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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17. 사랑은 환상이다

Joyfule 2021. 7. 16. 07:19
    
     
     
 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이재현  
17. 사랑은 환상이다
우리가 살면서 제일 가슴 아픈 일중의 하나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이다. 
이건 내가 원한다고 해서 앓는 것도 아니고 
원치 않는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찾아와 사람을 죽여 준다. 
세상에서 가장 잇속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이 빌어먹을 사랑인데 
이건 냄새도 안 나고 보이지도 않으며 색깔도 없어서 
언제 어디서 중독될지 모르는 불가사의한 추상명사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사랑을 정의하기를 성욕의 고상한 표현이라고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하여간 UFO같이 봤다는 사람은 약간 맛이 간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못 본 사람은 좀 보고 싶어 애를 태우는 이 사랑이 과연 있기는 있는 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사랑은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을 빙빙 돌리느냐구? 다 이유가 있다. 
자고로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이 그리워서 손톱을 깨무는 날이 많다. 
보고 싶어서 자꾸 전화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집 앞에 가 볼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이 그리워하는 상대방에 대해 
당신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미지와 그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데 있다. 
당신은 누가 뭐래도 그 남자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뭘 먹을 때 후루룩 쩝쩝대지도 않으며 성격도 마냥 좋기만 한 
그런 사람으로 믿고 있겠지만 실제의 그 사람은 
더러는 콧구멍도 후비고 발가락에 무좀약을 바르며 
잇새에 고춧가루를 끼고 다니는 그런 남자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연인을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고 
그런 인물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비약시키면 우리는 모두 사랑에 빠졌을 때 
현실적으로는 있지도 않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듣기에는 좀 황당한 얘기 같지만 사실이다. 
당신이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다고 치자.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이제는 만났다 헤어지는 일 없이 
한이불 덮고 살게 되어 좋기만 했는데 남편이라는 사내가 알고보니 
비린내 나는 생선을 엄청나게 좋아해 끼니 때마다 생선가시를 젓가락으로 파고 있고 
잠자리에서는 또 코를 얼마나 고는지 돌아버릴 지경이라면, 
어디 가서  당신이 그리워하던 그 남자를  찾을 것인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역설이 성립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아라.
만났다가 헤어져야만 우리는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며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은 할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다. 
신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의 숭배 대상이 된다. 
눈에 보이는 신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이며 맞아 죽어야 할 가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면 보고 싶고 만나면 시들하고~ 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가슴속에 있을 뿐 불행하게도 현실에는 없는 것이다. 
모든 예술 속에서 사랑이 비극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사랑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들여다보며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영화 속에서는 가끔 멋진 사랑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도 하는데 
그들이 결혼해서 원수처럼 사는 꼴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까지 보여주면 영화는 개판이 되고 
우리가  사는 꼴이나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