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5. - 쌩 떽쥐뻬리
[2] 동료들
(2)
기요메, 나는 자네에 관해서 몇 마디 해야겠네.
그러나 안심하게. 자네의 용기라든가,
자네의 직업상의 가치에 대하여 미련하게 강조해서 자네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
자네의 그 많은 모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를 이야기함으로써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일세.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지 알 수 없는 미덕이 있다.
그것은 "의젓함"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 말도 흡족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미덕은 더없이 맑은 쾌활함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무토막 앞에 대등한 기분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만져 보고, 치수를 재고, 경솔하게 다루지 않고,
자기의 온 정성을 집중시키는 목수의 미덕 바로 그것이다.
기요메, 나는 언젠가 자네의 모험을 찬양한 어떤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후 나는 이 부정확한 "아마쥬"를 시정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네.
그 글 속에서 "건달패"같은 재담을 해대면서
마치 용기라는 것이 급박한 위험 속에서나 죽음의 순간에 처해서
중학생들이나 할 농담을 하는 비굴함에 있는 것 같은 자네를 볼 수 있었네.
그것은 자네를 이해하지 못한 말이네.
기요메, 자네는 적과 대결하기 전에 상대를 조롱할 필요를 느낄 남자는 아니네.
몹쓸 폭풍우에 부닥치면 자네는 판단할 걸세.
"이건 몹쓸 폭풍우로군."
자네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재어 볼 걸세.
기요메, 나는 내 추억의 증인으로서 자네를 여기에 끌어 왔네.
겨울에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던 중에 자네는 50시간이나 행방불명이 되었었네.
빠따고니아의 오지로부터 돌아오던 나는 멘도사에서 조종사 들레이와 합류했네.
우리 두 사람은 닷새 동안을 각기 비행기로
그 산더미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네.
우리 두 비행기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네. 백 개의 비행 편대가 백년 동안을 날아다닌다 해도
7천 미터에 달하는 고봉을 포함하는 이 거대한 산악 덩어리를
모두 탐색할 수는 없으리라고 말이네.
우리는 모든 희망을 잃었네.
그 나라의 밀수업자들,
평소에는 단돈 5프랑을 위해서도 범죄를 청부받는 산적들까지도
구조대에 끼어 그 산악 부벽 위에서 모험하기를 거절했네.
"거기선 목숨이 위험하니까."라고 그들은 말했네.
"안데스 산은 겨울에는 사람을 돌려 보내주지 않는 걸요"
들레이와 내가 산티아고에 착륙했을 때 칠레의 장교들도
역시 수색을 중지하라고 충고했네.
"지금은 겨울이오. 당신의 동료가 설령 추락할 때
살아 있었더라도 밤의 추위는 견뎌내지 못했을 거요.
저 위에선 밤이 사람을 스쳐가기만 해도 얼음 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니까요."
어쨌거나 내가 다시 안데스의 거대한 절벽과 기둥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을 때,
사실 나는 자네를 찾는다기보다는 눈의 대성당 안에 말없이 누워 있는
자네 시체를 지키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네.
마침내 이레째 되던 날, 비행을 마치고 다음 비행을 기다리는 사이
멘도사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네.
한 사나이가 문을 밀고 소리쳤네.
그것은 짤막한 말이었네.
"기요메가.... 살아 있어!"
그러자 거기 있던 낯선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았다.
10분 후, 나는 르페브르와 아브르의 두 기관사를 태우고 이륙하고 있었네.
40분 후, 나는 어떻게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모르지만,
쌍 라파엘 쪽으로 어디인지 자네를 싣고 가는 자동차를 알아보고는 어느 길가에 착륙했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해후였네.
우리는 모두 울었네.
그리고 자네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네
살아 있는, 부활한, 자신의 기적을 만든 자네를 말이네.
그때 자네는 말했네.
그것은 알아 들을 수 있는 자네의 첫 마디 말이었고,
또 찬탄할 만한 인간의 긍지이기도 했네.
"내가 한 일은, 자네에게 맹세하네만, 어떤 짐승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어."
그후, 자네는 우리에게 조난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네.
48시간 동안 5 미터 두께의 눈을 안데스 산맥의
칠레 쪽 산허리에 퍼부었던 폭풍이 온 천지를 가로막았고,
"팬 에어" 회사의 미국 조종사들은 되돌아갔다.
그런데도 자네는 하늘의 찢긴 틈을 찾아 이륙했다.
자네는 약간 남쪽에서 그 함정을 발견했다.
그리고 6천 5백 미터 내외로 고도를 유지하고,
다만 높은 봉우리들만이 솟아 올라 있는
6천 미터 높이의 구름들을 굽어보며 아르헨티나로 기수를 돌렸다.
하강기류는 가끔 조종사들에게 묘한 불쾌감을 주는 수가 있다.
엔진은 이상없이 도는데 비행기는 하강한다.
고도를 유지하려고 급상승한다.
그러면 비행기는 속력을 잃고 흐느적거린다.
기체는 자꾸만 하강을 계속한다.
