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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4. - 쌩 떽쥐뻬리

Joyfule 2011. 1. 25. 00:08


인간의 대지4. - 쌩 떽쥐뻬리

[2] 동료들

(1)
메르모즈도 그 한 사람이지만, 몇 명 동료들이 귀순하지 않은 사하라 사막을 거쳐

카사블랑카에서 다까르 사이의 프랑스 항공로를 창설했다.

당시의 엔진은 별로 저항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고장이 메르모즈를 모르인들에게 붙잡히게 했다.

그들은 메르모즈를 학살하기를 주저하고 15일 동안 포로로 가둬두었다가 그를 되팔았다.

그래서 메르모즈는 다시 같은 영토 위를 나는 우편비행에 복귀했다.

남아메리카 항로가 개설되자, 항상 선두에서는

메르모즈는 부에노스아이레레스와 산띠아고 구간의 항공로 조사를 위임받았다.

즉, 사하라 사막 위에 다리를 놓은 뒤를 이어 안데스 산맥 위에 다시 다리를 놓게 된 셈이다.

그에게는 상승 한도 5천 2백 미터의 비행기가 주어졌다.

그러나 안데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은 7천 미터나 솟아 있었다.

그런데도 메르모즈는 통로를 찾기 위해 이륙했다.

사막을 정복한 후에 메르모즈는 산에 도전한 것이다.

산이라지만 그쪽 고봉들은 바람이 불면 눈보라의 띠를 펼쳐놓고,

폭풍에 앞서 온 천지를 창백하게 하고, 비행기를 아주 심하게 동요시키는 역류,

이런 것들을 바위의 절벽 사이에서 만나게 되면

조종사는 일종의 백병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메르모즈는 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러한 굴레로부터 살아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채, 싸움에 뛰어들었다.

메르모즈는 남들을 위해 "해보는" 것이었다.

마침내 어느날 이렇게 "해보다"가 그는 자신이 안데스 산의 포로가 된 것을 알았다.

4천 미터 높이의 절벽에 둘러싸인 곳에 불시착한 그와 기관사는

이틀 동안이나 그곳에서 탈출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빠져 나갈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운명을 걸고 비행기를 허공으로 내몰았다.

비행기는 울퉁불퉁한 땅 위를 절벽 끝까지 튀어 올랐고, 그들은 거기서 굴러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비행기는 필요한 속력을 내게 되어 다시 조종사의 말을 듣게 됐다.

메르모즈는 산봉우리를 날아 그곳에 도달했으나

밤 사이에 얼어 터진 모든 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 때문에 비행 7분만에 다시

엔진이 정지됐으나 마치 약속의 땅처럼 그들의 눈 아래 칠레의 평원을 보았다.

이튿날 메르모즈는 또다시 시작했다.

안데스 산맥이 샅샅이 탐험되고, 횡단 기술이 잘 조정되자

메르모즈는 이 구간을 동료인 기요메에게 맡기고 자기는 밤의 탐험에 나섰다.

착륙 비행장에 조명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캄캄한 밤이면 착륙장에는 초라한 가솔린 등이 3개 메르모즈 앞에 켜져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것을 해내어 야간비행의 길을 열어 놓았다.

밤을 완전히 길들이고 나자 메르모즈는 대양을 시험했다.

이리하여 1931년부터 처음으로 뚤루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우편물이 나흘만에 운반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메르모즈는 남대서양 한복판의 풍랑 높은 바다 위에서 가솔린이 떨어졌다.
지나가던 기선이 그와 우편물과 승무원을 구출해 주었다.

이와 같이 메르모즈는 사막과 밤과 바다를 개척했다.

그는 몇 번이나 모래 속에, 산 속에, 밤 속에 바다 속에 빠져들어 갔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12년 동안을 근무한 후, 또다시 남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그는

 "후방 우측 엔진을 끈다" 하는 짤막한 통신을 보내왔다.

그리고는 침묵이 흘렀다.

이 소식은 그다지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이 10분 동안 계속된 뒤에는 파리에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는

항공로의 모든 무전 국들은 가슴 조이며 경비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10분간의 지각이란, 일상 생활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우편비행의 경우에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죽은 시간 속에는 어떤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무의미한 것이든, 또는 불행한 것이든 그것은 그 이후에 진행되었을 것이다.
운명이 판결을 내렸을 것이고, 이 판결에는 상소할 길이 없다.

어떤 무쇠 같은 손이 승무원들을 무사히 착수시켰던가,

아니면 파멸로 이끌어 갔을 것이다.

다만 그 판결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통고되지 않는다.

우리들 중의 그 누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갈수록 더욱 희미해져가는 그 희망과,

치명적인 병처럼 시시각각으로 악화되어 가는 그 침묵을.

메르모즈는 분명히 자기가 한 일 뒤에 숨어 버린 것이다.

마치 보릿단을 잘 묶고 나서 자기 밭에 드러눕는 타작군처럼.


한 사람의 동료가 이렇게 죽을 때 그의 죽음은 그래도 직무상의

질서에 따른 행동처럼 생각되어 처음에는 다른 죽음보다 덜 상심이 되는 것 같다.

물론 그는 마지막 전근 명령을 받고 멀리 떠나갔다.

그러나 그가 없어진 것은 빵이 없어졌을 때만큼

우리에게 그 아쉬움이 절실하지는 않다.

우리들은 사실 서로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다리는 버릇에 젖어 있다.

항공로의 동료들은 파리에서 칠레의 산티아고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에 흩어져 있어 별로 말을 주고받을 기회가 없는 보초들처럼

약간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는 이 직무상의 대가족들이

여기 저기서 서로 만나려면 여행의 우연이 있어야 한다.

