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1. - 스콧 피츠 제랄드.
제1장
내가 아직 어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쉽게 남의 말에 곧잘 화를 내던 시절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해 주셨는데,
그 후로 나는 그 충고를 마음속으로 항상 되새기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남의 잘잘못을 따질 때는 언제든지 이 세상 사람들이
너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하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말없는 가운데서도 서로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그 충고 속에는 보다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충고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판단을 될 수 있으면 뒤로 미루는 태도를 취하곤 했다.
그 습성으로 인해 나에게는 이상한 기질이 가끔 나타났고
그것 때문에 성가시게 치근덕거리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나와 같은 정상적인 사람이 나타나면
금방 눈치채고 가까이 오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대학에서 나는 억울하게도 책략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거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은밀한 비애를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은밀한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확실한 근거로 은밀한 이야기가 드러나려 할 때면
나는 잠을 자는 척하거나, 무엇에 몰두하는 척하거나, 또는 적의에 찬 경박한 짓을 하곤 했다.
사실 젊은이들의 은밀한 이야기는,
적어도 그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투도 대개 남의 말을 표절하게 마련이며,
피할 수 없는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인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어떤 의견 표명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
상대에게 무한한 희망을 줄 때도 있는 법이다.
나는 아직도 나의 아버지께서 점잖게 말씀하셨고
나 역시 점잖게 되풀이한 예의범절에 대한 기본적 의식을,
저마다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혹시 잊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무언가를 손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염려하곤 한다.
이처럼 나의 너그러움을 한껏 과시하고 난 후에야
나는 너그러움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은 단단한 바위 위에 혹은 질퍽한 늪에 그 근거를 둘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한계만 넘기게 되면 나는 그 행위가
어떤 곳을 기반으로 해서 겉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작년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똑같은 차림을 하고
일종의 도덕적인 자세를 영원히 취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다시 말해 무슨 특권이라도 지닌 듯이 사람의 마음속을 힐끔힐끔 들여다보는,
야단스럽게 나서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이 책의 주인공인 개츠비만은 앞에서 말한 나의 반발에서 제외된 사람이다.
개츠비는 바로 내가 노골적으로 경멸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개성이라는 것이 일종의 멋진 몸가짐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개츠비에게는 1만 마일 밖의 지진을 측정해 내는
어떤 복잡한 기계와도 관련되어 있는 것 같은
현란한 개성과 희망찬 앞날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 같은 것이 있었다.
이 감수성은 저 '창의적인 기질'아래에 위엄을 떨치는 그 허약한 감수성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희망을 갖게 하는 천부적인 재능이요,
내가 지금껏 그 누구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할 낭만적 감수성이었다.
결국 개츠비가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내가 사람들의 대단치 않은 슬픔이나 숨막힐 정도로 우쭐거리는 모습에
잠시나마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은 개츠비를 통해
그의 꿈이었던 자리에 더러운 먼지를 떠돌게 한 것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이 중서부의 도시에서 3대에 걸쳐 꽤 이름이 알려진 유지로 부유하게 살아 왔다.
캐러웨이 가는 뛰어난 가문이며, 우리는 부클류 공작의 자손이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로 나의 가계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1851년에 이 곳에 이주하셨고,
남북 전쟁 때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대신 내보내고,
철물 도매상을 시작하셨던 나의 증조부이시다.
지금은 아버지가 그 사업을 이어받아 경영하고 계시다.
나는 그 증조부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사람들은 내가 그분을 몹시 닮았다고 한다.
그것은 특히 아버지 사무실에 걸려 있는,
어지간히 비정해 보이는 그분의 초상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1915년에 예일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것은 아버지께서 그 학교를 졸업하신 지 25년째 되던 해의 일이었다.
얼마 후에 나는 1차 세계 대전이라는, 튜튼족의 때늦은 이동 작업에 참가했다.
그 때 나는 미국인의 유럽 역습을 마음껏 즐겼기 때문에
집에 와서도 한동안 들뜬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미국의 중서부 지방이 이제는 세계의 활기찬 중심지가 아니라 우주의 초라한 변두리같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동부로 가서 증권업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증권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 정도는 더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집안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은 마치 나를 위해 무슨
대학 진학의 예비 고교를 골라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의논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우 엄숙하고 망설이는 표정으로,
"글세, 괜찮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1년간 나에게 생활비를 대주기로 하셨다.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끌도 1922년 봄이 되어서야 나는 아주 살 생각으로 동부로 옮겨왔다.
동부로 온 후 내가 부딪친 첫 번째 문제는 시내에 방을 구하는 것이었다.
따뜻한 계절이었고, 넓은 잔디밭과 푸른 나무들이 있는 시골을 막 떠나온 터라
사무실의 한 젊은 동료가 기차 통근 거리의 마을에
셋집을 얻어 같이 생활하자고 말해 왔을 때 그것은 멋진 생각처럼 들렸다.
그는 곧 그런 집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월세 80달러짜리로 비바람에 낡은 싸구려 방갈로 집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그는 회사로부터 워싱턴으로의 전근 명령을 받아 나는 혼자 가게 되었다.
나는 그 때 개 한 마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 개가 달아나기 전까지 적어도 2, 3일 동안은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낡은 차 한 대와 핀란드 인 여자도 함께 있었다.
그 여자는 침대를 정돈하고 아침밥을 지어 주었는데,
요리용 전기 난로위로 몸을 구부리고는 알 수 없는 혼잣말로 핀란드 속담을 중얼거리곤 했다.
하루 이틀은 무척 외로웠는데,
어느 날 아침 길에서 나보다 늦게 이사 온 어떤 사람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이 웨스트에그 마을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그는 힘없이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 갈 길을 갔는데, 그 때부터 나는 외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안내자요 개척자요 맨 처음 이 곳에 초기 정착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이웃간에 보일 수 있는 관심을 나타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햇빛과 그리고 고속 촬영 영화에서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쑥쑥 크는 나뭇잎들을 보고 인생은 여름과 함께 다시 시작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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