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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두 교도관

Joyfule 2024. 5. 21. 23:02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두 교도관 

 

탈주범 신창원을 변호할 때였다. 어느 날 교도소에서 그가 이런 말을 내게 털어놓았다.​

“나를 잔인하게 학대한 교도관이 있었어요. 탈주를 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그 교도관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갔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무렵이었어요. 아파트 앞마당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숨어서 보니까 거기 내가 노리는 교도관이 있는 거예요. 다섯살쯤 되는 자기 아들을 안고 있는데 무척이나 예뻐하는 것 같아요.”​

그는 내게 감옥 안에서 잔인하게 당했던 얘기들을 하곤 했다. 빈방에 끌려가 무참하게 얻어맞기도 했다고 했다. 소년범으로 있을 때는 재래식 변소 똥통에 한여름에 머리를 박는 기합을 받기도 하고 수갑을 차고 철창에 매달려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이 악마로 되어갔다고 했다.​

복수심이 속에서 불탔을 것이다. 나는 그냥 무심히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한밤중에 그 교도관이 가족들과 잠자는 아파트 앞으로 갔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이상한 마음이 되는 거예요. 교도관 네 놈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구나 그리고 어차피 모든 일이 지나간 과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편지 한 장을 써서 아파트 문틈에 끼워두고 갔죠.” ​

그는 편지 문장을 기억에서 떠올려 내게 알려주었다.​

‘너를 평생 침대에 누워있게 만들려고 왔었다. 네가 아들을 예뻐하는 모습을 보고 너도 짐승이 아니고 인간이구나 하는 거를 알았다. 네 아들을 봐서 복수를 접는다. 재소자들도 인간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들도 누군가의 귀여운 아들이었다. 그들에게 조금만 인간 대접을 해 줘라. 그냥 간다. 만약 당신이 혼자였었다면 이렇게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무장한 강력계 형사 다섯명이 이겨내지 못하는 괴력이 있었다. 자칫하면 큰 사건이 터질뻔한 밤이었다. 나는 지금도 순간적으로 그의 마음을 바꾸어버린 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피비린내가 날 상황을 무엇인가가 막은 것이다.​

그는 차디찬 복수의 감정도 있었지만 따뜻한 연민과 미안함을 가진 다른 교도관 얘기도 했다. ​

“제가 탈주하는 바람에 징계처분을 받고 좌천된 9급 교도관이 있는데 정말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분은 징역형을 받기 시작하는 재소자들한테 징역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뭔가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처음부터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그걸 습관화해야지 출소 때가 되어서야 기술을 배우려고 하면 이미 늦는다는 거죠. 한번은 번역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재소자가 사전을 가지고 싶어 했어요. 면회 오는 가족이 없는 외톨이였죠. 그 교도관은 자기 돈으로 영어, 일어 사전을 사주고 틈틈이 지나간 영자신문과 책을 구해줬어요. 그 교도관은 자기는 단칸방 살림을 하면서도 안경이 깨져서 책을 못 보는 사람을 위해 안경을 사주기도 했어요. 푹푹찌는 여름이면 직원식당에서 얼음을 얻어 가득 통에 담아서 우리 목공반에 와서 나누어주기도 했죠. 겨울에는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추억의 떡뽁이를 같이 만들어먹기도 했죠. 그렇지만 그는 업무에는 깐깐한 사람이었어요. 부정하게 감방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를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고 챙겼어요. 적당히 넘어가는 게 없었죠. 제가 탈주하는 바람에 출세길이 막혔는데도 한마디 변명이 없더래요.”​

나는 그의 시각에서 본 두 명의 교도관의 모습을 보았다. 그를 잔인하게 대한 교도관에게도 내면의 원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범죄인들의 속성은 철저히 이기주의적이다. 몇 푼의 용돈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게 강도범이었다. 윤리도 도덕도 없고 본능만 남아있는 짐승들도 인간의 탈을 쓰고 세상에 많이 섞여 있다. 교도소는 그런 짐승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짐승들의 모습을 보면서 때려죽이고 싶은 분노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범죄인들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변호사 생활이 오래 될 수록 나도 그쪽으로 가고 있다.​

그런 짐승같은 존재들을 보면서도 천사 같은 모습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을 보면 신비롭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적인 사람들이다. 교도관중에는 한밤중에 감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도범과 식사를 집어넣는 공간을 통해 손을 마주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절박한 자에게 건네주는 마음의 냉수 한 그릇이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