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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괜찮은 불륜

Joyfule 2024. 4. 29. 19:4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괜찮은 불륜  

 

변호사사무실을 오랫동안 하면서 수많은 사랑에 관한 사건을 경험했다. 그중에서 결혼이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 사건 하나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 언론인이 방송에 출연했다가 사회를 보던 여성 아나운서와 사랑에 빠졌다. 둘 다 유부남과 유부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은밀한 만남이 발각됐다. 남편은 여성 아나운서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리고 그 언론인을 상대로 정신적 고통을 배상하라는 위자료 소송을 제기했다. ​

어느 날 그 여성 아나운서가 유서를 써놓고 한강으로 갔다. 두 남자가 그 사실을 거의 동시에 알게 됐다. 그 여성은 진짜 다리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성격이었다. 여자가 죽음의 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 시각 두 남자의 행동이 달랐다. 남편은 불륜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아내의 이메일을 해킹하고 있었다. 언론인은 그 시간 한강을 경비하는 경찰에 자살 위험을 알리고 한강 다리마다 그녀를 찾아다녔다. 그가 쌓아온 모든 것은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없었다. 그녀를 살려내지 못하면 같이 죽어버릴 마음까지 들었다. 그의 간절함과 빠른 행동으로 한강에 몸을 던진 그녀가 구조가 됐다. 언론인인 그는 그녀를 감싸 안았다. 소송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해킹한 이메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런 남편의 행동을 보면서 여러 의문이 들었다. 그는 과연 아내를 사랑했을까. 처음은 사랑으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었다. 그들 부부는 차고 메마르고 인간냄새마저 사라져 버린 텅 빈 공허였다. 남편은 아내가 한강에 몸을 던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걸 막으려는 마음이 없었다. 불륜의 증거가 왜 먼저였을까? 나는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죽음보다 자기의 소유물을 빼앗긴 것 같은 데서 오는 증오가 더 강한 것이었을까. ​

세상에서는 불륜이라고 부르는 언론인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스캔들 때문에 회사에서 그의 직업적 생명은 치명타를 입었다. 그는 가족도 실망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걸 던져버리고 그녀를 구출했다. 목숨까지도 각오한 것 같았다. 법이 주는 벌을 받겠다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만하면 괜찮은 불륜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본 불륜을 저지른 대부분의 남자들은 비겁했다. 사랑이 아니라 일시적 애욕이나 동물적인 원초적 본능의 발동이었다. 법정에서 나는 담당 재판장에게 말했다.​

“진정한 사랑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 남자 두 사람 중에 누가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있을까요?”​

혼인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 사랑이 증발하면 법적인 부부관계는 몸통이 빠져나간 죽은 벌레의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었다. 남편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법적인 주장을 했는데 과연 그에게 고통이 존재했는지 의문이었다. 나는 그런 점들을 변론했다. 재판장이 반발했다.​

“이봐요 변호인 지금 무슨 말씀하는 겁니까? 두 사람은 혼인신고가 되어 있어요. 증거로 제출된 호적등본을 보세요. 그리고 불륜의 증거까지 제출됐어요. 달리 뭐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어쩌니 하는 법과 관련이 없는 헛소리를 하십니까?”​

나는 재판장을 보면서 절벽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사랑을 해 봤을까. 그는 사랑보다 판사라는 지위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장은 남편에게 돈을 주라는 판결을 기계적으로 선고했다.​

나는 이번에는 내가 봤던 그 불륜의 옷을 입은 사랑을 문학으로 재판을 받아보고 싶었다. 나는 그 사건을 소설로 썼다. 이름과 직업 그리고 배경만 약간 바꾸었을 뿐 사실 그대로였다. 소설을 문예지에 기고했다. 내가 쓴 소설이 우수작품으로 선정이 됐다. 문학계의 거장인 원로 평론가가 내 작품에 대한 평을 글로 발표했다. 주제나 문체 구성이 다 괜찮은데 너무 작위적으로 스토리를 몰아간 게 흠이라고 했다. 현실을 그대로 묘사했는데 평론가는 나를 작위적이라고 했다. 재판장의 눈이 광어같이 한쪽으로만 쏠렸더니 평론가 역시 진실한 사랑을 내가 꾸며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모두들 그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사랑에는 불순물이 섞인 가짜가 많았다. 위선적인 사랑도 흔하다. 사랑은 그 언론인 같이 자기를 던져버리는 게 아닐까. 나는 괜찮은 불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