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율법이 끼어든 목적이 무엇인가?

Joyfule 2024. 2. 7. 19:37


   율법이 끼어든 목적이 무엇인가?(롬5:20-21)



어떤 목사가 성령세례를 받아야 능력을 얻는다고 떠듭니다.

아뇨 성령세례(고전2:13)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한 절대적인 요건이기 때문에 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아서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기 위해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는 겁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그 안에 있으면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어 거듭남과

의롭게 됨과 거룩함과 영광으로 영광에 나아감이 다 해결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떤 목사들처럼 예수 믿는 우리들은 세상과 달리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등의 설교를 하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로 믿는 의인은 믿음에 의해 살아지기 때문입니다.

 

Q. 율법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율법이 들어 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나니”(롬5:20)

 

A. 율법은 죄를 죄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이 가입했다는 말은 옆에 살짝 끼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개념 속에 죄목은 없었으나 죄는 아담부터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율법이 끼어 들었다는 말입니다.

왜? 인간의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차선이 없으면 법규 위반을

모르듯 율법이 개입하므로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쳐나는

구원이 일어납니다. 은혜가 넘친다는 뜻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나니

하는 말씀처럼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발견이 된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로 수용하고 생명 싸개로 싸안아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없으면 죄 사함의 은혜가 은혜로 되지 않는 겁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5:21)

 

죄는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고 은혜는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합니다.

이게 바로 영생이지요. 바로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 표상

즉 서로 대칭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는

바울에겐 이런 확신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가 아무리 넘쳐도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하고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은혜에 의한

의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왕 노릇 하게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할 수 있도록 넘치는 복이 복음 안에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오기만하라 충분히 구원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을 두고 저렇게 '더러운 죄인은

구원을 못 받을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요 폭삭 망한 죄인일수록 구원을 받기가 더 좋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처절하게 느껴야 합니다.

자신이  내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항복할 때에

그때 죄의 처리는 너무도 간단하잖아요. 바울은 이 로마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을 아주 간단하게 처리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하게 되면 그리고 나서 죄를

다시 짓지 않겠나 염려가 되세요?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 은혜가 크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어두움에 있었던 옛날이 너무 싫어지므로

다시 어두움으로 건너가질 않습니다. 깨끗한 옷 입은 사람은

더러운 옷을 다시는 안 입고 좋은 음식 먹어보면 나쁜 음식 안 먹어요.

그러므로 복음으로 인해 죄를 간단하게 처리하도록 하세요.

사람은 본성적인 죄가 있고 구조적인 죄가 있습니다.

본성적인 죄는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죄입니다.

반면에 구조적인 죄는 예를 들면 집값이나

땅값이나 이런 것이 너무 비싸 나는 정직하게 살고 싶으나

집을 살려니 할 수 없이 투기라도 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아니면 나는 세금 다 내고 싶으나 현재 조세 제도 때문에

세금 많이 내는 사람 손해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안하는데 나만 그러면

손해다. 그러니 A장부 B장부 만들어야겠구나. 이게 구조적인 죕니다.

그래서 요즘 정치권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회는 지금 구조적인 죄악이 가득합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이 구조적인 죄를 얼마나 없애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금융사기를 치고 정치 로비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된다는 생각,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자녀들 학교 때문에 위장 전입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이 걸 다 막느냐 말입니다. 도저히 법이 따를 수가 없어요.

물론 우리 사회제도가 밝아지고 선진국이 되어 갈수록 이런 구조적인 죄악이 적어지고 사회 정화가 되겠지요. 

평등사회가 되겠지요.

우리가 주일을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 구조적인 악을 줄이는 역할은 해요.

이웃에게 저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구나 보여주는 거지요.

그런데 인간은 자기 본성적으로 욕심에 의해 살면서 자기를 변명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외식이며 죄가 안으로 파고들어 묘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 로마서 5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바로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칭입니다.

대표 대 대표로서 죄와 의, 사망과 생명을 서로 대칭시켜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장은 뭐냐?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 안에 넘어왔다면

넘어온 다음에 새로 만났다는 그리스도와 나는 어떤 관계를 맺느냐

그 대답이 바로 6장입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연결되고 또 연결이 되어서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빌드업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