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역사는 이즘을 만들어내고, 이즘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창, 이즘에 관한 모든 것 ; ism [ízm] n. 주의, 학설, 이즘(doctrine)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해석하고 바꾸려 노력해 왔다. 세계를 향한 인간 태도와 시도가 응축된 것이 이즘이다. 그런 점에서 이즘 역사를 좇는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변화시키려 분투했는지 그 자취를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간 역사에 새겨진 모든 이즘을 다루고 있다. 산업혁명 직후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할 목적에서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인간 사이 불평등 뿌리를 ‘국가 자체’에서 찾으면서 18세기 모습을 드러낸 아나키즘, 영국 대공황을 겪으면서 빈곤이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장한 페이비어니즘, 동유럽과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한 1990년 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비판하면서 등장한 공동체주의 등 특정 이즘이 어떤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탄생했고, 그 이즘이 어떤 이즘과 사상가 영향을 받았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 |
[ 출판사 서평 더보기 ] |
인간의 역사는 이즘을 만들어내고, 이즘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창, 이즘에 관한 모든 것 ; ism [ízm] n. 주의, 학설, 이즘(doctrine)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해석하고 바꾸려 노력해 왔다. 세계를 향한 인간 태도와 시도가 응축된 것이 이즘이다. 그런 점에서 이즘 역사를 좇는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변화시키려 분투했는지 그 자취를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간 역사에 새겨진 모든 이즘을 다루고 있다. 산업혁명 직후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할 목적에서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인간 사이 불평등 뿌리를 ‘국가 자체’에서 찾으면서 18세기 모습을 드러낸 아나키즘, 영국 대공황을 겪으면서 빈곤이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장한 페이비어니즘, 동유럽과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한 1990년 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비판하면서 등장한 공동체주의 등 특정 이즘이 어떤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탄생했고, 그 이즘이 어떤 이즘과 사상가 영향을 받았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모든 이즘을 다룬 책 이전에도 이즘을 다룬 책이 없진 않았지만, 모든 이즘을 다룬 건 이 책이 처음이다. 철학사상이면 철학사상, 정치사상이면 정치사상 하는 식으로 분야별로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도 플라톤이면 플라톤, 마키아벨리면 마키아벨리 하는 식으로 각 전공자들 글을 모아놓은 앤솔로지 형태가 많아 통일적인 관점에서 모든 이즘을 개괄하긴 어려웠다. ‘이즘’ 하면 흔히 철학이나 정치사상 같은 것만 떠올리지만, 이즘은 경제․과학․예술․종교 등 거의 모든 지적 영역에 존재한다. ‘철학․경제 편’에 이어, ‘사회․문화․종교 편’을 곧 출간하려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저자의 ‘이즘’이 투영된 ‘이즘의 개념사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최소수의 최소 고통”으로 사전 형식을 취하면서도 이 책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저자의 주관이 많이 투영돼서다. 글쓰기 중립성을 주장하는 여느 필자들과 달리, 저자 박민영은 “객관적이라는 미명 하에 저자 관점이 투영되지 않은 책은 오히려 ‘생기 없는 지식’을 전달한다.”고 본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은 단순한 이즘 풀이가 아닌 지금 시대와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게 유도하는 구실도 한다. 저자는 공리주의 대표 슬로건인 “최대 다수의 최대 쾌락”을 “최소수의 최소 고통”으로 바꾸어야 하며, 마르크스 예언은 빗나갔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체제 자체가 정의롭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큰 유산을 남겼노라 평한다. 또한 공화주의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 ‘거대한 사회 규모 그 자체’를 가리킨다. “오늘날의 사회는 너무 크고 복잡해서 시민들이 사회적 문제나 피선거인에 대해 알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이루어진 정치 참여는 피상적이고 무책임할 수밖에 없다.”는 대목에선 민주주의 제도에 회의하는 저자도 보인다. 그뿐인가. 신디칼리즘에선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대의를 상실한 오늘날 노조를 슬쩍 꼬집고, 시온주의에서는 자신들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홀로코스트 희생자’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유대인들을 비판한다.
유대인이 역사적으로 희생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반인륜적 행태를 합리화시켜줄 수는 없다.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게 행하는 강제 이주, 추방, 전쟁, 학살, 경제적 착취, 인종차별, 무단 점거는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행했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온주의자들은 홀로코스트 피해자 이미지를 이용해 비판적인 여론을 모두 반유대주의로 매도하려 한다. 오늘날 유대인이 누리는 세계적인 지위와 권력은 시온주의자들이 믿는 메시아주의와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종교적 고난의 대가나 예언의 실현, 혹은 타고난 민족성의 발현이 아니라, 우연한 역사의 산물이고 미국에 편승한 정치적 성공일 뿐이다. (본문 212쪽)
제국주의를 다룬 부분은 다른 이즘보다 더 흥미롭다.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종 단계를 본 레닌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종말을 내다보아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가 체제 연장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아니라 첫 번째 카드였다. 서유럽이라는 작은 세계에 국한되어 있던 자본주의는 다른 지역으로 지평을 확장시킴으로써, 즉 제국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체제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내놓은 두 번째 카드는 케인즈주의였다. 케인즈주의는 세계 산업자본주의 경제가 가진 불안과 위기의 짐을 정부에게 떠넘겼다. 각국의 경제적 독립성이 유지되었던 당시, 케인즈주의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점증하는 자유무역과 자본의 교류는 케인즈주의를 무력화시키고, 다시 자본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때 제기된 것이 금융자본주의였다.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 위기를 금융시장 활성화를 통해 가상의 부를 창출함으로써 돌파하고자 했다. 그것이 현재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카드가 될 공산이 크다. (본문 251쪽)
모든 이즘을 다루었다는 것 외에 이 책의 별난 점은 감히(?) 이즘 연표와 일람도 정리해 놓았다는 것이다. 이즘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할 분들에겐 요긴한 정보이리라.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자의 역작 전작 《즐거움의 가치사전》을 쓰는 데 저자는 꼬박 1년을 보냈다. 이 책을 쓰는 데는 그 이상이 걸렸다. 이 책이 마무될 수 있었던 힘은 전작의 서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힘에 부치는 작업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할 수 없는’ 작업 성격 때문이었다. 그것이 특정 분야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나의 욕심에 불을 붙였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전문가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특정 분야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전문가는 결코 사회 전체를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분업화된 사회일수록 오히려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자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