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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영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4.

Joyfule 2014. 9. 23. 08:38
 
인생은 영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4.
나는 많은 이들에게 은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지만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정화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개인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부분을 지적하고 전달합니다. 
그것은 광야의 메시지와 같은 것입니다. 
멀리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잘 모르는 이들에게 나는 은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나는 정화의 메시지, 광야의 메시지를 잘 전합니다. 
받아들이는 이들은 눈물과 회개와 통곡이 이루어지며 
이들은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들은 자기 안에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과 눈물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뜻을 앙망하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기쁨인지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모임을 이끌어 왔지만, 
지속적으로 가까이 기도와 모임을 나누며 교제하는 이들보다는 
반성과 회개를 거절하거나 반성의 자세가 부족해서 탈락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적을 받으면 기분 나빠 합니다. 
불쾌하게 여기며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말합니다. 
죄와 잘못에 대하여 지적받는 것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반성하지 않을 때 나는 그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의 처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환자는 다른 의사를 찾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에게 병이 없으며 건강에 별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의사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주님이 주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를 주님 발 앞에 내려놓지 않으면, 
그리고 주님의 지배 가운데 들어가지 않는다면, 모임의 주인은 주님이 아니고 사람이 됩니다. 
모든 이들이 주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개성이 강한 사람이 모임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그의 마음이 불쾌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 속한 모임이 아닙니다. 
그러한 곳에서는 주님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다른 이들을 섬기며 배려해야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주님에 대한 간절함과 주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는 전제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섬김과 배려는 생명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자신을 사랑해주고 받아주고 
칭찬해주고 모든 것을 용납해주기를 원합니다. 
자기 입장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첫 번째 단계에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은혜와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그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성장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자기 입장을 버리지 않으면 
지옥의 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배워야 할 때가 옵니다.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쉽게 서운하고 쉽게 상처를 받으며 쉽게 두려워하고 쉽게 낙담합니다. 
이들은 자기 입장을 버리고 주님의 입장을 가져야만 천국이 임하고 
세상을 초월하고 이길 수 있으며 주님의 통로,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많이 안타까와 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징계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은 죄를 잘 지적하지 않습니다. 
강대상에서 죄에 대하여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어떠한 행위나 마음의 자세가 주님께 나아가는데에 방해가 되는 지에 대해서 
설교를 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효과적인 것은 개인적으로도 죄를 지적하고 
그것을 버리고 회개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필요합니다. 
사역자는 신자들의 영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그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너무 어린 신자는 기다려야 하지만 오래된 신자를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역자가 심약해서 세력이 있는 신자의 죄를 지적하지 못합니다. 
설교를 하면서 멀리 빙빙 돌려서 이야기를 하고 
혹시 상대방이 상처를 받아서 교회를 떠난다고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합니다. 
그것은 바른 사역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사역자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신자가 듣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그 신자를 도울 수 없습니다. 
사역자가 자기의 직업을 잃을까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가르칠 수 없다면 
그는 얼른 다른 직업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사역자는 신자를 자기 수하로 여기거나 비인격적인 자세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자신이 높은 존재여서가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신자를 세우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온유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사랑을 담고 권면을 해야 합니다. 
화를 내거나 거칠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의 자아를 죽인다고 신자들에게 모욕적으로 말하는 사역자를 본 적도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자와 자비로 대하셨습니다.  
가르침은 주님의 방식과 주님의 영으로 해야 합니다. 
거칠은 자세는 영을 세우지 못합니다. 
자식에게 예의를 가르치려고 조직폭력배를 통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아름답고 온유하며 사랑과 긍휼이 가득하신 분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수술은 예리하고 정확하게 사람의 중심을 찌르며 
사람의 중심과 그 동기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에는 항상 주님의 인격과 성품이 나타납니다. 