카사블랑카나, 다까르나, 혹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어느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그들은 여러 해 동안의 침묵 뒤에,

중단되었던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옛 추억을 서로 잇는다.

그리고는 다시 출발한다.

대지는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있어 황량하기도 하고 풍요롭기도 하다.

감춰져 있어서 다다르기는 힘들지만,

어느 날엔가는 우리의 직업이 우리를 그곳에 데려다 줄

은밀한 정원들이 지상에는 수많이 있기 때문에 풍요롭다.

생활이 우리를 떼어놓기 때문에 우리는 동료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딘가에 있다. 어딘지는 몰라도,

 조용하게 잊혀진 채, 그러나 지극히 믿음직하게!

그래서 우리가 혹시 그들의 길을 마주쳐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들은 아름다운 기쁨의 불꽃을 보이며 우리의 어깨를 흔들어 주곤 한다!

물론 우리는 기다리는 습성에 젖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차츰 우리는 그 사람의 밝은 웃음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정원이 우리에게는 영원히 닫혀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의 진정한 초상, 가슴을 찢는 듯한 슬픔은 아니지만,

약간 마음이 쓰라린 초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죽은 동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오랜 벗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아무것도 그 많은 공통된 추억, 함께 겪었던 위험한 시간들,

그 많은 불화와 화해, 마음의 설렘 등의 보물만큼 값진 것은 없다.

이러한 우정은 다시는 되살릴 수 없다.

떡갈나무를 심고, 바로 그 그늘에서 쉬려 한들 헛일이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먼저 우리들 자신을 풍부하게 하고, 여러 해 동안 나무를 심어 왔다.

그러나 시간 이 작업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베어 내는 해들이 오게 된 것이다.

동료들이 하나 둘 우리에게서 그들의 그림자를 앗아간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우리들의 슬픔에 늙어감에 대한 남모르는 회환이 섞이는 것이다.

이것이 메르모즈와 그밖의 동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어떤 작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합시키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치란 인간 관계의 사치뿐이다.

오직 물질적인 재물만을 위해 일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옥을 쌓아 올리고 있다.

삶에 보람을 주는 아무것도 살수 없는 재물과 같은

돈을 안고 우리 자신을 고독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내 추억 속에서 오래 남을 기쁜 맛을 남겨 준 사람들을 찾아보거나

보람있는 시간들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본다면

내가 되찾는 것은 어김없이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 뿐이다.

메르모즈 같은 친구의 우정이나, 함께 시련을 겪음으로써

영원히 맺어진 어느 동료의 우정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 야간비행의 밤과, 그 천만 개의 별들, 그 고즈넉함,

그 몇 시간 동안의 절대력, 이런 것들은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다.

어려운 비행을 한 후의 세계의 새로운 모습, 저 나무들, 저 꽃들, 저 여인들,

저 미소들, 새벽녘에야 우리에게 돌아온 생명에 의해 싱싱하게 채색된

우리의 노고에 보답하는 이 하찮은 것들의 콘서트, 이런 것들을 돈으로는 살 수 없다.
그리고 그 때의 추억이 지금 생각나는,

돌아올 수 없는 지대에서 겪은 그 하룻밤도 또한 그런 것이다.

우리는 해질 무렵에 리오 데 오로 해안에 불시착한

우편 항공회사 소속의 3조의 승무원들이었다.
동료 리겔이 맨 먼저 크랭크 고장으로 착륙했다.

다른 동료인 부르가가 그 승무원들을 태우려고 착륙했다가

대수롭지 않은 고장으로 그까지도 땅에 붙들리고 말았다.

끝으로 내가 착륙했었는데, 내가 참여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부르가의 비행기를 구해 내기로 작정하고,

완전한 수리를 위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1년 전에, 바로 이곳에 불시착한 우리의 동료,

구르와 에라블이 불귀순민들에게 학살당했었다.

우리는 지금도 소총 3백정을 가진 모르인 도둑들이

보자도르 부근 어딘가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멀리서도 보았을 우리들의 3번의 착륙이 그들에게 경비 태세를 취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 밤샘을 시작했다.

우리는 밤을 지샐 준비를 했다.

화물 실에서 대여섯 개의 상품 궤짝을 끌어내어 속을 비우고

둥그렇게 늘어놓고 하나하나의 궤짝 안에는 병사들이 보초막 구덩이에다

그렇듯이 바람에 가물거리는 빈약한 촛불을 켜 놓았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지구의 벌거벗은 껍질 위에

천지창조 때와 같은 고독 속에 인간의 마을을 세운 것이다.

우리들 마을의 이 큰 광장 위의 빈 궤짝들이 떠는 불빛을 흘리고 있는

사막 한 조각 위에 밤새껏 모여 앉아 우리는 기다렸다.

우리를 구원해줄 새벽을, 혹은 모르인의 공격을...

그런데 그 무엇이 그 밤에 크리스마스와도 같은 흥취를 주었는지 나는 모른다.

우리는 서로 추억을 이야기했고, 농담을 주고받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잘 차려진 축제의 한창 때와도 같은 가벼운 흥분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한히 가난했다.

바람과, 모래와, 별들. 그것은 마치 트라피스트 수도사에게나 알맞은 엄한 생활 양식이었다.

그런데도 이 어두컴컴한 모래의 식탁보 위에서

자기들의 추억 말고는 이 세상에서 이미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예닐곱 명의 사내들은 보이지 않는 보화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우리들은 마침내 만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침묵 속에 갇힌 채 오랫동안 나란히 걸어가거나

또는 아무 감동도 옮기지 않는 말들을 교환한다.
그러나 위험에 부닥치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돕는다.

그들은 한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발견함으로써 사람은 자신을 넓혀간다.

사람들은 큰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때 사람은 바다의 드넓음에 경탄하는 해방된 죄수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