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19. - 쌩 떽쥐뻬리
[7] 사막 한 가운데에
달도 이미 없다.
별들이 있는 데까지 부풀어 오른 시커먼 타르.
나는 불빛 하나 볼 수 없을 것이고, 목표물 하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무전도 없으므로 나일강에 이르기 전까지는 사람이 보내는 신호도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내 나침반과 "스뻬리" 이외에는 살펴볼 생각을 않는다.
계기의 어둠침침한 눈금판 위에서
완만한 호흡하고 있는 가는 라듐선 이외는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다.
쁘레보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가만히 중심의 변화를 수정한다.
나는 2천 미터로 상승한다.
그 높이이면 바람이 알맞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가끔가다가 나는 전구를 켜본다.
계기 중에서 야광 장치가 없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어둠 속에 깊이 갇혀 있다.
별들과 똑같은 광물성의 빛, 똑같이 쓸데없고
은연한 빛을 내며, 똑같은 언어로 말하는 내 작은 성좌 속에서.
나도 천문학자들처럼 하늘의 구조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나도 또한 근면하고 청순하다고 느낀다.
외계에서는 모든 것이 꺼져 버렸다.
잘 견디어내던 쁘레보는 잠 속에 빠졌고, 그래서 나는 더욱 고독을 느낀다.
엔진의 부드러운 붕붕거림이 있고, 내 앞 계기반 위에는 이 모든 조용한 별들이 있다.
이럴 때면 나는 명상에 잠긴다.
우리는 이제 달의 혜택도 없고, 무전 연락도 없다.
우리가 나일강의 번쩍이는 물줄기에 머리를 들이밀 때까지에는
우리를 세계와 연결지어 줄 어떠한 가느다란 끄나풀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의 밖에 있으며,
우리의 엔진만이 타르 속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지속시켜 준다.
우리는 동화에 나오는 거대한 어둠의 골짜기, 시련의 골짜기를 가로지르고 있다.
여기서는 구조란 전혀 없다.
여기서는 과오에 대한 사면도 없다.
우리는 신의 자유의사에 맡겨져 있다.
배전반의 접촉점에서 광선이 새어나온다.
나는 쁘레보를 깨워 그것을 끄라고 한다.
쁘레보는 어둠 속에서 곰 모양 움직이더니 재채기를 하고 앞으로 나온다.
그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손수건과 검은 종이를 결합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나를 방해하던 그 광선은 사라졌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균열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계기 바늘의 라듐의 창백하고도 아득한 빛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것은 어두운 밤의 유흥장의 빛이었지 별의 빛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빛은 내 눈은 부시게 하고, 다른 빛들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비행 3시간. 강렬한 것 같은 빛이 오른쪽에서 솟아 오른다.나는 지켜본다.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기다란 비행기가 지나간 흔적 같은 것이 날개 끝의 등에 걸린다.
그것은 환해졌다 꺼졌다 하는 단속적인 빛이었다.
나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 구름이 내 램프에 반사되는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들에 다가온 지금 나는 맑게 갠 하늘을 원했었는데.
날개가 무리 아래서 반짝인다.
빛은 자리를 잡고, 고정되고, 번쩍이며, 또 날개 끝 쪽에서 장미빛 꽃다발을 이룬다.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를 뒤흔든다.
나는 두께를 모를 두터운 구름 덩이 한가운데를 날고 있는 것이다.
나는 2천 5백 미터까지 올라가 본다.
그러나 구름 위로 솟아 나지 못한다.
1천 미터로 다시 내려간다.
꽃다발은 여전히 있어, 꼼짝도 않고 점점 더 번쩍인다.
그래, 좋다. 할 수 없지. 내게는 딴 생각이 있다.
빠져 나갈 때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 불길한 여인숙의 등불 같은 빛이 싫다.
나는 어림해 본다.
"여기서는 야간 기체가 흔들린다. 이건 정상이다.
그런데 하늘이 맑고, 높이 날아 왔는데도 끊임없이 동요가 있었다.
바람이 조금도 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시속 3백 킬로 미터를 초과했던 셈인가."
결국 나는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구름에서 빠져 나가면 어떻게든 위치를 알아내도록 해야겠다.
이윽고 구름에서 빠져 나왔다. 그 꽃다발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예고다. 나는 앞을 주시한다.
그러자 일순간 하늘과 다음 구름 덩이 사이로 좁은 골짜기가 보인다.
꽃다발이 어느새 되살아났다.
나는 이제 이 끈끈이에서 단 몇 초 동안밖에는 벗어나지 못할 모양이다.
3시간 반 동안을 비행한 후에 이 끈끈이가 나를 불안에 몰아넣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한대로 전진하고 있다면 나일강이 가까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으면 구름의 회랑 너머로 강을 볼 수 있겠지만 그러나 회랑은 그리 많지가 않다.
나는 감히 더 내려 가지 못한다.
만약 내가 생각했던 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고지 상공을 날고 있을 것이니까.
나는 여전히 다른 불안은 느끼지 않았으나 다만 시간을 허비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침착성에 4시간 50분의 비행이라는 한계를 긋는다.
이만한 시간이 지나면 설령 무풍 속을 날았다 하더라도 (무풍이란 있을 수도 없지만)
나는 벌써 나일 계곡을 넘어섰을 것이다.