주님은 사실 때도 죽으실 때도, 사역하실 때도 가르치실 때도 
십자가를 짊어지실 때도 채찍에 맞으실 때도 
항상 사랑과 온유함과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속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사역하는 사람은 
사나 죽으나 사랑을 고백하거나 꾸짖거나 
언제나 동일한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님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면 그것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욱하는 마음으로 꾸짖는 사역자나 부모는 신자나 자녀들을 주님께로 이끌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고백할 때보다 징계할 때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기질이나 성향을 따라 어떤 이를 좋아하고 어떤 이를 싫어한다면 
그는 주님의 사람이 아니며 주님의 사역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참된 권위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역자는 주님의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기호와 취향을 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는 죄를 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의 징계라면 신자들이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역자의 사람이 됩니다. 
사역자의 기분을 맞추고 눈치를 보며 사역자를 높이고 사역자에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것은 사역이 아닙니다. 
사역자는 오직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자기에게 잘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이 되고 주님께 이끌리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받아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들을,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 하나 하나 지적해야 합니다.
만약 신자가 그것을 듣기를 원치 않는다면 사역자는 그에게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그를 떠나보내고 
그가 다른 사역자를 통해서 주님을 알아가도록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광야의 경험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혼이 처리되어야 하는 지를 잘 모릅니다. 
모두 각자가 자기 고유한 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대기를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소극적입니다. 
어떤 이들은 급하고 어떤 이들은 느리며 어떤 이는 치밀하고 어떤 이는 기분파입니다. 
어떤 이는 너무 차갑고 어떤 이는 너무  뜨겁습니다. 
우리의 육성이 처리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의 죄성이 처리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한 이러한 혼의 기질들도 광야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에게 복종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죽음과 굴복이 반복되고 증가되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실제, 천국의 실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이와 같은 성화의 과정, 천로역정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어느 집에 태어나서 어느 유치원에 가고 어느 학교를 나와서 어느 직장에 가고
 누구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늙어가고.. 
이러한 것이 인생의 과정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주님이 우리를 만지시고 만들어가시는 과정입니다. 
타고난 육신적이고 자아적이고 본능적인 사람이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육신적이고 본능적이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알게 되고 
그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래서 애굽과 세상적인 것에서 분리되고, 
그 다음에 주님의 훈련을 통해서 나의 자아와 욕망을 깨달으며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일상의 사소한 삶을 통하여 
주님의 메시지와 역사들을 경험하고 서서히 육과 자아의 죽음을 경험해가며 
영광스러운 세계를 알아가게 되고 주님의 아름다우심과 친밀함과 사역과 
사명을 깨닫고 순종하며 이루어가는 과정.. 이것이 곧 인생의 과정인 것입니다. 
애굽에서 주님은 보혈을 흘리십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립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십자가와 우리 십자가가 연합하므로 우리는 온전한 죽음을 경험하고 
주님의 사람이 되어 새 생명의 신비와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인생은 성화의 과정입니다. 
신앙은 성화의 과정입니다. 
내가 소멸되고 주님이 내 안에서 충만케되는 과정입니다. 
내 속의 지옥이 소멸되고 천국이 내 안에 충만케 되는 과정입니다. 
천국은 바깥 환경에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훈련을 통과하고 순복될수록 우리 안에는 천국이 임하며 
주님의 생명이 가득하여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이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수록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되어 
예전에 알지 못하던 기쁨을 누리고 사랑을 누리고 지각을 누리며 
영광의 세계를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성장의 과정에 있습니다. 당신도 그 인도하심의 과정 안에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과정에 있는지, 어떤 것을 통과하고 있는지, 
주님이 지금 자신에게 무엇을 행하시고 계신지를 기도하고 묻고 분별하여야 합니다. 
당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은혜의 메시지를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애굽의 영역에서 나오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징계하시고 권면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자존심을 버리고 고집을 버리고 자기 합리화와 자기 연민을 버리고 
오직 주의 뜻이 당신 안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순복하십시오. 
나를 버리고 나의 뜻을 버리고 
주님의 원하심이 우리 안에 이루어질수록 그것은 영광이고 축복입니다. 
지금은 아파도 세월이 흐른 후 당신은 
그러한 고통과 굴복과 훈련의 시간들을 기뻐하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천국의 사람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거룩하게, 온전하게.. 
오늘도 우리를 이끄시며 훈련하시고 계십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복하기를, 오직 그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영광스러운 승리자의 자리에 서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오, 주님.. 할렐루야.. 아멘..