이번에는 너무 급상승시켰나 싶어서 손을 늦춘다.
도약대처럼 바람을 받아줄 적당한 봉우리에 숨어보려고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비행기를 표류시켜 보았으나 하강은 계속된다.
하늘 전체가 꺼져 내리는 것만 같다.
이런 때 사람들은 우주의 대 이변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젠 피난할 곳도 없다.
공기가 단단하게 차 있어서 기둥처럼 기체를 받쳐 줄 지대로
되돌아가려고 뒤로 반 회전해 보았으나 헛수고였다.
기둥은 이미 아무 데도 없다.
모든 것이 분해되고 사람은 우주의 붕괴 속으로 뭉게뭉게
그가 있는 데까지 피어올라와 마침내 그를 삼켜 버리는 구름 쪽으로 미끄러져 간다.
"나는 이미 꼼짝 못하게 되어버렸어. 그러나 난 아직 단념하지 않았네."
자네는 말했었지.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름 위에서도 하강기류를 만나는 때가 있는데,
그건 구름이 같은 높이에서 끊임없이 자꾸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말 고산 위에서는 모든 것이 이상야릇하거든...."
그리고 그 구름들이라니!
"구름에 붙잡히자마자 나는 조종간을 놔 버릴 수밖에 없었네.
기체 밖으로 팽개쳐지지 않으려고 의자를 꼭 움켜잡아야만 했거든.
충격이 어찌나 심했던지 안전 벨트가 어깨에 파고 들어 당장 끊어져 나갈 것 같았네.
게다가 성에가 심하게 끼어 계기의 수평을 전혀 알아볼 수 없어서
나는 6천, 3천, 5백 미터로 모자처럼 굴러 떨어졌네."
"3천 5백 미터에서 나는 수평으로 펼쳐진 어떤 검은 덩어리를 언뜻 보았네.
그래서 나는 비행기를 다시 수평으로 세울 수가 있었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다이아몬드" 호수였네.
나는 그것이 깔때기 모양을 한 산골짜기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
깔때기 벽의 한쪽이 마이쀼 화산인데, 6천 9백 미터나 솟아 있거든.
겨우 구름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빽빽한 눈보라의 소용돌이 때문에 앞이 안보였네.
그래서 이 깔때기의 한쪽 옆구리를 들이받지 않고는 호수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었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호수 둘레를 30미터의 높이로
가솔린이 다 떨어질 때까지 빙빙 돌았네.
2시간 동안을 탑돌이를 한 뒤에 나는 내려앉다가 뒤집혀 버렸네.
기체에서 기어 나오자 태풍이 나를 쓰러뜨려 버렸네.
나는 다시 일어섰지. 그러나 태풍은 또다시 나를 자빠뜨렸네.
하는 수 없이 기체 밑으로 기어 들어가 눈 속에 구멍을 파는 수밖에 없었네.
거기서 나는 우편 행낭을 둘러 쓰고 48시간을 기다렸던 거네.
그런 후에 태풍이 가라앉자 나는 걷기 시작했네. 나는 닷새 나흘 밤을 걸었네."
그런데 기요메,
자네의 무엇이 남았단 말인가?
우리는 자네를 다시 찾아내기는 했지만 자네는 새까맣게 타고,
빳빳해지고, 노파처럼 오그라들어 있었는데!
그날 저녁, 나는 바로 자네를 비행기에 싣고 멘도사로 데려갔네.
그곳에서는 하얀 시트가 향유처럼 자네 위에 흘렀네.
그러나 그것들이 자네를 낫게 하지는 못했네.
자네는 그 지쳐버린 몸을 어찌할 바를 몰라
잠 속에 빠지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했네.
자네의 몸은 바위들도 눈들도 잊지를 못했네.
그것들이 자네 몸에 낙인을 찍어 놓았던 것이네.
나는 얻어맞고 물크러진 과일처럼 부어오른 자네의 시커먼 얼굴을 지켜 보았네.
자네 일에 쓰이는 그 훌륭한 연장의 사용을 잃어버린 자네는 몹시 추하고 비참했네.
자네 손은 마비된 채로 였고, 숨을 쉬기 위해 침대 가에 앉아 있을 때면
동상 걸린 다리가 두 개의 죽은 시계추처럼 축 늘어져 있었네.
자네는 아직도 자네의 고난의 여행을 끝내지 못하고,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네.
그리고 안식을 찾아 베개 위에 몸을 누이기가 무섭게
억누르지 못한 환영의 행렬이, 무대 위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행렬이
자네 두 개골 밑에서 당장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네.
그 행렬은 행진을 계속했고 자네는 그 잿더미 속에서 되살아나는 적에 대항하여
스무 번이나 싸움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네.
나는 자네를 위해 다시 탕약을 따랐네.
"마시게! 이 친구야."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건... 자네도... 알겠지만...."
이기기는 했지만 심한 타격으로 멍든 권투선수같은 자네는
자네의 기이한 모험을 재현하는 것이었네.
그리고 자네는 조금씩 거기서 벗어나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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