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시편 23장’을 마지막으로 천 번째 공책에 썼다. 지난해부터 시도해 보았던 한가지 기도 방법이었다.
미국의 한 부자가 그리스의 한 수도원으로 갔었다. 그는 수도원의 수사에게 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하겠느냐고 물었다. 수사는 어떤 지혜의 말도 하지 않고 성경에 나와있는 ‘시편 23장’을 천 번 쓰라고 했다. 그는 그날부터 수도원의 빈 방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 글씨를 배우는 아이같이 ‘시편 23장’을 천 번 썼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인내했다. 그가 그걸 천 번 다 쓴 날 수사는 다시 천번을 쓰라고 했다. 그는 화가 났다. 순간순간이 금보다도 귀한 그의 입장이었다. 그는 인내하면서 다시 썼다. 그 부자는 수도원에서 나갈 때 세상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변해 있는 걸 느꼈다고 했다. 수행 방법이나 기도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 것 같다.
법대 동기고 사법연수원을 같이 나온 변호사가 있다. 한때 사무실도 나란히 있었다. 그는 이따금씩 제주도의 삼방산에 있는 절에 가서 복을 비는 삼천배의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밤새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면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어느순간 마음이 정화된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날 그에게 큰 물질적인 복이 쏟아졌다. 서울 근교의 노른자 땅의 소송에서 성공보수를 받게 된 것이다. 로또보다 몇 배의 더 엄청난 돈이 쏟아진 것이다. 그는 그 돈으로 여의도와 명동에 큰 빌딩을 샀다. 그리고 이름있는 금융회사를 사서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그의 기도의 덕일까 호기심이 일었다.
주말이면 같이 북한산을 오르던 분이 있었다. 학력이나 경력이 그렇게 좋은 편 같지는 않았다. 그는 전문대 체육학과를 나와서 수영강사 생활을 했다고 했다. 영화의 단역배우도 하고 국회의원 보좌관도 한 것 같았다. 여러 여자를 유혹한 걸 자랑같이 말하기도 했다. 옛날로 치면 한량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와 산길을 갈 때였다. 길옆에는 자그마한 돌탑이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땅에서 돌을 하나 들어 소원을 빌면서 쌓은 것이 탑이 된 것이다. 그가 공손하게 돌을 하나 들어서 그 탑 위에 얹어놓고 잠시 정성을 들였다. 그에게 어떤 간절한 염원이 있는 것 같았다. 몇 년 후 그가 서울에서 원로 유력 정치인을 꺽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는 총영사를 하는등 승승장구하는 모습이었다. 뉴스 화면에서 그를 볼 때마다 산길의 작은 탑에 돌을 올려놓고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그의 성공도 기도한 덕일까.
나는 오늘 아침 인공지능인 ‘쳇봇GPT’에게 반쯤은 호기심으로 기도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일초만에 인공지능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기도는 마음을 집중시키고 자신의 내면과 소통합니다. 기도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며 신의 도움과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채널이 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마음공부를 하고 전문 인터넷사이트도 운영하는 후배와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는 명상으로 자신의 우울증을 이겨냈다. 나는 그에게 마음을 어떻게 집중하느냐고 물었다. 나의 마음은 기도 중에도 항상 고무공 같이 이러저리 튀어 다녔다. 그는 순간순간 들숨 날숨의 호흡을 의식하라고 했다. 그러면 마음이 집중이 되고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예전에 명상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가진 소설가 정을병씨는 내게 순간순간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관조해 보라고 했다. 항상 정신이 이중 삼중으로 산만한 내게 그 방법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기도의 방법은 한가지가 아닌 것 같다. 만인이 만 가지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현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아침이면 옷을 단정히 입고 사서삼경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수행이자 기도였다. 영성가인 잔느귀용은 성경을 읽는 순간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게 기도라고 했다. 노동이 기도라고도 한다. 카프카는 자신의 글쓰기가 기도라고 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기도이기도 하고 아플 때 심한 고통을 감내하는 것도 기도라고 한다. 나는 매 순간이 기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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