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은혜가 넘친다고 그 자리에 머물 수가 없다

Joyfule 2024. 2. 9. 23:42


   은혜가 넘친다고 그 자리에 머물 수가 없다(롬6:1-2)



회개를 유달리 강조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거기다가 회개의 수준에 대해서도 왈가왈부를 합니다.

율법에 의해 죄가 발각이 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니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면서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고 나팔을 크게  붑니다.

그래서 예배를 할 때마다 죄가 있는 사람은 회개를 하라고 강권합니다.

과연 한 주간 지은 죄를 위해 회개하는 사람이 성령과 진리 안에서 참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까요안 되죠 그 자리엔 성령이 역사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성령이 내주 역사하지 않으면 진리를 알지 못해 참 예배를 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 세례(침례)를 받으므로

죄인이었던 나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므로 그 부활에 연합이 되므로 마침내  새 생명으로 사는 의인이 됩니다.

이를 두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노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십자가 반대편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지은 죄를

회개한답시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 성령은 외면하시지만 사람이 이를

수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깨끗하게 하셨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이는 천주교의 고해성사와 다를 바가 없고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고는 다시 더러운 곳에 가서 나 뒹구는 꼴과 같이 되고 맙니다.

 

Q. 은혜가 넘치는 반복적인 회개가 괜찮은가요?

그런 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A. 아니요 은혜만 누리고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5장 20절에 보면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하십니다.

아담 안에 있는 죄인의 계통을 따라 내려오던 사람들에게

율법이 옆에서 살짝 끼어들어서 그 사람들을 왕창 죄 되게 만들었습니다.

율법이 죄를 죄가 되도록 만들어 버리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풍성함이 엄청 크더라 이 말입니다다들 이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재미를 본다고 해서 우리가 항상 죄에 거하겠느냐

죄가 풍성하면 은혜도 풍성해지는데 그렇게 하려고 죄에 거하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이냐 과연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말입니다.

무좀 걸린 발 긁어대듯이 하고박쥐처럼 이쪽엔 쥐저쪽은 새 하며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사실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따라 순종하는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요한이

말하는 죄 사함의 물세례만 받아 죄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죄 사함의 은혜만 누리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2)

그럴 수 없다고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입니다.

유다서에 보면 성령이 없는 자는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인이 경건하게 살고자

하여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살려고 하면 이를 보고 조롱합니다.(18)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웃기지 마라 하고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없는 사람은 죄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사망이 삯으로

주어지므로 철저하게 외식을 하는 연기력을 발휘할 뿐 열매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지 않느냐 옛 신분에 대해서 죽었지 않느냐

그리스도 안에서 신분이 바뀐 우리가 어떻게 죄에게 돌아가서 다시 그 가운데 살겠느냐

이제 우리가 빛의 자녀들인데 어찌 다시 어둠에서 살 수 있겠느냐 이렇게 나옵니다.

물론 빛 가운데 있는 빛의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육신의 욕구를 따라 빛 가운데서

이탈하여 어둠 속에서 헤매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과 사귐이 끊어지면 죽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금방 자백하고 제 자리로 되돌아 오므로 그 피로 죄 사함과

더불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함을 받아(요일1:9) 다시 주 안에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교제를 회복하는 반복적인 회개(자백)는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대속의 공로를 따르지 않고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회개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 하고 십자가 앞 그 자리에 버티면

그 자리는 의도 거룩도 영광도 주어지지 않고 빛과 생명과 사랑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처럼 표적을 좇게 되고 사망의 종이 되어

죽음의 비즈니스 곧 육체의 아름다움을 꾸미고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으로 귀순하여 주의 부활과 생명과 연합이 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어 의와 평강과 희락의 생명 비지니스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