구름의 가장자리에 이르자
그 꽃다발은 점점 더 자주 명멸하는 빛을 내더니 갑자기 꺼져 버린다.
나는 밤의 악마들과 하는 이런 암호 교신이 싫다.
파란 별 하나가 내 앞에 등대처럼 빛나며 나타난다.
별일까, 등대일까? 나는 이 불가사의한 빛, 마왕의 별,
이 위험한 초대도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쁘레보가 잠이 깨어 계기반에 점화한다.
나는 그와 그의 램프를 모두 밀어 젖힌다.
나는 방금 두 구름떼 사이의 단층에 접근한 것을 이용해서 아래를 관찰하려고 애썼다.
쁘레보는 다시 잠이 든다.
그러나 관찰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4시간 5분의 비행. 쁘레보가 내곁에 와서 않는다.
"카이로에 도착할 시간인데...."
"누가 아니래...."
"저건 별인가, 등대인가?"
나는 아까부터 엔진을 약간 죄었었는데, 그것이 아마 쁘레보를 깨운 모양이다.
그는 비행소리의 모든 변화에 민감하다.
나는 구름더미 아래로 빠져 나가기 위해 천천히 하강을 시작한다.
방금 나는 지도를 살펴 보았다.
어쨌든 나는 표고 제로에 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강하를 계속하며 정북으로 진로를 바꾼다.
그러면 비행기의 창으로 도시의 불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아마 그 도시를 지나쳤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은 왼쪽에 나타날 것이다.
지금 나는 적운 밑을 날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왼편으로 더 낮게 내려가고 있는 다른 구름을 스치며 날고 있다.
그 그물에 걸려 들지 않으려고 기수를 북북동으로 향한다.
이 구름은 분명히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내게서 지평선을 모두 가려버린다.
이제는 감히 더 고도를 낮출 수가 없다.
나의 고도계는 4백 미터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 기압을 알 도리가 없다.
쁘레보가 몸을 구부린다. 나는 그에게 소리친다.
"바다로 빠져나가 바다에 내려가 보세. 들이받지는 않게."
이미 항로를 벗어나 바다로 들어서지 않았다고 증명할 아무것도 없었다.
이 구름 밑의 어둠은 전혀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나는 창에 몸을 바짝 붙인다. 아래를 확인해 보려고 시도한다.
불빛이 나 표적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나는 재를 파헤치는 사람이다.
나는 아궁이 밑바닥에서 생명의 불씨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과 같다.
"등대다!"
우리 둘은 동시에 이 명멸하는 함정을 보았다.
얼마나 미친 짓인가! 이 유령 등대, 이 밤의 속임 꿈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더란 말인가?
왜냐하면 쁘레보와 내가 날개 밑 3백 미터쯤에서
그것을 다시 찾아내려고 몸을 숙인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앗!"
나는 다른 아무 말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우리의 세계를 뿌리째 뒤흔드는
어마아마한 폭음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갓 같다.
시속 2백 70킬로 미터로 우리는 땅을 들이받았던 것이다.
그 뒤에 온 1초의 백분의 1동안 우리는 우리 둘은 한 덩어리로 뭉쳐버릴
폭발의 커다란 진홍빛 별밖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쁘레보도 나도 조그만 감동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 속에 엉뚱한 기다림,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그 속에서 사라져 버릴,
그 찬란한 별에 대한 기다림밖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진홍빛 별은 끝내 없었다.
있었던 것은, 유리창을 뜯어 내고, 철판을 1백 미터나 날려보내고,
그 요란한 울림으로 우리 창자 속까지 꽉 채우고
조종실을 쑥밭으로 만든 일종의 지진 같은 것이었다.
기체는 멀리서 던져 단단한 나무에 꽂힌 칼처럼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분노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1초, 2초....
기체는 여전히 떨고 있었고, 나는 비행기가 간직한 에너지가
그것을 유탄처럼 폭발시키기를 무서운 초조감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지하의 진동은 결정적인 분화에 이르지 않은 채 계속되었다.
나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진동도, 이 분노도, 이 끝없는 유예도 알 수가 없었다....
5초, 6초.... 그러자 갑자기 우리는 회전하는 듯한 느낌을,
비행기 창으로 우리 담배를 내동댕이치고, 오른쪽 날개를 박살낸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어붙은 듯한 부동 외에는 아무것도,
나는 쁘레보에게 소리쳤다.
"뛰어 내려, 빨리!"
동시에 그도 소리쳤다.
"불이!"
순간, 우리는 이미 떨어져나간 창으로 곧두박질했었다.
우리는 20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나는 쁘레보에게 말했다.
"다친 덴 없나?"
그가 대답했다.
"다친 덴 없어요!"
그러나 그는 무릎팍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에게 말했다.
"만져보게. 움직여보구. 정말 다친 데가 없다고 내게 맹세해봐...."
그러나 그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녜요. 구조 펌프가...."
나는 그가 머리에서 배꼽까지 갈라지면서 별안간 쓰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똑바로 뜬 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구조 펌프였어...."
나는 생각했다. 미쳤구나, 이제 춤이라도 출 거다.
그런데 그는 화재를 면한 기체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나를 보면서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구조 펌프가 무릎에 걸렸을 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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