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소나 양을 끌고 가서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막문 앞에서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회막’이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말 그대로 ‘만나는 장막(meeting tent)’이라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유치하기 짝이 없었기에 눈으로 보여주는 것을 원했기에 허락하셔서, 그들이 회막문 앞에 와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영광을 보고 살아계심을 확신했다. 또한 제사법을 비롯한 음식법 등의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자세하게 일러주시고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새로운 시대를 연 신약시대에 와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자신들의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해 소나 양을 죽여 번제로 드리는 제사법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미 폐기처분된 구약시대의 제사법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성찬의 의미를 되살리는 의식인 성찬식과,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을 삼아 세례를 주라는 명령에 따라 세례식을 중점으로 하는 예배의식을 하나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규칙적인 예배의식이라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 거행했던 의식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필요성을 느끼게 됨에 따라,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로 마치는 예배의식을 만들어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설교가 예배의 중심에 들어온 것도 종교개혁을 거치고 나서이다. 그전의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찬식과 세례식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의식을 드렸으나, 종교 개혁가들이 말씀을 배울 필요성을 느껴 설교시간을 예배의식의 중심에 넣은 게 우리네 개신교의 전통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그런 예배의식을 거행하라고 하신 적은 없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종교적인 관행일 뿐이다. 물론 필자가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에 대해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단지 우리가 시행하는 예배의식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어서이다. 왜냐면 사람들이 만든 종교적인 의식을 가지고 영혼구원의
잣대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버젓이 우리네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겠어서 말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인 주일이 일요일로 둔갑해버렸으며, 주일날 사람들이 만든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여하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비성경적인 말을, 마치 하나님이 성경에서 하신 말씀으로 생산하고 유통하고 있으니 가관이 아니다. 물론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의식을 폄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예배의식에 참석하였다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니,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는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자녀들이 교회에 모여 예배의식을 행한다면, 하나님이 기꺼이 기쁘게 만나주실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내내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일요일이면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거룩하고 경건한 체하며 예배시간에 앉아있다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기도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모습은 항상 기도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꼭두새벽에 열리는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1,20분 자신의 원하는 요구사항을 한두 차례 외치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인가? 웃기지 마시라. 그런 기도회는 사람들이 만든 관행일 뿐이다. 물론 하루 종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인 사람이 새벽예배에 참석해서 기도한다면, 이 역시 하나님이 기쁘게 들으실 것이다. 그러나 새벽에 교회에 나와 1,20분 기도하는 하는 것으로 목이 뻣뻣한 이들이 우리네 교회에 즐비하다.
하나님은 알맹이가 빠진 채 형식적으로 사람이 만든 의식을 기쁘게 받으실 리가 없다. 그런 의식은 자신들의 드높은 종교심을 보여주기 위한 종교적인 관행일 뿐이다. 금요철야기도회나 여러 기도회도 마찬가지이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교회에 와서 기도회에 참석하는 관행을 준수하는 행위는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기도회에서 행하는 기도의 내용도 담임목사나 교인들이 얻기 원하는 목록을 외치는 시간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성경에 그런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약속한 적이 없으시다. 만약 그랬다면, 교회의 각종 기도회에 사람들이 빼곡해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 아닌가?
교회봉사를 해야 온전한 믿음을 유지한다는 어느 목사의 말에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온전한 믿음이 교회 봉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은사)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행위는 기도와 말씀으로 항상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수도 없이, 간절하게 찾고 부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죄와 피터지게 싸우며 거룩하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도 기뻐하신다.
그런데 담임목사의 탐욕을 채우고 명예를 높이려고 교회를 크게 짓고 수많은 교인들을 끌어들여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유지하고, 갖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돌리려면 많은 봉사자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만든 갖가지 선교회와 봉사에 내몰려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파김치가 되도록 일하는 것이, 왜 온전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인가? 그런 교회봉사를 해야 온전한 믿음을 얻는 것이라고 성경 어디에 나와 있는가?
정작 성경에 수도 없이 기록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생각이 없이, 인간들이 만든 종교적인 관행이나 예배의식을 지키는 것에 몰두하는 작금의 우리네 교회를 보면 안타깝고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성경을 읽을 생각도 없고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도 없으니, 성경을 앞세워 탐욕을 채우는 삯꾼 목자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 목사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천국 가는 비결이라고 알고 따라가는 양들이 주변에 허다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고 어리석은 양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천국이 좁은 문이라고 하셨을 리가 없고,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혀를 끌끌 찼을 리가 없다. 또한 겨자씨만한 아주 작은 믿음만 있다면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기도의 능력을 보유할 거라는 말씀도 하셨을 리가 없다. 그러나 눈을 가리고 귀를 닫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 시대의 무지하고 어리석은 양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참혹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종말이 가까이 오면서 천국 문이 점점 닫히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악한 종들의 사탕발림의 달콤한 말을 벗어던지고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아나서시라.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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