동의 당당함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버려질 비닐 빽을 수선하러 오는 또다른 알뜰함을 발견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사는 건 그런 마음들이 사회를 채색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